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뉴라운드와 노동자민중의 삶

김영선(노동자의 힘 정책부장)

시애틀 전투 그 후 2년. 초국적 자본의 '위기에 빠진 WTO 일병 구하기'
2001년 11월9일. 한국 아르헨티나 핀란드 홍콩 이탈리아 프랑스 호주 태국 등의 노동자 민중은 WTO반대! WTO해체!, 고용안정과 노동권 보장!, WTO out of our life! 라는 구호를 외치며 신자유주의 지구화 반대 투쟁을 진행했다. 그러나 같은 날, 카타르 도하에서는 WTO 4차 각료회의를 개최하여 '도하개발의제(DDA:Doha Developement Agenda)'라는 명칭의 뉴라운드가 출범하였다. DDA 뉴라운드 출범은 세계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저항을 일정하게 넘어섰음을 의미한다. WTO는 1999년 11월 시애틀 3차 각료회의가 무산된 뒤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 점은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WTO를 주도하고 있는 제국주의 진영간의 세계 패권을 둘러싼 갈등과 알력 심화,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소외되거나 수동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던 제3세계 정부의 반발, 그리고 시애틀 각료회의를 저지시킨 후 IMF, 세계은행, G8정상회담, 아셈회의 등 신자유주의 지구화를 촉진하는 흐름에 정면으로 맞서 국제연대투쟁으로 무장한 전세계 노동자 민중운동·사회운동이 촉발된 것이다. 여기에 4차 각료회의 두 달 전 발생한 9·11테러는 그동안 미국 주도로 추진되던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세계패권전략이 일정하게 실패했음을 의미했다. 미국이 9·11 이후 패권전략의 유지·확장과 무역의 자유화를 진전시킬 의도로 對테러전쟁을 감행하고 뉴라운드 출범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역설적이나마 WTO가 봉착했던 위기를 드러내준다. DDA 뉴라운드 출범은 이런 위기에 빠진 WTO일병을 초국적자본이 일단 구출한 것을 의미하고 전세계 노동자민중에게는 새로이 투쟁전열을 정비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뉴라운드(DDA) 협상, 어디까지 왔나
WTO 뉴라운드는 작년 11월 출범 이후 국가간 분야별 협상을 거쳐 2005년 1월1일 이전 종료를 목적하고 있다. 뉴라운드에서는 그동안 최대장애였던 농업과 서비스분야 협상이 핵심이다. 농업분야는 미국을 위시한 케언즈그룹(농산물 수출국모임)의 주장대로 '수출보조 폐지, 국내보조의 대폭감축, 시장접근(관세·비관세장벽)의 대폭 개선'이 선언문에 담겼다. 서비스부문은 지난 6월 말을 기점으로 각국간 양허요청안이 제출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지금까지 미국, 호주, 중국, 일본 등이 한국에 시장 개방을 요청한 부분은 에너지, 통신, 전문직·사업서비스(법률, 의료, 회계, 부동산, 컴퓨터), 우편송달, 교육, 금융, 운송(철도 포함) 등 서비스 전 영역에 달한다. 한편 한국 정부는 금융, 통신, 건설, 해운, 유통 등을 중심으로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에 개방을 촉구하였다. 이외 비농산물 분야, 규범분야, 환경, 지적 재산권 분양에 대해서는 관세인하, 반덤핑협정, 각종 보조금철폐 등이 주된 이슈다. 서비스 협상이 본격화되면서 각 국의 대립양상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른바 '선진국 VS 개발도상국'의 대립만이 아니라 선진제국주의 국가들간 대립·갈등의 폭과 양상이 다양하다. '개발도상국과 최빈국이 이익을 고루 나누어 가진다'는 뉴라운드 명칭(DDA)의 의미가 무색할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지구화 패권을 둘러싼 제국주의 진영의 갈등이 갈수록 첨예해짐을 알 수 있다.
주목할만한 것은 한국이 이번 뉴라운드에서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상실·포기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뉴라운드에 임하는 한국 정부의 '강력한 개발도상국 졸업압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 '서비스 분야에서는 공격적 자세로 협상을 추진하고 농어업 및 일부 서비스 분야는 점진적 개방을 추진하면서 구조조정 및 경쟁력 제고의 계기로 활용한다'는 방침에서 드러나고 있다.

WTO 뉴라운드와 한국의 노동자민중
뉴라운드 농업 분야 협상은 한국 등 농산물 수입국의 농업시장 전면개방과 전세계 농업시장의 단일화를 목적한다. 더구나 뉴라운드에서 한국은 개발도상국 지위를 상실했기 때문에 관세 감축폭이 확대되고 '추곡수매'등 최소한의 농업보조금 지급도 감축된다. 하기에 한국정부의 '농업 분야 협상에서 식량안보, 농촌개발, 환경보호 등 비교역적 관심사항이 고려사항임을 확인하였다'는 말은 하나마나한 말이다. 기존 UR협상과 뉴라운드 협상이 진행되면 2005년 1월1일부터 시장개방안이 적용된다. 관세화 개방시 2005년 관세율은 기준관세율(440%∼460%이하)의 90%가 되므로 396%∼414%이하가 된다. 현재 중국산 쌀값이 27,000원(정곡 80kg)정도인데 396%∼414% 관세를 적용해도 국내 쌀값의 70% 수준인 106.920원∼111,780원에 거래될 것이다. 한국은 총농가의 78%가 벼농사에 종사하고 있으며 벼농사가 농업소득의 46%이상을 차지한다. '쌀'이라는 작목 하나에 국한하여 보더라도 WTO 뉴라운드에 따라 쌀시장이 개방되면 농가들은 시설채소, 화훼, 축산 등으로 관심을 돌릴 것이다. 따라서 축산, 화훼, 시설채소, 과수 등도 악무한적 시장경쟁에 내몰리게 되며 농업의 파탄과 농민계층의 동요·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쌀(농업)시장개방→쌀값폭락→쌀 이외 품목 집중→과잉생산→가격폭락→농업몰락·파탄→농민계층의 양극화(소수의 대경작부농, 다수의 빈농·빈민·프롤레타리아화)→다수 농민의 도시집중 및 유휴노동력화'라는 구도는 불보듯 뻔하다. 전국농민회총연맹에 따르면 빈민화된 농민들이 도시에 모일 때 발생하는 비용(주택, 상하수도, 교통, 공해, 교육 등)은 현 농촌을 지원할 때 드는 비용보다 10배 이상 든다. 더 큰 문제는 농업 및 관련산업의 몰락과 재편, 그리고 다수 실업자군의 양산과 노동시장에서의 경쟁격화·노동유연화의 심화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산업재편 및 노동관리전략을 완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한국의 서비스 분야 협상은 공공부문 구조조정 및 제2금융구조조정 등 서비스 분야 개방 준비와 함께 진행되고 있다. 하반기 국회를 노리고 상정한 것만 보험업법, 철도주식회사법, 경제특구지정및운영에관한법 등이다. 산업자원부가 발표한 '전기요금 체제 개편방안'은 도 전력산업 민영화를 위한 수순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 일본과 투자협정 협상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던 스크린쿼터와 통신사업자 외국인지분제한에 대해서도 큰 영향력이 없다는 판단하에 축소하거나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육분야는 외국대학의 진입을 허용하기 위한 해외송금제한 완화 등을 비롯하여 교육의 상품화, 교육재정 국가책임의 개인전가(노동자민중에 대한 전가), 교육에 대한 공적 통제와 관리의 불가능 등을 초래할 교육 개방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장기간의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는 보건의료 분야는 시장을 개방할 경우 보건의료의 상업화와 보건의료비의 증가 및 노동자·민중의 부담 증대, 보건서비스에 대한 혜택 및 건강의 불평등 심화 등이 예상된다. 결국 교육, 보건의료라는 사회적 서비스 영역이 시장개념을 지닌 상품으로 취급되면서 계급간 서비스 혜택의 불균등이 심화되고 지출비용 상승에 따르는 생활임금의 저하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조건의 악화를 초래할 것이다. 해당 분야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불안정노동화 및 노동조건의 악화, 노동강도 강화는 두말할 나위 없다.
한국 정부의 서비스 분야 협상에 임하는 일관된 기조는 개방분야 양허안을 제출할 내년 3월 전에 구조조정을 완료하여 적절한 시장개방의 조건을 구비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김대중 정권이 '임기안에 4대 부문 구조조정을 완료하여 경제 경쟁력을 제고하겠다,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로 우뚝 서겠다'는 기존 경제부문 기조와 완전히 일치한다. 즉,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완료를 통해 국내적 조건을 완비하고 동북아 지형에서의 신자유주의 패권을 점유하여 세계패권의 한 부분을 담보하겠다는 것이다. 정권과 자본의 계획대로라면 노동자 민중의 삶의 질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동안 미약하나마 투쟁과 저항으로 지켜왔던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생활권조차 빼앗길 수밖에 없다. 하기에 현재 구조조정과 뉴라운드에 대한 투쟁은 신자유주의 지구화·제국주의화에 맞설 정치적·계급적 집중을 형성해야 하며 당장 현장과 부문, 지역에서는 뉴라운드가 초래할 아비규환속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을 승인하는 것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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