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희(노동자의 힘 선전부장)
"아 글쎄, 안된다니까요. 뭐 자랑할게 있다고… 지난 과거 들춰내기도 싫어요." 병은 자랑해야 빨리 낫는다고, 일하다가 생긴 병은 더 그래야 한다고 설득해도 막무가내다. 사측에 의한 불이익은 없을 거라고, 다른 노동자들에게 많이 알려야 한다며 함께 병원에 들어온 한라공조 조합원들이 협박반 설득반을 하고서야 인터뷰를 허락한 김진호 동지. '병든 노동자'는 무수히 많지만, 병을 알리는 것조차 쉬쉬하는 것이 대다수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골병을 먹이다 : 좀처럼 고치기 어려울 정도로 속으로 깊숙이 병들게 하다.
김진호. 35세. '추간판 탈출증, 제4·5요추 및 제5요추, 제1척추'가 그의 병이다. 한라공조 입사 7년만에 그는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골병든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하루 10시간을 꼬박 서서 일해야 했다. 한번에 10kg가 넘는 물건을 들어 옮기는데 하루평균 1200~1300개씩이다. 많을 때는 1500개. 7톤의 무게를 매일같이 들어올린 셈이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노동강도가 더 심해질수록 그의 몸은 더 빨리 망가졌다. "라인에서 일하는데 김진호씨 얼굴이 갑자기 벌개지더니, 팍 주저앉더라구요. 그리고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통증을 호소했죠." 같이 일하던, 지금은 옆 침대에 같이 누워있는 동료의 이야기다.
김진호 동지는 2000년 4월18일 산재처리 신청을 했다가 불승인 판정을 받았었다. 당시 근로복지공단에서 발송한 공문을 보여주며 억울함을 털어 놓는다. "빈박스를 들다가 다쳤다고 합디다. 또 목격자도 없으니 산재처리가 안된다더군요." 빈박스를 들다가 다친 것도 아니었고, 4~5명의 목격자도 증인으로 세웠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사측의 허위진술만을 채택했다. 산재불승인을 받았지만, 이미 김진호 동지는 정상적으로 일할수 없을 정도로 허리통증이 심했다. 하는 수없이 연월차까지 다 합쳐 100여일의 휴가를 내고, 개인적으로 치료를 받았다. "복직 후에도 몸이 계속 안 좋았어요. 야간수당도 포기했죠. 체력이 안되니까…" 그렇게 1년을 보냈다. "그해 10월에 결혼했는데, 허리 아픈 것도 심각하지 않다고 속였죠. 뭐." 아직 아이가 없다며, 자신이 허리가 아파서 노력을 많이 못하고 있단다. 성기능 장애 역시 근골격계 질환으로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에 개인이 노력을 못한 문제가 아니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발그레 웃는다.
'너만 알아라'며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
대전 중앙병원에는 한라공조 노조에서 근골격계 집단요양 투쟁을 벌이고 있는 11명의 노동자들이 입원하고 있다. 노조가 11명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에 집단요양신청을 냈고, 전원이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판정돼 집단요양에 들어갔다.(본호 26~7쪽 참조.) "대우조선 노조 투쟁 얘기를 들었어요. 서울서 의사선생님이 내려오시고, 상태가 심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단받았죠. 요양판정을 받은지 일주일 전에 미리 병원에 들어왔습니다"라며 그간의 과정을 설명한다. 과정에서 사측의 회유나 탄압이 있었을 법도 한데 모두들 그게 의아하단다. "참 이상한게 사측에서 아무 얘기 안하더라구요. 우리는 우리끼리 다짐했었죠. 절대 '너만 알아라' 하지 말기로요." '너만 알아라'하면서 한 사람에게라도 말했다간 이 싸움은 끝장이라며, 서로들 다짐에 다짐을 했고, 그 약속은 지켜졌다. 준비 과정에서의 철저한 보안이 사측의 회유를 사전에 봉쇄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투쟁에 확신이 섰던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지난시기 한라공조는 어용노조의 기나긴 역사속에서 노조에 대한 신뢰와 현장투쟁은 이미 땅에 떨어진 상태였다. "처음에는 우리도 망설였죠. 중간에 노조에 가서 '겁나서 못하겠다'고도 했습니다." '병든 노동자'로 낙인찍히면 일터에서 쫓겨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앞섰다. 하지만 몸뚱아리가 아픈 문제였다. 더군다나 노조의 의지가 확실했다. "그때 노조에서 어리버리하게 나왔으면 아마 여기까지 안왔을 겁니다. 믿으니까 계속 온거죠." 이번 투쟁으로 한라공조의 현장은 살아나고 있었다. 황운하 노동안정국장은 "예전에는 조합원들이 '상여금 언제 나오냐'고 묻곤 했었는데, 지금은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어떠냐', '단협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며 노조에서 투쟁하고 있는 현안에 대해서 물어요"라고 덧붙인다.
문제는 공장안이다.
'왜 11명만 요양신청을 했어요?' 라는 질문에 병실안 침대 여기저기서 말들이 쏟아진다. "산재신청하면 뭐해요. 회사하고 근로복지공단하고 짜고 다 불승인시켜 버리는데." "사측이 산재신청하게 내버려두질 않아요. 웬만하면 다 공상처리하고, 아프다고 얘기하면 반장이 산재신청 못하게 유도를 해요." 이 뿐만이 아니다. "산재처리가 돼도 요양후 복귀가 문제죠. 사측에서는 '다쳤으니까 야간, 잔업, 특근 안시키겠다'고 하고, 우리야 잔업, 특근 안하면 당장 생활이 곤란하니까 '각서'를 쓸 수밖에 없어요." 이후에 또 아프게 되더라도 회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각서를 쓰고 난 후에야 야간, 잔업, 특근을 배치시켜왔단다. 공장안에는 이미 망가진 몸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이 넘쳐나지만 사측의 철저한 통제는 개인의 문제로, 또 스스로 숨기게끔 만들어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11명의 '집단적인' 요양은 요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프다고 '말'한 것이고, 개인이 아닌 '우리'의 집단적인 문제이며, 그 원인은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공장안'에 있음을 폭로하는 투쟁인 것이다. 그러니 근골격계 투쟁에서 '집단요양'은 투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노동자의 몸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되고 있는 노동강도가 해결되지 않으면, 치료를 받고 현장에 돌아가도 아프지 않고 일한다는 것은 무망한 터. 그럼 현장을 어떻게 바꿔야 아프지 않고 일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아침 8시에 출근해서 3시간만 일해도 벌써 종아리가 저릿저릿하거든요. 지금은 2시간 일하고 10분 쉬는데, 1시간에 10분 쉬면 좋겠어요"라며 김진호 동지가 먼저 말을 꺼낸다. 하지만 노동강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에 모두들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현장에서는 힘들어 죽겠는데도 함부로 작업중지권도 못써요. 전체가 덤벼들어야 하는데…" "지금 집행부는 믿음이 가는데, 어용이 다시 들어오는게 걱정이에요." "이거, 워낙 전반적인 문제라…" 모두들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 현장이 바뀌지 않으면 아픈 몸도 낳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이번 투쟁을 통해 확실히 알게됐다. "사측의 압력 때문에 동료들이 몸을 더 이상 망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들은 현장에 돌아가도 절대로 각서쓰지 않을 겁니다." "요양 끝나고도 잔업 안주면 부당노동행위죠?" 당장이라도 노조와 합심해서 한판 붙을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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