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야기]노동자를 죽인 비정한 노동의 현장

정동주 조합원, 근골격계 질환으로 자살

최종학(대우자동차 노조 조합원)

대우자동차 조립1부는 노동강도가 엄청나기로 소문난 곳이다. 특히 시트를 장착하는 라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든 곳이다. 정동주 조합원(38세)은 작년 대우자동차 1750명 정리해고 당시 조립1부 조합원 1200명 중 절반이상이 정리해고 당했는데도 살아 남았다. 그는 회사에서 시키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마다않는 조합원이었다.
시트 장착 라인의 작업은 22.6kg의 시트를 들어 옮겨 수작업으로 장착하는 반복작업으로 건장한 사람도 혀를 내두르는 힘든 작업이다. 생리적 현상이 발생하더라도 흘러가는 컨베이어를 두고 볼 일을 보러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상시에 라인을 정지시킬 수 있는 스위치가 있지만 그것을 잡아 당기는 강심장은 없다. 그런데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인원은 줄어든데다 신차 칼로스의 생산으로 노동강도는 더욱 강화되어 숨 쉴틈 없이 작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다들 조금만 더 견디라고 했다.

조합원들의 평균 근속년수가 10년 가까이 되고 시트 라인에서만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작업하는 조합원들 중 허리 안 아프고 어깨 안 아픈 사람 없다. 정동주 조합원 역시, 올해 5월부터 어깨가 아파와 고통스럽게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아프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조합원 5명 중에 3명의 산재 환자들이 작년에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래서 아프다고 하면 추가 구조조정 일 순위가 된다는 소문이 현장을 휘감고 있어서 아프다는 말을 입밖에 꺼내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어깨가 너무 아파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자 정동주 조합원은 관리 감독자와의 면담에서 작업공정을 바꾸어 달라고 하고 병가도 신청했다.
담당 대의원과 노무담당 차장과도 면담했지만 다들 조금만 더 견뎌내고 지켜보자고 했다. 공정을 바꾸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주변 동료들도 똑같이 힘들고 아픈데 혼자만 공정을 바꾸어 갈 수도 없는 일 아니냐는 핀잔도 들었다.
그런데도 노무담당 차장은 무조건 쉬어야 한다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진심인지 아닌지 분간하기 어렵지만 아픈데 공정을 옮긴다고 나아지는 게 아니니 산재가 아닌 공상으로 처리해 주겠다고 했다. 담당 대의원도 그렇게 하는 것이 무난하다고 했다. 노동조합을 굳이 찾아가지 않더라도 일이 해결될 것 같아서 신경 써주는 대의원과 노무담당 차장이 너무 고마워서 존경심까지 생겼다.

혼자 치료를 받다.

벌써 아프기 시작한지 2달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정동주 조합원은 월차를 써가며 사비를 털어 한의원과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했다. 어떻게 쉬어야 하는 걸까? 불면증까지 와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가 쌓일대로 쌓여 극도로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가뜩이나 힘든 살림에 아프기까지 하느냐고 성화였다.
노동조합을 찾아가서 상담을 해보고 싶었지만 주변의 눈초리가 매섭고 또한 노동조합은 정리해고자 복직 문제로 정신이 없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담당 대의원이나 노무담당 차장은 약속은 해놓고 가타부타 말이 없어서 다시 한번 감독자에게 면담신청을 해서 노무담당 차장에게 상황을 얘기했으나 노무담당은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하면서 여름휴가를 갔다 와서 얘기를 다시 해보자고 했다. 존경까지 하는 노무담당 차장을 그래도 믿었던 정동주 조합원은 아무런 말도 더 이상 하지 못하고 면담을 끝냈다.

그는 오로지 회사만 바라보고 살았다.

정동주 조합원은 휴가를 다녀와서도 상황이 바뀌지 않자 다시 면담을 신청했다. 노무담당 차장은 그때서야 진단서를 끊어오면 공상처리 해주겠다고 했다.
월차를 내서 진단서를 끊으러 갔는데 일차 진단이 견비통 4주 진단과 불면증에 의한 신경 정신과 치료도 받으라는 소견이었다. 진단서를 노무담당 차장에게 제출했더니 대뜸 딴데서 다치고 와서 회사에서 다쳤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하면서 공상처리는 물론 병가도 내 줄 수 없다고 했다.
회사에서 업무 중에 발생한 부상이 아니고 70% 휴무를 할 때(조립1부는 생산물량이 없어 일주일에 3일 정도만 근무하고 나머지는 출근하지 않았음.) 막 노동판에서 일을 하다가 다친 게 아니냐고 오히려 추궁까지 받았다.
제한된 공간에서 컨베이어를 따라 가느라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기계처럼 움직여 온 것이 몇 년인데 그런 소리를 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눈 감고도 시트장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된 몸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까지 아플 수는 없다라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한마디도 못한 채 면담을 마쳤다.
주위에서는 산재요양을 받으면 회사가 막대한 보험료도 물어야 하고 노동부에 신고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안해주려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만 담당 감독자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했다. 담당 대의원도 노동조합과 찾아 상담하겠다는 얘기는 입밖에도 꺼내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회사가 산재처리나 공상처리를 해 주려다가도 해 주지 않는다고 까지 했다. 상황이 그렇게 까지 진행되었으나 정동주 조합원은 노동조합을 찾지 않았다.
담당 대의원도 노동조합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정동주 조합원에게는 그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자살하기 이틀 전 직장 조합원들과 회식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정동주 조합원은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에 잔뜩 취해 주위 사람들에게 "공상을 해 주지도 않을 거면서 해준다고 왜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강00 차장을 정말 존경했었는데… 70% 휴무하면 한달에 6~70만원 남짓 월급을 받는데 그것으로 어떻게 사느냐 막일이라도 해야지… 차라리 처음부터 노동조합에 찾아가서 상의했더라면… 아직까지 한번도 노동조합 일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그 흔한 파업에도 한번도 참여해 보지도 않았다. 오로지 회사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는데…"라며 흐느꼈다고 한다.

진단서를 품고 생을 끊다.

이틀 후 정동주 조합원은 가슴속에 인하대 병원에서 발부한 견비통 4주 진단서를 품고 집 근처 약수터에서 소주를 몇 병 들이킨 상태에서 왼손 동맥과 배를 갈라 자살했다.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회사측은 정동주 조합원은 회사에서 다친 게 아니라 70% 휴무시에 막 노동판에서 일하다 다쳤다고 호도하고 직장 조합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유족들이 소송을 준비하고자 직장 조합원들에게 진술을 요구했으나 그들은 회사에 대한 압박감에 써 줄 수 없다고 하면서 거절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노동조합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지경이 되도록 노동조합이 몰랐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회사와 담당 대의원이 철저하게 은폐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은 95~96년에 근골격계 질환에 의한 직업병발생 연구사업을 진행한 바 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산재요양 결정을 받은 조합원도 있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98년에 정동주 조합원이 근무하던 조립1부 시트작업장에서 근골격계에 의한 노동강도 측정 비디오를 촬영한 적도 있었다.
이러한 객관적 자료가 있었음에도 정동주 조합원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장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뒤늦었지만 유족과 노동조합은 대우자동차 근골격계 질환 보고서와 노동강도 측정 비디오를 근거로 근로복지공단에 행정소송을 걸 예정이다.

1750명, 대우자동차 그 후…

오늘도 정동주 조합원이 일하던 시트 장착 작업장은 변함없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표정한 조합원들의 모습에서 노동자 건강권 쟁취는 멀게만 느껴진다. 1750명의 조합원들이 정리해고 되었어도 현장은 냉담했고 조합원이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 받다 자살을 했다고 해도 냉담했다. 도대체 조합원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노동조합에 요구하고 있는 걸까?
태그

현장 , 대우자동차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전주희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