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혁(노동자의 힘 회원)
미복직자들의 분노
2002년 7월25일 아침, 밤잠을 설친 조합원들이 초조한 얼굴로 조합 사무실과 콘테이너 주위에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복직자 명단의 공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2시경 장시간의 최종교섭을 마무리지은 교섭대표들이 내려오고 정특위 총회가 시작되었다. 총회자리에서 정특위 대표는 '3기 정특위를 해소한다'고 말하였고 그와 동시에 부서별로 복직자의 명단이 통보되었다.
명단이 통보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복직자 명단에서 제외되었던 정리해고자들이 하나둘 침통한 얼굴을 하고서 조합사무실로 몰려들기 시작하였고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한 조합원이 "300명을 선정한 사람이 누구야. 누가 했길래 이토록 황당하게 처리가 된거야.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사람조차 포함이 되어 있으니 이거 말이나 되는 소리야."
그러면서 조합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던 상집간부에게 사뭇 시비조로 말을 걸기 시작하였다. 이에 뒤질세라 주변에서 관망하고 있었던 일부 조합원들이 가세하면서 급기야 욕설이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야이, 개새끼들아. 복직도 책임지지 못할거면서 무엇 때문에 나오라고 한거야. 1년 6개월 넘게 아무일도 못하면서 나온 조합원들이 허수아비란 말이냐."
이런 욕설이 나오기가 무섭게 일부 조합원은 의자를 던지기 시작하고 위원장이 직접 나와서 해명하라면서 상집간부를 밀치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조합원들의 행동은 더욱 더 분노가 폭발하면서 조합 내부에 있는 각종 집기를 부수고 육탄으로 조합원들의 격한 행위를 저지하고 있었던 상집간부들을 폭행하는 사태로까지 비화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소비조합장을 비롯하여 다수의 상집 간부가 부상하였고 조합원들 가운데서도 부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하였다. 1년 6개월을 넘게 투쟁해왔던 어제의 동지가 오늘 폭력을 휘둘러대는 극단적인 관계로까지 마주한 것이다. 투쟁을 하면서 힘들어 하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던 동지들이 이제는 서로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긴채 '오욕으로 얼룩진 결과'를 뒤로하며 그 막을 내리려 하는 순간이었다.
분열의 후유증
다음날 정특위는 미복귀자를 중심으로 간단한 집회와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이후 행동방향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여기에서 미복귀자들의 다수는 조합측 선정기준의 투명한 공개, 정특위의 유지, 투쟁방침의 집행부 공유를 주장했고 일부 조합원들은 새로운 선정기준에 입각한 회사측과의 재교섭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조합측 선정기준과 관련하여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인정되요. 하지만 열받는 것은 미복귀자들을 어떻게 복직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설득력있는 대안도 내놓지 않으면서 정특위 해소를 결정한 것은 집행부의 책임있는 태도가 아니예요. 우리들이 위로금 몇푼 때문에 싸운것도 아닌데 집행부의 태도를 보면 위로금 몇푼 받아먹고 떨어지라는 것 이상은 아니예요."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정리해고 미복귀자들의 다수는 조합측 선정기준 및 정특위의 활동방향보다도 자신들이 복귀하지 못한 것에 대한 감정적 서운함이 더욱 짙게 깔려있었다고 보여진다. 그것은 정리해고되었다가 복귀한 한 조합원의 말을 들어보면 잘 드러난다. "만약 내가 복귀하지 못했다고 해도 일시적 울분으로 인해서 충분히 그런 감정적 행동들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조금쯤 냉정해져야만 하는데 여전히 자기들 위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복귀자들의 다수는 정말로 미안해 죽을 지경인데 오히려 미복귀자들이 자신들과 다시 싸우자고 하는 것은 거의 강요에 가까워요. 이것은 문제를 단결된 힘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정특위 내부조차 또다시 분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 같아요."
그러나 집행부 역시 초기에는 감정적 대응을 넘어서지 못했다. 노동조합 집행부는 8월3일-4일 열린 중집 수련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조합원들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고소 고발을 하는 등 단호하게 대처해나간다는 방침을 정했다. 나아가 300명의 복직자 선정기준에 대해서도 조합원들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적절한 시기에 조합측에서 선정했던 명단을 공개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노동조합 집행부는 7월25일 사태의 본질은 특별단체교섭에서 합의된 복귀인원이 300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미 한계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노동조합이 선정했던 184명과 회사측이 선정했던 그 나머지 인원이 혼재돼 발표되었기 때문에 더욱 조합원들의 분노를 부채질했다는 분석이다. "현재 조합원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예요. 하지만 다수의 조합원들이 자기 자신이 선정되지 못한 것에 열받지 말고 지금 당장은 184명에 불과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정리해고 복직에 대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으로 다 끝난 것처럼 말하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지요."
하지만 2000년 해외매각 반대투쟁속에서 징계해고되었던 해고조합원은 이런 노동조합의 주장에 대하여 오히려 말도 안된다는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 "아무리 조합원들이 잘못했다 할지라도 그것을 민형사상 고소고발로 몰아간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에요. 우리가 얼마만큼 자본에게 이런 방식으로 시달리고 고통을 당했는데 또 우리가 똑같은 방식으로 대처한다는 것은 노동운동을 한다는 것에까지 회의를 하게돼요. 그리고 노동조합이 당당하다면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하면 되지 왜 계속 회피하는거냐 이거에요. 협상 전과정을 투명하게 밝히면 그것조차 이해하지 못할 조합원들은 없다고 봐요."
수습책은 서로가 한 발 물러서는 것
시간의 흐름속에서 모난 돌이 둥글게 만들어지듯이 일시적인 감정의 격앙속에서 분열로 찢기워진 상처 역시 점차적으로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특위는 미복귀자가 중심이 되어 8월6일 비상총회를 개최하면서 임시적으로 부서 대표자들을 선출하였으며 노동조합에 대한 요구안까지 확정하였다. 그 주요한 것은 1) 정특위의 유지 발전을 인정할 것 2) 미복귀자에게 조합원 자격을 인정할 것 3) 300명 복귀자 선정기준을 공개할 것 4) 회사에게 추가 협상을 요구하여 이후 리콜시 미복귀자를 최우선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할 것 등이었다.
이런 입장을 갖고서 노동조합과 두세차례의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즉각적으로 상호간에 벌어진 간극은 한꺼번에 채워지지는 않았으며 서로가 입장을 확인하는 선에 머물렀다. 즉 노동조합은 첫 번째 요구 사항과 관련하여 정특위는 해소하고 복직 추진위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과 함께 미복귀자에게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방향속에서 대의원대회에 상정하여 처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번 정리해고 복직이 정리해고 조합원들의 생계를 포기한 치열한 투쟁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면 이후로 현장 조합원과 정리해고 조합원들의 투쟁이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민주광장 377호).
그러나 서로가 입장차이를 확인하면서도 대화를 계속한다는 것은 무언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계기를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대화와 수습책의 모색에 피해갈 수 없는 뇌관이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위로금 지급 문제였다. 특별단체교섭 결과 회사는 정리해고되지 않은 조합원들에게 미지급된 상여금 50%를 정리해고자 위로금으로 조성할 것을 노동조합과 합의했던 바 있다. 약 47억에 달하는 위로금의 지급을 둘러싸고 노동조합은 이미 끝난 간부합동회의에서 1750명의 정리해고조합원 중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던 1200여명의 조합원에게만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나이와 출석정도 등을 감안하여 6개의 등급으로 차등하여 지급하기로 최종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이처럼 차등 지급한다는 방침 역시 일부 미복귀된 조합원들에게는 커다란 불만의 씨앗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위로금지급이 발표되었던 8월10일,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평온한 가운데 하루가 흘러갔다. 물론 당일 조합원의 소리 등에서 차등 지급하는 것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적지않게 나왔다. 하지만 7월25일 한 번의 상처를 겪었던 조합원들은 또 그만큼 성숙되어 있었다. 1년 6개월간의 치열한 투쟁속에서 단결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던 조합원들이었기에 이날은 많은 불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으로 삭히면서 노동조합의 방침에 암묵적인 동의를 보냈던 것이다.
마침내 8월20일 임시대의원 대회가 열렸다. 여기에서는 이후 대우 자동차가 선별적으로 지엠에 매각되었다 할지라도 노동조합만큼은 통합 단일노조로 가야 한다는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으로 정리해고자 복직 특별위원회에 대한 안건이 처리되었다. 그 핵심적 내용으로는 "정리해고자 300명 복직 실무협의 종료후 명단이 발표되면서 많은 내홍을 겪어왔던 미복직자에 대한 정특위운영규정도 이번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개정되었다. 대상 및 조합원 자격으로 2001년 발생한 정리해고자를 대상으로 하고 노동조합 규약 제9조에 따라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기로 하였다. 여기에 따라서 조합비를 납부하고 2개월 이상 조합비를 납부하지 않았을 경우 노동조합 규약과 규정에 의해 모든 권리는 제약을 받는다"(민주광장379호).
진정한 단결을 위해 남겨진 과제들
이러한 대의원대회 결정에 미복직된 정리해고자들은 적지않은 불만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년 6개월 넘게 싸워오면서 배운 것은 노동자들은 투쟁함으로써만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복추위로 가기로 한 것은 많은 부분 이런 투쟁의 정신이 훼손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네요."
노동조합의 집행부나 조합원 공히 300명 복귀가 갖는 의미와 함께 현실의 과제를 정확히 직시해야 한다.
첫째, 300명 복귀가 갖는 의미와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300명의 복귀는 전체 정리해고자 1750명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더구나 회사측 선정자를 제외한다면 조합측 선정자는 불과 184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출발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투쟁했던 조합원들의 성과이기도 하다. 이런점에서 300명 복직에 대한 반대급부로 특별단체교섭에서 많은 부분을 회사측에 양보했다는 이유로 300명 복직이 갖는 의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300명 복직은 그 수에 관계없이 정권과 자본이 추구해왔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투쟁으로 돌파하면서 투쟁으로 쟁취했다고 하는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힘이 갖는 객관적 한계로 인하여 1750명 전원이 아니라 300명밖에 복직시킬수 없었던 점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정리해고 투쟁에 많이 참가하였기 때문에 복직되고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복직에서 탈락해야 한다는 기준이 이미 명확한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직 대상자는 투쟁에 참여하였던 대오뿐만 아니라 정리해고자 전원이 되어야 한다는 정신을 분명히 가져가야 한다.
둘째, 여전히 정리해고 철폐투쟁은 끝나지 않았으며 따라서 또한 분명한 것은 투쟁으로 돌파해야 한다는 기조를 분명히 확립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어떤 조합원의 말처럼 "결과는 리콜로서 귀결되는 것이 예견된 수순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조차 지난한 투쟁이 없으면 꿈조차 꿀 수 없는 것이다."라는 말은 지극히 온당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의원 대회에서 인준된 정리해고자 복직 특별위원회는 그 명칭의 변경과 관계없이 내용적으로 정특위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바로 정리해고 투쟁이야말로 17대 집행부와 조합원들, 특히나 정리해고 조합원들의 피와 눈물이 어려있는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후에 어떤 집행부가 들어선다 할지라도 투쟁의 전통을 반드시 이어가도록 강제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기조와 관점을 갖고서 이후 돌파구를 찾아나갔을 때 복직인가 미복직인가의 갈림길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었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복직자의 역할과 임무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회사측에서는 복직자들에 대하여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대로 버려두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복직하기 전 교육에서부터 시작하여 복직하더라도 다양한 노무관리를 통해 회사측에게 알아서 기는 노동자를 만들어가기 위해 온갖 기제들을 동원할 것임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너무나 뻔한 이야기지만 복직자들의 단결된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복직자들이 복직자 동지회 등을 결성하려고 한 행동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투쟁의 기풍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단지 조직을 만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후 복직에 대비하여 조직적인 토론과 교육 속에서 이후 현장활동을 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랬을 때만 먼저 들어간 복직자들이 미복직자들과 여전히 하나로 투쟁하는 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이들의 적극적 활동만이 죽어있는 현장을 살릴수 있는 마지막 기폭제이기 때문이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