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원(청년환경센터 대표)
92년 리우회의 10년 이후...
지난 8월26일부터 9월4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는 189개국 정부 및 비정부기구 대표단 6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지구정상회담(World Summit on Sustainable Development, WSSD)이 열린다. 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진행되었던 유엔환경개발회의 이후 10년만에 열리는 이번 회의에서는 10년전 리우회의에서 지구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제기했던 각종 의제들과 그 이행안들이 제대로 진행되었는가를 평가하고, 추가로 새로운 의제를 채택하게 된다.
하지만 리우회의의 성과로서 진행되었던 기후변화협약이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로 인해 유명무실화되어갔던 과정에서 이미 드러난 것처럼 이번 회의 역시 '빈수레'가 될 공산이 크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회의 시작 전부터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단적으로 세계 환경오염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미국의 경우 부시 대통령이 지구정상회담 불참을 선언함으로써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사실은 최근 유럽 중부를 강타한 홍수로 인해 피해복구를 위한 중부유럽 정상회의가 열리게 된 것과 대비되면서 부시행정부의 반환경성을 더욱 또렷이 부각시키는데 결정타를 날리게 되었다.
지구정상회담, 사실상 성과없다?!
하지만 2002년 지구정상회담의 '실제적 무용론'은 최근에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일각의 좌파적 환경운동가들은 최초의 환경정상회담이라는 자체만으로도 그 의미가 충분하다고 평가되었던 92년 리오회의가 그 화려한 겉포장지만큼 제값을 다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악용될 소지가 있는 것으로 평가해왔다. 즉, 전지구적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경로에 그간 그러한 환경파괴를 자행해왔던 기업들을 공식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생태주의자들의 요구에 의해 제안되었던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담론도 기업체 혹은 기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시장주의자들에 의해 '지속가능한 시장 운용', '지속가능한 세계화'로 변용되면서 그 본래적 의미가 점차로 퇴색되어 간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따라서 이미 이번 2002년 지구정상회담과 관련해서도 기업체 그룹에서 선도적으로 준비해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세계최대의 사업체 로비 그룹인 국제상공회의소에서는 99년 가을부터 이번 지구정상회담을 준비해왔으며, 그 속에서 자신들이 지속불가능한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애를 써왔다. 그러한 노력에 의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지구정상회담'은 '본질적으로 지속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세계화'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활용하겠다는 불가능한 일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 자본가들에게 맡길 수 없다
자본주의 세계화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놓고 1세계와 3세계 간에, 자본과 시민사회간에 설전을 벌이게 될 이번 지구정상회담은 어쨌건 최대의 국제환경회의니 만큼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세계화 반대 시위를 벌이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회의장소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선정된 것도 최근 수위가 급격하게 올라가고 있는 반세계화 시위를 사전에 예방하는 차원에서 정치적 자유가 상대적으로 적게 보장되어 있는 나라를 택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명분도 좋은 '환경'회의라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세계화라는 틀 내에서 가진자들의 기득권에 크게 흠집내지 않은 상태로 환경의 질 개선 혹은 현상유지를 하기 위한 것임을 돌려서 인정하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 즉, 지구정상회담은 반세계화 시위대의 적임을, 다시말해서 자본의 세계화의 시녀임을 자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이 논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과연 전세계 민중들의 환경권과 생존권을 적극적으로 고민한 것일 수 있을까?
자본과의 파트너쉽을 뛰어넘어
10년 전 리오 회의는 전세계적 차원에서의 의미를 지닌 것이기도 했지만, 한국 환경운동 내부적으로 봤을 때도 의미심장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계기였다. 당시 민간단체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국제회의에 참가하기 위한 비용을 기업 후원으로, 그것도 페놀사건을 야기했던 두산의 후원으로 충당하는 문제를 가지고 상반된 의견이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기업 후원을 넘어 기업 회원까지 두고 있는 환경단체와 기업이나 정부의 지원 일체를 거부하는 단체가 서로간에 타협할 수 없는 원칙으로 평행선을 긋고 있는 현재까지로 이어진다. 이것은 단순히 재정원을 더 많이 확보하는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환경운동의 상, 그 속에서 자본 혹은 자본의 이해관계와 긴밀하게 관계 맺고 있는 정부기구에 대한 역할 규정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리오 회의 이후 시민사회와 자본, 정부기구들 간에 공동의 파트너쉽을 형성할 기회가 이전보다 확장되었고, 이 속에서 시민사회가 시민 혹은 민중들의 이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일들이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한계적일 뿐만 아니라 때로 자본의 이해를 은밀히 수행하기 위해 시민사회를 이용하기도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확실한 우위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편을 이용한다는 생각은 약자의 만용일 뿐이다.
민중들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하여
어차피 결과는 회의가 끝나봐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겠지만, 애초부터 동상이몽으로 해석하고 있는 지속가능성을 화두로 진행된 회의가 성공적으로 마감되리라 장담하는 이는 많지 않다. 구체적인 과정을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그 지향 자체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강제성도 없으면서 '대충 환경친화적인' 협약들을 만들고 이행결과에 대해 평가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은 '우리도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그렇게 흐리멍텅한 녹색의 이념으로는 살육도 불사하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감당해낼리 만무하다. 지속불가능한 생산과 소비로 점철된 현대사회에서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애매모호한 환경주의나 허울좋은 형식주의가 아니라 철저하게 민중의 이해에 기반한 행동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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