[진보의창]이회창 아들과 민중의 아들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한국학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것은 한국 극우의 우두머리인 이회창 아들들의 병역비리에 대한 새로운 의혹과 증거물의 제시다.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은 대북 강경노선을 누구보다도 주장한 극우 이회창이, 아이러니컬하게도 본인의 아들만큼은 그 강경 정책의 주요 도구인 군대로부터 철저하게 보호해주었던 셈이 된다.

그러나 병역기피라는 차원에서 이회창만이 그토록 ‘빼어난 실적’을 자랑하는가? 다들 아는 일이지만, 한나라당의 국회의원이든 민주당의 국회의원이든 일반인보다 2∼3배 높은 자녀 병역면제율이 서로 그다지 다르지 않다.

한국사회의 다른 특권집단인 고급 언론인과 재벌 대주주·임원, 고급 공무원, 대학교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 면제를 안받았다고 해서 현대판 ‘백성’의 아들과 같이 철원군에서 겨울추위에 떨면서 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거시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특권층이 ‘백성’과 같은 병역을 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조선시대의 사대부처럼, 일제 시대의 고급 친일파처럼 ‘천역’(賤役)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별천지’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병역에 대한 그들의 ‘자유자재’한 태도를, 과연 전근대적인 잔재로만 돌릴 수 있는가? 물론 병역을 일종의 ‘천역’으로 보는 전근대적인 의식도 그들의 태도에 한몫을 한다.

그러나 전근대성이 한국처럼 짙지 않은 구미의 중심부 국가들이라 해도, 병역을 멀리하거나 ‘편하게’ 이행하는 유산층·지배층의 태도는 거의 마찬가지다. 19세기초에 서구에서 징병제가 실시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유산층은 ‘대학생’ 등의 학력을 이용해 면제나 하급 장교로서의 배치를 받거나, 일부의 국가에서 ‘병역 이행 대리자의 고용’(hiring of a substitute)을 통해서 합법적으로 병역을 멀리했다.

한국의 부르주아 매스컴들이 하나같이 서양 귀족·유산층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제’(지위에 비례하는 의무감)를 극구 찬양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때 군대에의 대량 지원으로서 그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과시한 영국 귀족들이 거의 다 고학력자로서, 사망률이 훨씬 낮은 장교층에 편입됐다는 사실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멀리에서 예를 찾지 않아도, ‘유학생’으로서 병역을 기피한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군대에 가도 베트남 전장으로 배치를 받지 않았던 부시 현 대통령을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제’ 신화의 허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군대라는 것이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을 총알받이로 만들어 지배층을 위한 살육의 도구로 사용하는 조직에 불과하다.

제도권 교육과 언론이 ‘신성한 병역’을 들먹일 때는, 그들의 기만성이 그대로 노정된다. 징병제가 만들어질 때부터 현재까지 그들에게 병역이 언제 한번이라도 ‘신성’했는가? 군복을 입은 민중을 제국주의 전쟁에서 희생시킬 권리만 그들에게 그야말로 신성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병역 스캔들에서 그들의 위선과 기만이 노출되면 될수록, 진보적 민중의 반(反)군국주의 투쟁이 강화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미 각성한 민중이 더 이상 옛날처럼 순순히 그들의 총알받이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을, 그들도 이제 각오해야 한다.

그들이 군대를 체벌과 폭력이 없는 ‘갈 만한 곳’을 만들어주지 않는 이상 민중의 병역 이행을 기대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들의 아들들의 몸만 귀한 것이 아니다. 민중의 청년들에게도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할 권리와, 신체적 자유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 102호] 9.2 ~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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