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자(노동자의 힘 선전위원)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동성애자' 하면 추적60분 같은 프로에 '외모도 이상하고 정신도 이상한 사람들'로 인식되었죠. 화장실이나 어두운 극장에서 성적 행위를 해대고… TV에서 동성애는 돈벌이가 되는 상품일 뿐이며, 많이 희화화되어 있죠. 그 속에서 게이는 어딘가 비정상적인 사람들일 뿐이에요. 멋있는 게이가 나오는 프로를 본적은 한번도 없을 껄요?"
동성애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태 성욕자나 에이즈 병에 걸린 환자 등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동성애라는 말 자체가 생소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건, 이 땅에서 어떤 억압을 받고 있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무관심할게다.
노동법과 안기부법의 날치기로 총파업이 전국 들끓게 만들었던 97년 1월, 일군의 동성애자들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투쟁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들은, 스스로가 '동성애자다'라고 말함과 동시에 주변으로부터 소외되어 버리는 한국사회 상황에서, 집회를 통해 집단적으로 자신들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커밍아웃). 그리고 노동자들과 함께 자본에 맞서 투쟁에 나섰다.
한국동성애자, 연대조직을 꾸리다
7월25일, 한국동성애자연합(이하 한동연)이 발족됐다는 소식을 듣고 종로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다. 네 평 남짓한 공간에는 컴퓨터, 비디오, 책들을 비롯해 자료들이 빼곡이 늘어져 있었다. 동성애자 운동의 활동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연대조직이 처음인 줄 알았으나, 한동연은 벌써 공식적으로 동성애자 인권 단체 연합(95년), 한국 동성애자 단체협의회(98년)에 이어 동성애자들의 3번째 연대 조직이다.
운영위원이자「친구사이」의 공동대표인 박철민씨는 한동연의 그동안 동성애자 운동의 한계를 꼬집는다. "기존의 동성애자 단체들은 동성애자 운동에 대한 시각차가 컸습니다. 내부 역량의 한계, 의사소통의 장애, 가부장적인 권위를 뛰어 넘지 못해 발생했던 게이(남성동성애자)와 레즈비언(여성동성애자)의 간극 등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97년 이후 조금씩 자신을 드러내던 동성애자들은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커뮤니티 활동으로만 축소되었다.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족적인 활동만으로는 사회적 편견이나 동성애 인권에 대한 전진은 있을 수 없었다. '성적소수자들의 제한된 연대와 소통에만 그치지 않고, 진보를 추구하는 다양한 세력들과 함께 하는 것'이 한동연의 목표다.
"우리가 노동절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나 노동자라는 이유로 자본으로부터 소외되고, 억압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들의 환경은 다양하지만, 대다수의 동성애자들은 커밍아웃 후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는 등 극심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커밍아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전문직 종사자나 방송·예술 계통의 사람들이나 현실적으로 커밍아웃이 가능하다. 박철민씨처럼 공무원이거나 평범한 직장의 사람들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마치 이성애자처럼 살아갈 것을 강요받는다.
자본주의는 왜 동성애자를 억압하는가?
동성애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애라는 것이 생물학적인 정의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문제라는 것과 그 도덕적 평가 역시 시대마다 변화해 왔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동성애자에 대한 억압은 계급사회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도 있어왔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처럼 동성애자를 억압한 사회는 없었다.
고대 그리스, 일본의 특권 무사계급이었던 사무라이 등에서는 남성과 남성의 사랑을 자연스러워했다. 기독교는 고대 이후 성 억압에 아주 깊숙이 연루되어 있었지만, 기독교가 비난했던 대상은 동성관계만이 아니라 생식과 관계없는 모든 섹스, 자위행위 등을 죄악시했다. 이처럼 많은 사회에서 동성애는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또 어떤 사회에서는 엄격히 금지되기도 하였다.
동성애라는 개념은 19세기말에 헝가리인 의사 벤케르트가 동성애자라는 인간유형을 성적·사회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고안하여 처음 사용했다. 왜 하필 19세기 후반에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커밍아웃』의 저자 프리윅스는 '자본주의 가족제도가 동성애억압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왜 하필 자본주의인가? 그 이전에도 가족은 있어왔지 않은가? 모든 사회에서 가족이 똑같은 형태와 역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는 노예들은 가족을 가질 수 없었고, 봉건건제사회에서 가족은 생산의 중심·대가족이 적합한 사회형태였다. 현대사회의 가족은 더 이상 생산적인 역할을 담당하지 않고 주로 소비와 노동력 재생산을 자신의 임무로 삼고 있다. 따라서 가족 구성원들은 이전과 달리 가족을 떠나 삶을 영위하기가 더 쉬워졌다. 가족은 자본주의에서 이렇게 해체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가족은 계속 존재해왔고 번성해왔다. 이전 사회의 가족과는 매우 다른 형태로.. '남편은 나가서 돈을 벌로 아내는 집안 일을 하며, 애들은 잘 자란다는 식의 핵가족의 이상'은 노동계급에게는 전혀 현실적인 얘기가 아니다. 자본가들은 그런 이상을 만족시킬 만큼 충분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구성원들은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노동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계급에게 허구인 가족을 강요하기 위한 사회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 통제가 광범위하게 부과되었다. 동성애자들은 핵가족의 이상에 걸맞지 않은 모든 성적행위(미혼모, 이혼, 낙태 등)와 마찬가지로 공격당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가족은 더 이상 개개인이 선택하는 삶의 한 방편이 아니라 국가가 통제하고 제한하는 공적인 문제가 되었다. 본질적으로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비인간적인 상품생산논리로 인한 가족해체적 경향과 임금노동자의 재생산을 위한 필요 때문이다. 이런 자본주의적 필요에 따른 가족의 역할을 동성애자들은 만족시킬 수 없다. 그로 인해 동성애자 해방운동은 자본주의적 가족과 그것을 유지하는 국가와의 싸움이 되는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를 위하여'
1917년 러시아에서 노동자 혁명은 성공했었다.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잡았을 때 동성애를 금지하는 법률을 비롯하여 인간적 행태를 규제하는 모든 법률은 폐지되었다. (적어도 레닌에 의한 혁명의 시기에 러시아에서는 동성애 억압이 소멸됐다.) 동성애자의 해방은 결국은 자본주의를 끝장내야만 가능하고, 이를 위해 노동자 계급과 실천을 통한 다양한 접점의 형성과 연대가 필요하다. 역사적으로도 히틀러의 나찌체제가 극명하게 보여주었듯이 자본은 위기의 시기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공격을 강화시켰다. 노동자 투쟁의 역동성에 따라 동성애자들은 더욱 억압받기도, 잠시 해방감을 맛보기도 하는 등 동성애자 해방운동은 노동자 투쟁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져왔다.
현재 한동연은 인터넷 검열 국가 공대위 활동을 중심으로 해서 동성애 커뮤니티의 활동을 비롯해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는 '인터넷 내용 등급제' 반대 투쟁, 예산을 핑계로 에이즈 환자의 건강을 외면하는 '건강보험법 시행규칙'에 맞선 투쟁, 청소년 동성애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청소년 보호법을 비롯해 동성애자의 법적, 제도적 차별에 대한 투쟁을 전개중이다.
또한 개별적인 각국의 게이 단체의 교류를 넘어서서 전체 성적 소수자의 입장에서 국제적 연대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 한동연의 동성애자해방 운동은 걸음마 단계이다. 재정과 역량 모두 너무나 부족하다. 여전히 한동연 내부에는 동성애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해결 지점까지 다양한 편차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전의 연대체 활동의 한계를 딛고자 한동연은 힘든 걸음을 한발짝 더 내디뎌 가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정상적이고, 정형화된 삶은 "노동자도 열심히 일하면 사장이 될 수 있다는 삶"이며 그것은 철저히 자본의 입장에서만 '정상적'이다. 자본주의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동성애자들을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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