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방송매체로서 인터넷을 규제하는 호주
<편집자주>인터넷국가검열반대공동대책위원회에서 인터넷내용규제와 관련된 외국사례를 본지에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본지는 이 사례가 사이버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판단 아래 앞으로 4주 동안 이 글을 정리·요약하여 연재하기로 했다. 독자 여러분께 애정어린 열독(熱讀)을 부탁드린다.
① 연재를 시작하며 - 유럽 / ② 미국 / ③ 호주 / ④ 연재를 마치며
<편집자주> 그 어떤 매체보다 탈중심·탈규제적이라는 인터넷을 둘러싼 논쟁 가운데 가장 뜨거웠던 논쟁의 주제는 인터넷내용등급제에 대한 것이었다. 원래 이 제도는 픽스(PICS)라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 내용분류시스템이지만, 한국에서는 지난 2000년 정부가 직접 청소년유해매체물을 대상으로 인터넷내용등급제를 시행하겠다고 나서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인터넷내용등급제의 핵심 문제는 국가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정통윤)의 존재이다. 외국에서는 유례가 없는 이 같은 국가적 인터넷내용규제 기구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앞으로 4회에 걸쳐 외국의 인터넷내용규제 정책을 검토하면서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필자 : 김유승 - 런던대학 인터넷내용규제 정책 연구자)
인터넷은 어떠한 매체인가? 인터넷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 이 논쟁은 일견 해묵어 보이지만, 그 매체적 성격의 규정에 따라 규제의 접근방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쟁점이라 할 수 있다. 미국 대법원이 통신품위법(CDA) 논쟁을 통해 인터넷이 "수용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침투하는 방송매체"와는 다른 성격의 매체라는 주장에 손을 들어준 반면, 호주에서는 호주방송위원회(the Australian Broadcasting Authority, 이하 ABA)와 영상문헌분류사무소(the Office of Film and Literature Classification, 이하 OFLC)에서 인터넷상의 내용을 직접 규제하고 있다.
1999년 6월 호주 연방정부는 '방송서비스 수정법안'을 도입, 2000년 1월부터 시행하여왔다. 이 법은 불만처리시스템의 설립, 인터넷내용의 분류, ABA의 강화, 그리고 형사적 책임으로부터의 인터넷서비스업자 보호를 핵심 요소로 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ABA는 일반시민들이 불법적인 인터넷내용을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였다. (여기서 '불법'은 호주의 법에 명시되어 있는 불법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서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불온'하다거나 '유해'하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신고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신고된 불법 인터넷내용이 호주 국내의 서버에 있다면 ABA는 해당 서버를 운영하고 있는 업체에 내용 삭제를 지시한다. 만약 해당 내용이 해외의 서버에 있다면 ABA는 인터넷산업협회규약에 의해 승인된 차단소프트웨어 제공자들에게 이를 알린다(1999년 9월 호주 인터넷산업협회는 '방송서비스 수정법'의 발맞춰 인터넷내용차단프로그램의 의무적 제공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실천규약을 발표하고, 같은 해 12월에는 인터넷산업협회가 승인하는 차단프로그램과 서비스들의 목록을 발표했다).
한편 OFLC는 국가분류지침(National Classification Guidelines)에 따라 인터넷내용을 분류하는데 여기서 RC(Refused Classification)나 X등급을 받은 내용은 인터넷상에서 금지된다. OFLC에 따르면 범죄, 폭력, 마약사용, 어린이 포르노그라피, 수간, 성행위의 사실적 묘사, 과도한 폭력과 성폭력적 내용 등이 RC등급에 해당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규제 움직임들은 호주전자개척자재단(Electronic Frontiers Australia, EFA)을 비롯한 많은 시민 단체들로부터 즉각적인 비판에 부딪혔다. 시민 단체들은 이러한 규제시스템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며,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수정법안이 검열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첫째, 호주 연방정부는 인터넷내용을 일반출판물보다 훨씬 엄격한 영상매체를 위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반 출판매체를 통해 합법적으로 유통될 수 있는 정보들이 인터넷상에서는 금지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인터넷상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현저하게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영어를 사용하는 호주의 경우 절대량의 인터넷내용이 해외의 서버에 있기 때문에, 호주 국내에 한정되는 ABA의 규제능력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ABA의 자체 보고서(Six-Months Report on Co-Regulatory Scheme for Internet Content Regulation July to December 2000)에서도 확인되는데, 2000년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ABA가 접수한 139건의 불만신고 중에서 단 6건만이 호주 국내의 서버에 있었다.
셋째, 인터넷산업협회와 ABA가 승인한 인터넷내용차단프로그램의 신뢰성과 효율성이 의심스럽다. 미국의 사례에서 살펴보았듯이, 소위 1세대 인터넷내용차단 상업소프트웨어들은 표현의 자유와 사용자의 자율성을 현저하게 제한할 수밖에 없는 기술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데, 공공기관이 이들 소프트웨어를 승인한다는 것은 그들의 치명적 결함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ABA
한국의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성공적인 인터넷내용규제 사례로서 호주의 예를 들어왔다. 자율규제를 바탕으로 한 공동규제 모델을 채택하고 있는 유럽이나 시장기능을 강조하는 미국과 달리, ABA라는 공공기관이 인터넷내용규제를 직접 주도하는 호주의 예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서 반갑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 호주 연방정부는 막대한 국가예산을 비효율적인 국가주도의 인터넷규제에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으며, 호주의 각 주 정부들에서도 인터넷 규제 입법 움직임들이 거센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지난 6월 뉴사우스웨일스 주정부의회는 인터넷검열법안(The Classification Enforcement Amendment Bill 2001)의 추진을 중지할 것을 주정부에 건의하였고, 7월에는 정부기관의 이메일 검열을 가능케 만드는 연방정부의 통신차단법 수정안(Telecommunications Interception Legislation Amendment Bill 2002)이 상원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결정들은 다른 주정부에도 파급될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뉴사우스웨일스와 비슷한 인터넷검열제도를 도입하려 하고 있던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도 더 이상 호주를 성공한 사례로 선전할 것이 아니라, 정부 주도의 인터넷내용규제가 왜 실패하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를 비추어보는 사례로 이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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