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버그는 왜 실패할 것인가?
[녹색전선(GroenFront)] 2002/08/31 제스퍼
참가 당사자들의 회의진행 내막과 진정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
적인 근본적 변화를 왜 어느 누구도 가져오지 않는가에 대한 분석.
두 번째 죽어가는 지구정상회담
리우데자네이로에서의 첫 번째 지구정상회담이 열린 지 10년, 우리 세
계는 생태적 재앙 직전에 처해있다. 생태적 조화의 파괴는 또한 수 십
억 인류의 생계수단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가장 덜 파괴적이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사람들인 원주민, 부족, 빈민들은 오히려 가장
큰 희생자이고, 수난당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여성
이다.
10년 전 세계 민중들은 불안을 느꼈고, 그들이 줄이려고 노력조차 하
지 않았던 무거운 짐을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짊어지도록 방치하길
원하지 않았다. 국가와 기업은 자신들이 노력했다고 세계가 믿게 하기
위해 함께 리우에 왔다. 그 동안에 그들은 자본주의 도그마를 지구화
하는데 마침내 국제적 동의에 도달했다. 즉 생태적 투자는 경제성장이
필요하며, 성장은 시장의 전지구적 개방을 필요로 한다는 것, 오직 교
역을 통해서만 오염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만일 이 모든
것이 실패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라고 기술에 대한 경건
한 신앙심만을 가지면 된다.
리우 선언에 관해 UN이 출간한 책조차 자동차, 비행기, 그리고 석유
회사가 좀 더 소음이 적은 엔진과 연료통의 혁신을 페이지마다 장식
하는 광고로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유엔만 너무 비난하지 말아라.
제3세계국가의 항공사들도 상당량의 광고를 실었다.
이번 여름,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 6만 5천명의 참가자와 참관인
을 포함한 대표단이 기후회의, 생물다양성에 관한 회의, 열대우림 보
존 원칙과 '지속가능한 인류발전'을 위한 의제 21회의에 참가할 것으
로 예상되고 있다. 그들은 과연 우리가 지구를 통제하기 위해서가 지
구에 일부로서 살고 있다는 인식속에서 또는 북반구 소비자들이 남반
구의 '미개발된' 소농보다 경제체제의 해체로부터 살아남기 힘들다는
인식 속에서 협상할까?
우리는 좋은 취지의 말들을 순진하게 믿어야 하는가? 갖가지의 분파
들은 서로 경쟁적인 경제적 이해를 갖고 있으며, 중요한 게임은 힘겨
루기이다. 게다가 몇몇 전문가와 자문위원들은 실제로 신자유주의 이
데올로기를 믿는다.
유엔 자체 또한 영향력을 둘러싸고 세계은행, IMF, WTO, 그리고 다
른 초국적 기구들과 경쟁하고 있고 있다. 그들은 소외당하지 않기 위
해 게임에 동참해야 한다. 유엔초국적기업센터(UNCTC)는 초국적 기
업들이 규제를 받아야만 한다고 제안한 후에 해체당했다. 1999년, 유
엔개발계획(UNDP)조차 거대 기업들로부터 은근히 그들 편을 들어준
대가로 돈을 받았다. 사무총장 아난은 알아서 착하게 굴 것을 약속하
는 가장 거대한 기업들 250개와 '지구적 협약'(Global Compact, 유엔
이 초국적기업과 함께 추진한 협약으로 초국적 기업의 비윤리적 행동
을 규제하기보다는 오히려 초국적기업이 자사의 이미지를 친환경 혹
은 친유엔적으로 세탁 및 조작하는데 이용되고 있는 협약이다-옮긴이)
에 서명했으며, 유엔 고유 로고의 사용을 허락했다.
"바꿔 말하면, 유엔은 전지구적 경제의 대리자로 자신을 변모시키려는
듯 하다. 유엔은 서구 기업들을 책임성있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인 각종 기제들을 회피하면서 그들이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도록 도와
주고 있다. 권력을 통해 평화를 만듦으로써 유엔은 권력이 없는 자들
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조지 몬비어트, 가디언)
아무튼 과정을 한번 들여다보자. 회의는 몇 가지 동의안으로 끝날 것
이다. 완전히 허약하고 효과없고 무익할지라도 몇 가지 원칙, 의정서
혹은 협정이 발표되거나 시작될 것이다. 비록 교토 의정서가 기후에
어떤 좋은 기여를 하지 않을지라도 언론기업들은 대중들에게 무엇인
가 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시킨다. 유엔회의에서 의식(儀式)이 되어버
린 또 하나는 협상을 함에 있어서 타국의 제안을 무마시키거나, 그 협
의안을 마무리될 때 그것을 거부해버리곤 하는 미국의 행동이다. 이러
한 미국의 행동을 경우에 따라 때로는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그리
고 일본(기후 관련 내용)이 지지하고, 이번 경우에는 아르헨티나 혹은
기타 나라들(생물다양성 관련한 내용)이 지지한다.
사람들은 계속 다른 대표단이 왜 이것을 받아들이냐고 묻고 있다. 기
본적으로 대다수 사람들은 적당한 소동을 좋아한다. 유럽 정상은 그녀
의 미국측 적수 때문에 아무런 생태적 가치가 없는 것에 대해서도 회
의장에서 퇴장하기도 한다. 미국정치인은 미국인의 삶의 방식을 용감
하게 방어하므로써 미국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프랑스는 프랑스 언론
이 미국 정치를 비난하기 좋아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이미지를 개선한
다. 유럽인들은 그들이 원래 말해왔던 것 이상 변하지 않으면서도 친
환경적 이미지를 얻는다.
이러한 게임들에 몇 가지 몹시 놀라운 논평이 따른다. "나는 지구상의
생명체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그렇게 하라
고 설득한다. 우리는 지구의 지배적인 종(種)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의 계속적인 생존을 다른 종에 의존한다." 이것이 리우에서 오스트레
일리아 대표단 단장인 로스 캐리가 미국이 생물다양성협약 서명을 거
부했을 때 한 말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오스트레일리아 환경 조치를
방해 것은 실로 거의 미국의 행위만큼이나 나쁘다.
많은 반세계화 활동가들은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착취가 멈추길 바란
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대다수 국가가 사실상 게임에 참여
하고 있다. 실제로 유엔회의에서 가난한 국가들도 생태계 파괴자가 되
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지고 있다. 일국가, 일투표 시스템은 세계은행
같은 일달러, 일투표 기구보다 그들의 영향력을 더 강력하게 만든다.
말레이시아와 인도의 주도하에 가난한 나라들은 소위 개발을 위해 숲
을 파괴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발언은 기본적으로
도박용 칩과 같다.
또한 인도와 같은 국가에서 환경적 파괴로부터 이윤을 뽑아내는 것은
주로 서구 기업들만은 아니다. 핵화학 공장, 기업형 농업, 거대한 댐과
도로-지구정상회담에서 논의되고 있는 심각한 산림 벌채로 이어지는
활동이다-은 종종 정부 혹은 정부 기관 소유이다. 환경적 규제는 족벌
주의와 뇌물로 쉽게 피할 수 있다.
반세계화 활동가들은 세계은행이 단지 서구 기업만을 후원하고 있다
고 비난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그릇된 비난이다. 왜냐하면 세계은
행은 사실상 (제3세계) 기업들이 추진하는 개발 프로젝트에 자금을 댈
뿐이기 때문이다.
세계은행(그리고 유엔)은 개발에 관한 신자유주의적이고 기술관료주의
적 전제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전제에 관해 다른 모델을 개발
해야만 하며, 더 나아가 혼돈을 피하기 위해 가능하난 개발 혹은 발전
이라 부르지 말아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오직 미미한 수정만이 가능하기 때문에 오스
트레일리아의 캘리와 같은 협상 참여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을 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거대 NGO들조차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른다. 예를 들어, 유엔 소속 과학자들은 현재 온실가스의 60%
를 감축할 필요가 있으며 최종 목표는 90%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반면,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NGO 중 이런 관점을 제시하는 곳은 아
무 데도 없다. 진정 감축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개혁주의자는 없었다. 반드시 감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감축은 높은
수준의 자급자족, 낮은 수준의 기술과 에너지 사용, 그것이 일어나야
만 할 때, 협상에서 자기충족의 큰 수준, 기술과 에너지 사용의 낮은
수준, 탈도시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안에서 일어날 수 없
다. 이 모든 것은 북반구 사람에게 자연과의 재결합을 의미한다. 이것
은 또한 인간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자연을 회복한 후 자연에
맡길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을 의미한다. 우리는 숲을 재생해야
하는가, 우리가 생물다양성을 활성화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파
괴된 핵공장의 잔여물을 없애는데 기술을 사용해야만 하는지?
왜 NGO들은 또 다른 개발을 발전시키려 하지 않는가? 기업들과 국
가,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의 경우, 이유는 더욱 명확하다. 그들의 단기
적 경제 혹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그들을 계속 악당으로 만든다.
종말이 닥쳐올 것이라는 강력한 느낌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산업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장애가 되기도 한다. 캘리에게서 볼 수 있듯이
어느 정도의 대안적 사고가 등장하곤 한다. 여기 재미있는 사실 또 한
가지가 있다.
리우회의 직후 그린피스의 타니 아담스는 "우리는 단기적으로 정부들
에 대해 어떠한 희망도 갖지 않는다. 중대한 지구 위기의 해결은 시민
들로부터 나와야 한다. 만일 나타나기라도 한다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급진적인 관점이 협상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
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 그렇게 그들은 급진적인 관점이 필요한
가? 하나의 이유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특히 임원진
에게 있어서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있다. 그들은 회비, 기부금 혹은
국가 보조기금으로부터 벌어들이는 수입을 유지해야만 한다. 기본적으
로 그들은 그들이 반대하는 것 중의 일부에 의존해야 하고 때때론 서
로간에 경쟁도 한다.
기본적으로 NGO는 국가 또는 기업들을 포함한 어떠한 사회적 집단
혹은 구조와 별반 다르지는 않다. 비록 국가와 기업이 보통 더 크기는
하지만. 수용되기 위해 (그리고 '변화시키는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
해서) 순응할 필요가 있다.
물론, 큰 NGO는 전체를 보지 못한다. 이것의 명징한 예가 국제사면
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와 인권감시단(Human Rights Watch)이
'지구적 협약'에 지지자로서 서명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고문을 행하
지 않고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갈 수 있다고 맹세하는 한 어떤 사람
에 의한 어떠한 맹세도 훌륭한 것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또
다른 예는, 비록 유엔의 집행과정과는 상관없지만 세계야생생물기금
(WWF)에서 아마존 우림지대를 사들이고 자연이 파괴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원주민들을 그곳에서 떠나게 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하나의 이슈를 광신적으로 다루고 어느 정도의
진전을 이루면서도 사실상 아무런 성과를 내지 않게 된다.
이 모든 것은 말만 있고 행동은 없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 말들
은 양심과 그들의 이미지따위를 충족시킬 뿐이다. 리우에서의 긴 마라
톤회의는 의제 21에 관한 것이었다. 의제 21은 모든 것에 청사진이라
고 한다. 매우 많은 항목을 가지고 있으며, 방대한 수의 문제들 다루
고, 매우 생태적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어느 것도 실현되지 않았다.
그것을 집행하는데 6천억 달러가 필요함에도 회원국들은 약 70억 달
러만을 승인했다. 마치 세계가 누군가에게 생일 케익을 만들어준다고
약속해놓고 유전자 변형된 효모 한 숟가락을 퍼주는 것과 같다.
첫번째 지구정상회담으로부터 도출된 여러 가지 규정들을 고려해 볼
때, 두 번째 정상회의에서도 그 이상의 특별한 결과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엔에 대한 비판이 있고 그 비판의 초점은 기업
에 대한 영향력에 대한 문제이다. 유엔을 공격하는 것은 국가를 직접
공격하는 것만큼 효과적이다. 그러나 구두로든 물리적으로든 (이런 공
격은) 오로지 특정한 상황에서만 행할 만 할 것이다. 이러한 개별국가
에 대한 공격이 적절한 조치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면 유엔 지속가
능한 인류 발전 과정에 대해 설명하거나, 미국이나 초국적기업의 악랄
함을 뛰어넘고 그 모든 과정들을 거부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