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진(노동자의 힘 정책위원)
"현 시기 노동운동은 적어도 두 가지 실질적인 운동의 진전을 강제하고 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패배와 노동운동의 체제내화가 유발하는 위기란 근본적으로 계급 정치의 위기라는 점에서 극복을 향한 진전을 강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계급 운동의 '정치화'를 모색하는 운동 세력이, 강제된 바로 이 현실로부터 자신들의 '차이'를 극복하고 계급 투쟁의 전선 속에서 단일한 정치 세력으로 결집되어야 하며, 이로부터 우리 자신 또는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사상·이념적 '혁신'도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노동자의 힘 13호, '해체'와 '분열'을 넘어 노동자계급운동의 정치화를 위한 조직적 과제를 부여잡자.)
노동자의 힘에서 제안한 '정치적 재조직화'의 '상'과 '활동가 정치조직'에 대해 애매모호 하다거나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문제제기가 있다. 사회당은 그것을 '노동자의 힘의 확대판'이며 '半합법정치단체'이므로 동의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어떤 조직은 '정치'라는 표현에 대해 부담감을 갖고 있다. 사실 필자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존의 '관념'을 빌려서 그것의 상은 '이것이다'라고 정확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전략단위인가? 아니면 전술단위인가?' '합법조직인가? 반합법조직인가?' '대중조직인가? 정치조직인가?' '활동가조직인가? 그냥 네트워크인가?' 등등 무수히 제기되는 문제제기는 그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물음이다. 이런 모습에 비하면 사회당은 분명하게 하나의 '노선'(1영역 1조직)을 가지고 '통일좌파'를 제안하였다. 이는 그 내용의 타당성을 떠나 하나의 '정치세력'으로서 충분히 긍정적이다. 이는 제안 받는 대상으로 하여금 '동의냐 거부냐'란 태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논의와 실천의 진전에도 도움이 된다. 다만 다른 세력들을 고려하여 '시기'를 못박는 성급한 행동은 자제하길 바란다. 향후 '좌파'의 정치적 진로를 모색하는 데에서 다른 '좌파'와 함께 논의하고, 함께 결정하려는 '열린 자세'와 '기득권 포기'를 하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왜냐하면 사회당이 제안하고 있는 '길'이 '좌파'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反사회당 견해'가 사회당이 같이 하고 싶어하는 세력 내에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비유일 지는 모르지만 '정치적 재조직화' 제안의 요지는 지금은 '50층이냐 100층이냐, 기와집이냐 현대식 건물이냐, 전원주택이냐 도심지 아파트냐' 등을 논의할 때라기 보다는 우리는 '왜 집을 지으려고 하고, 그러한 집은 무엇을 충족시키려고 하는지에 대해' 논의해 보자는 것이다. 거기에는 지금 각자가 짓고 있는 집이 '부실 건물이 될 염려는 없는지, 산등성이에 흉물스럽게 들어선 아파트이진 않는지' 등도 포함된다. 그런 논의를 위해 집 짓는 데에 관계했던 모든 당사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자는 것이다. 그 모이는 자리가 한 지붕, 한 테이블이면 가장 좋은 것이고, 요즘 인터넷 시대니까 화상 대화가 가능하면 좋고, 핸드폰 메시지로 소통하는 게 훨씬 능률적이라면 그것도 좋은데,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므로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모이는 사람이 '조건'에 맞는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 시기 계급운동진영의 '정치적 재조직화'의 구체적인 상과 목표, 과제에 대하여 논의하고, 관련하여 이를 추진하고 있는 각 단체 및 조직의 통일된 입장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공개합법정당운동' '평의회운동' '비국가연대운동' '민중연합 노선' '비제도적 투쟁정당' 등 다양하다. 이는 현 시기 남한 사회 '좌파'의 현 주소가 '진보정당-산별노조' 양날개 노선, 또는 민족주의·사민주의 노선에 대한 반정립의 형태로만 묶을 수 있을 뿐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각 조직 혹은 단체운동이 형성되어온 역사적 과정이 다르고 아울러 각 조직의 '위상'과 역할 및 정체성에도 불균등성이 있으며, 한국사회 이행전략에 대한 사고와 관점의 차이, 그에 따른 운동주체 형성 경로의 차이 등 때문에 '통일된 상'을 모아내기가 쉽지가 않는 상황이다. 당면해서는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 구축' 및 '대선'에 대한 전술계획의 차이와 결합되면서 이를 더욱 어렵게 하는 조건이 되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치적 재조직화'에 대한 '상'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치적 재조직화'는 '현존 좌파 조직'간의 '통합'을 넘어서서 새로운 정치운동의 '건설'과 구축을 포함한다. '활동가 정치조직'의 건설은 정치적 재조직화의 일차적 목표일 뿐,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조직과 단체, 활동가는 '조직 건설'의 일 주체로서 보다 열려 있으면서도 능동적인 자세와 실천을 가지길 바란다.
정치적 재조직화는 '정당-노조'양날개론의 실패에서 출발한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현 시기 모습이다. 이는 자본주의 국가가 취하는 여러 정책 중 하나의 '정책'이 아니다. 현 시기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을 규정해 나가는 자본운동의 지배적인 기조이며, 메커니즘이며, 질서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반대는 이러한 질서에 대한 '방어이자 거부'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노동조합운동과 정치운동(사민주의정당)의 '양날개' 구도 속에서, 그리고 전일적인 '정당시스템'에 의한 사회의 재구조화를 통해서 이를 극복하는 '실험'을 했다. 그러나 후자는 이미 실패했음이 드러났으며, 전자 또한 노동조합운동의 체제내화 및 정당운동의 '신자유주의'로의 수렴 - '제3의 길'은 그 대표적인 운동과 전략이다 -을 통해 이미 현존 신자유주의 전략을 뛰어넘을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반면에 신자유주의 전략이 취하고 있는 노동의 '분할과 배제', 사회 전 부문을 무자비한 시장질서로 재편함으로써 '삶의 위기'에 내 몰린 광범위한 대중들의 저항을 낳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과 불만'의 정치적 표현은 기존 정치질서가 이를 담아내지 못함에 따라 '극우민족주의'의 부상으로 왜곡되거나, 최근 아르헨티나의 예처럼 '정치적 무정부' 상태 속에서 고통의 골을 더욱 깊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기도 하다. 서유럽에서 '비제도적 좌파'가 선거에서 선전한 점은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기도 하다. 최근 브라질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 시 되는 PT의 정책도 점점 우경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사회도 마찬가지이다. 87년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성장, 96-97 총파업과 97년 대선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민주노동당은 비록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나 2000년 총선, 두 차례의 재보선, 지난 지자체 선거 등에서, 그리고 97년 경제위기 이후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대중투쟁의 과정에서 실력에 걸맞는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또한 대공장을 위주로 하여 노동조합운동은 실리주의적·조합주의적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는 민주노동당의 향후 진로에 대해 우려를 낳게 하는 지점이다. 최근 '범추' 제안과 이전의 '진보진영대통합' 제안을 통해 민주노동당은 이미 그러한 우려를 현실화시킨 바 있다. 이는 서유럽의 사민주의정당이 '국민정당'을 표방하면서 취하고 있는 행보와 다를 것이 없는 행태이다. 반면에 한통계약직 투쟁을 비롯한 비정규직 투쟁, 이주·여성·장애인 등 다양한 불안정 노동자들의 투쟁은 치열하고 완강하게 장기적으로 지속되지만 그 투쟁의 전국적 파급력이나 '대중적 참여'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채로 '선도적'인 수준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즉 기존의 정당-노조 '양날개' 전략은 물론 이를 비판하는 현실의 좌파 정치도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정치적 대안'이 되기에는 부족하며, 대중투쟁이 분출하고 있는 속에서도 그 투쟁의 '정치화'가 지체되고 있는 것 때문에 대중투쟁조차 '정체'와 '후퇴'의 위기를 맞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정치적 재조직화'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따라서 정치적 재조직화는 조합주의와 의회·선거주의(대리주의)로 대표되고 있는 현실의 '계급정치'를 '대중의, 대중에 의한 정치'로 변화시키고 정파적 이해보다는 대중투쟁과 대중운동의 계급적·정치적 발전을 우선하는 주체형성을 의미한다. 아울러 한국사회 이행전략을 기존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반성과 혁신에 기초하여 재구축하는 과정 또한 거쳐야 할 것이다. 물론 당면 계급투쟁의 전선의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 이 전선의 강화를 위한 공동의 정치행동 및 단일한 조직적 실천 또한 반드시 뒤따라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치적 재조직화의 시작이자 과정으로서 '활동가 정치조직'
서두에서 얘기했다 시피 기존의 관념으로 활동가 정치조직의 상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러저러한 오해와 '조직화'의 어려움을 낳고 있기도 하다. 다른 세력이나 조직을 설득할 만한 '정치적 명분'과 '노선'이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반정립'이 아닌 '정방향'으로의 입장과 노선은 아직 비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우리의 한계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미 우리는 '노동자계급정당'이라는 상을 제출했으며, 그것의 성격은 '비제도적 투쟁정당'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주장을 '상대화'하고 논의와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그러한 의미에서 어느 세력의 말대로 '기득권'을 포기할 준비는 이미 되어 있다.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현존 '좌파'의 '조직적·실천적 분리 상태'를 뛰어 넘는 '하나의 질서'라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 시기 중요한 것은 현존하는 '좌파'가 '통합'을 넘어 '재조직화 과정'에 돌입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것 자체만으로 한국사회 운동질서의 변화와 대중투쟁의 정치화는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정치적 재조직화는 이를 추진하는 '조직적 구심'의 건설과 떼어놓을 수 없기에 '조직 건설'은 그것의 시작이며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존의 단체 및 조직은 '활동가 정치조직'의 건설의 과정에서 '해체 및 재편'을 거쳐야 하며, 이 과정에서 기간의 '운동력'은 최대한 계승을 해 나가야 한다. 즉 '하나가 된다는 것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란 문구를 실현하는 것이다. 기존의 '좌파'운동의 역사는 '1+1=0.5'라는 말도 되지 않는 명제를 반복해 왔다면 너무 심한 평가일 지는 몰라도 그러한 역사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하나의 질서'라는 의미에서 '활동가 정치조직'은 '정치적 재조직화'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임무로 하고, 정치행동을 조직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 입장 및 방침의 조직화, 일상적 회원 교육 및 각종 대중운동에 대한 계획을 생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단일한 중앙'을 건설해야 하며, 내부 정치사상교육 및 조직·선전·투쟁 등의 영역에서 '중심기획단위'로서 기능을 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은 '활동가 정치조직'이 그 자체로 계급투쟁의 수단이자 무기이기도 하며, 대중투쟁과 대중운동을 조직하는 데 복무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정치적 재조직화 속에서 실현해야 할 과제
정치적 재조직화의 목표는 '계급정치'의 발전을 위한 사상·이념의 혁신 및 구축과 더불어 정치적 실천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조직적 구심'을 형성하여 계급적·전국적 정치행동을 일상화하는 것을 통해 말 그대로 혁명적이고 보편적인 요구에 입각한 '다수자 운동'으로서 우리 운동이 발전하는 데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우선적으로 실현해 나가야 한다.
첫째, '반신자유주의 투쟁과제'를 중심으로 한 '대중운동'의 형성과 전국적 연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반신유주의 투쟁은 기존 노동조합운동과 정당운동을 넘어선 새로운 '사회운동'의 출현 및 성장을 낳았다. WTO반대투쟁, 불안정노동철폐 투쟁, 공공부문 사유화 반대 및 교육, 의료 등의 공공성 강화투쟁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은 계기별 투쟁을 넘어서서 '일상'의 영역으로 전화하고 있지 못하다. 이는 대중적이면서도 뚜렷한 '투쟁주체'가 형성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대중투쟁은 활성화되고 있는 데에 비해 '주체 형성'은 더디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영역에서 '투쟁주체'를 형성하는 것은 다양한 영역 및 부문으로 주체 형성이 확장되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 대중권력의 맹아로서 기능할 수 있다. 특히 '노동권·생활권 투쟁'에서 그것의 직접적 투쟁주체 성장은 '계급형성'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둘째, '생산'(현장)의 영역에서 운동을 재편하는 것이다. 대중운동(투쟁)에 있어 생산의 영역은 중요하고 관건적인 요소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생산의 영역에서의 '정치의 구현'이 꼭 '노동조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동조합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을 위해 최소한 '생산의 정치'라고 명명되는 수준에서 자본에 대한 노동자의 일상적 저항을 조직하고 그 과정에서 생산의 영역을 넘어서는 대안적 모색에까지 이르는 정치주체를 발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존재하는 현장조직이나 현장간부를 재구성하는 작업과 이들이 '생산과 조합'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정치'의 영역으로 자기 확장을 하도록 하는 주체적 개편이 시급하다.
셋째, '지역'을 골간으로 한 생산·일상·정치의 영역을 아우르는 '주체'를 형성하는 것이다. 행정구역상의 '지역'을 넘어서서 노동자의 삶과 생활의 공간으로서 '지역'을 재구성하고 그에 기반한 정치의 실현이 조직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은 정치운동, 사회(부문)운동, 노동조합운동, 농민운동이 '수평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유력한 공간이다. '지역'에서의 부문, 대중조직, 지역조직간의 아래로부터의 연대운동의 전형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정치활동'의 대중성과 대안적 상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넷째, 현 정세에 조응하는 전국적 '연대 운동' 및 투쟁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이 차원에서 전국민중연대(준)의 역할과 그것의 위상을 재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에 따른 실천이 요구된다. 전국민중연대(준)은 대중운동·사회운동간의 '연대' 기구로서 역할을 강화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전국민중연대(준)은 대중운동 및 정치·사회운동의 '상층협의체적' 질서를 극복하는 것은 어렵다. 왜냐하면 이를 실질적인 보편적 연대질서와 투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이 아직은 이러한 전국적 연대를 실현할 만큼 '정치성'과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의 형성과 이것의 정치적 강화는 전국민중연대(준)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기도 하며,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대중운동간 연대질서를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것이기도 하다.
다섯째, 선거 및 의회 전술에 대한 적극적 고려를 해야 한다. 한국사회 정치지형 속에서 '선거'는 일상화(2년에 한번)된 정치기제로서 작동하기 시작했으며, 계급정치 구축의 '유력한' 계기는 아니지만 '필요한' 기제로서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증대하고 있다. 특히나 진보정당운동 및 민족주의 경향의 운동이 "2004년 원내교두보확보 → 2008년 교섭단체 구성 → 2012년 집권"이라는 '프로젝트'로 대중정치의 형성과 경로를 일반화하는 것에 대한 대중적 비판과 정정을 위해서도 '계급 정치의 형성' 관점에서 선거 및 의회전술에 대한 적극적 비판과 개입이 요구된다. 물론 선거 및 의회전술의 원칙은 무엇보다 대중운동(투쟁)에 기반 해야 하며, 대중운동(투쟁)의 진전과는 다른 '독자적' 운동으로서의 질을 획득할 수는 없음은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서구 역사의 경험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즉 말 그대로 '전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선거·의회전술'의 수행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은 '활동가 정치조직'이 기존 사회주의운동의 전략·사상·혁신을 실현하는 '선도자'이자, 대중 스스로 자신의 권력체를 만들어 가는 독자적인 힘으로 조직되고 발전하는 길의 '안내자'이자, 현실 속에서 생성되고 자라나고 있는 계급정치의 '가능성'을 '현실'로 실현하는 '조직자'로서 발전하는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