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도 손을 들었다. 더 이상 해석론으로 풀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행정법원 제4부(재판장 조병현)는 지난달 21일 SK(주)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파견법에 의하지 않은 파견근로일 경우, 26개 허용업무에 해당되더라도 2년 이상자 고용의제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며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이 같은 해석에 따라 초래될 불법파견에 따른 노동자들의 불안한 법적 지위는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파견법상 허가 받지 않은 파견이더라도 26개 대상업무에 포함되면 직접 고용의제 조항에 적용 받는다는 지난해 9월과 올 1월, 중앙노동위원회와 서울행정법원의 판정(결)보다 불법파견 노동자 보호에서 더 후퇴한 것이다.
재판부는 우선 "파견법상 직접 고용의제조항은 특별히 적법한 근로자 파견일 경우로 한한다는 식의 제한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불법파견인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은 열어뒀다.
그러나 재판부는 △파견사업 허가를 받았지만 파견대상업무가 아닌 곳에 종사한 경우 고용의제 적용을 배제시키면서 처음부터 허가조차 받지 않고 파견사업을 한 경우 적용시킨다면 균형이 맞지 않고 △법에서 금지한 규정을 위반한 경우, 그 위반한 기간이 2년이 넘었다고 그 순간부터 '고용의제'를 함으로써 위법한 근로관계를 적법한 근로관계로 갑자기 질적인 변화를 가한다는 것 또한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고용의제조항은 허가를 받지 않은 근로자파견의 경우에는 26개 업무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떠나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불법파견 시점부터 직접 고용된 것으로 본다"... 입법론적 해결 바람직
하지만 재판부는 특이하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독일과 프랑스의 법령을 예로 들며 입법적인 해결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까지 제출했다.
재판부는 "(재판부가 내린) 이러한 해석에 따를 경우 무허가로 근로자파견사업을 하는 사람은 엄격한 법적 규제를 받지 않게 되고, 그에 따라 파견근로자의 법적 지위에 상당한 불안을 초래하게 된다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입법적으로 명시적인 규정을 둠으로써 논란의 소지를 불식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재판부에 따르면, 독일의 근로자파견관련법령에서는 파견사업주가 근로자파견법에 따른 허가를 받지 않은 경우에는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간의 노동관계는 일을 시작하기로 한 시점부터 성립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또한 프랑스의 근로자파견관련법령에서는 사용사업주가 이용사유, 파견기간, 파견기한 등 여러 가지 규정에 위반하여 파견근로자를 이용한 경우에는 파견근로자와 사용사업주 사이에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명문 규정을 두고 있다.
실질적 고용관계 따지지 않아 아쉬움
재미있는 것은 이 재판부가 지난 1월 "파견 허용대상이 아닌 업무에 대한 파견일 경우 2년 이상자 고용의제 조항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고 판결했던 그 재판부라는 사실이다.
당시 사건은 지난해 9월 중앙노동위원회가 SK(주)와 도급계약을 맺고 불법파견을 해 온 인사이트코리아 소속 지무영씨 등 4명이 SK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구제신청에서 26개 업무에 해당하는 김아무개씨에 대해서만 부당해고 판정을 내리자 이에 불복, 지씨 등 3명이 행정법원에 재심을 요청한 것이었다.
재판부의 판단근거는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당시 사건은 허가를 받지 않은 파견인데다 담당 업무마저도 26개 업무에 해당되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제기한 사건이어서 '법상 근로자파견이 허용되지 않는 업무에 2년 이상 파견 근무한 경우 직접 고용의제 조항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SK(주)는 부당해고로 판정됐던 김아무개씨에 대한 중노위 판정만을 따로 뽑아 다시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26개 파견대상 업무에 포함되더라도 직접 고용의무가 없다고 판결을 얻어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파견업 허가여부, 26개 대상업무 해당여부를 떠나서 실근로관계상 직접 고용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이번 판결은 재판부가 스스로 파견법 조항의 부당성을 인정하고 조속히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점"이라며 말했다.
순천향대 조경배 교수(법대)는 "재판부가 법률에 따른 자신의 판단이 부당하다고 밝히고 입법적 해결을 얘기한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실질적인 근로관계를 따졌다면, 사용업체(SK)에서 일한 그 시점부터 직접 고용된 것으로 본다는 판결을 내릴 수 있었을 텐데 전체 결론에서 그 부분이 빠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인사이트코리아 소속인 지씨 등은 SK에서 운영하는 물류센터 등에서 짧게는 3년, 길게는 8년 동안 SK의 지휘감독아래 일을 해 오면서도 도급업체 소속 노동자라는 이유로 임금, 근로조건 등에서 각종 차별대우를 받아왔다. 그러다 지난 2000년 8일 서울지방노동청으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SK가 이들을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언제든지 해고가 가능한 계약직으로 직접 고용하려는 과정에서 지씨 등 4명이 "정규직으로 채용돼야 한다"며 계약직 채용을 거부하자 해고했다.
워킹보이스 이정희 기자 goforit@kcw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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