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거리며 달리는 '주5일 근무' 열차

정부의 [노동시간단축입법안]을 둘러싼 논란

2002년 9월의 한국. 일하는 만큼 먹는 노동자도 있고 일하는 만큼 못 먹는 노동자도 있다. 물론 일하는 것보다 더 먹는 노동자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배불리 먹든 못 먹든 모든 노동자는 자신의 현실에 나름대로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데 있다. 연봉 4천만원이 넘는 정규직노동자든 최저임금 수준의 보수를 받을 뿐인 비정규직 노동자든 자신의 노동조건 여부를 물으면 똑같은 목소리를 낸다.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이 달 5일, 정부는 고심 끝에 노동시간 단축을 뼈대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표했으나 노동계는 "재계 편향", 재계는 "노동계 편향"이라며 각각 반대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이번 정부안은 지난 7월 22일 노사정위 차원의 주 5일 근무 도입 관련 방안 논의가 최종 결렬되면서 2년 여 동안 끌어온 논의를 정부가 받아 정리한 것이다. 그럼에도 노사 모두 정부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발표하고 정부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각각 강력한 실력행사를 불사하겠다며 '정부안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800만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은 언제 이뤄지나
정부안을 보면 우선 시행시기에 대해 노동계의 '전면·동시적 도입' 요구와는 달리 '단계별 도입'을 명시했다. 내년 7월부터 공공, 금융·보험 및 1,000인 이상의 사업장을 시작으로 2004년 7월 300인 이상, 2005년 7월 50인 이상, 2006년 7월 30인 이상 사업장에서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30인 미만 사업장은 대통령령으로 그 시기를 정하도록 했다. 이 안은 재계의 '도입시기 유예' 요구에 손을 들어준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휴가일수의 경우 법정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연·월차휴가를 통합해 15일에서 25일까지 부여하고 2년마다 1일씩 가산하도록 했다. 또 휴가사용촉진방안을 신설해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휴가를 사용하도록 권유하되 휴가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수당은 지급하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이 안에 대해 재계는 "사용자의 적극적인 권유라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도 분명하지 않고 노동자의 집단휴가를 금지하는 규정을 명시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휴가를 쓸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수당지급의무를 면제한다는 그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비난하고 있다.

정부는 또한 주휴유급화안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어 노동계와 재계 모두의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유급생리휴가를 무급화한 정부안에 대해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다. "국제기준을 내세워 생리무급휴가를 명시하면서 왜 모성보호법은 국제기준으로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반면 재계는 "'노는'기준을 국제기준으로 하자면 '일하는'기준도 국제기준으로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휴가일수에 대한 강력한 반발을 하고 있다. 더불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1개월에서 3개월 단위로 확대한 것에 대해 재계는 1년 단위로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초과근로 상한선은 적용일로부터 3년 동안 한시적으로 하루 12시간에서 16시간으로 확대해 주 52시간으로 명시했다. 또 4시간분의 초과근로시간에 대해 25%의 할증률을 적용함으로써 애초 노동계의 50% 요구안에서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정부는 임금보전방안에 대해 '기존의 임금수준과 시간급 동상임금이 저하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규정하고 임금항목과 임금조정방법은 노사 자율에 맡기기로 했다. 그 결과 연월차 휴가가 축소되고 주휴와 생리휴가가 무급화되면서 임금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노동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재계는 임금수준보전에 대해 "정부의 강제 보전 원칙"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이 같은 정부안대로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 주5일 근무의 혜택을 누리게 되는 노동자는 실제 당분간 고임금 노동자 20%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고통받는 노동자 800만명은 '주 5일 근무 시대'의 요란한 혜택에서 또 멀어지는 것이다.

노동계, 총파업도 불사한다
정부안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 전반의 '총파업'선언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민주노총은 정부안에 대해 "노동법 개악 음모"라고 강력하게 비난하고 "전면 철회"를 촉구했다. 또한 양대 노총 사무총장들은 정부안이 발표되자자마 곧바로 회동을 가지고 공동대응 방안을 논의, 정부의 입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전면적인 '대정부 공동투쟁'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또한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주 5일 근무제는 전체 노동자가 동시에, 전면적으로 실시해야 하며, 단계별 도입이 불가피하다면 최소한 2~3년 안에 모든 노동자가 주 5일 근무제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은 "정부의 입법안이 중소영세사업장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 특히 여성노동자 등 소외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착취와 차별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전체노동자의 58.6%에 해당하는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약 800만 명)의 주 5일 근무는 '대통령령에 따른다'며 모호한 명시규정만 둬 시행시기에 대한 약속조차 받지 못한 것이다. 또한 개정안에 맞춰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을 바꾸도록 의무화함으로써 자율적인 노사합의를 차단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 역시 정부입법안에 대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삶의 질 개선과 임금보전 원칙의 '실종'이라며 비난했다. 한국노총은 9일 '주 5일제 도입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곧바로 '100만인 대국민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이 서명운동은 18일까지 전국의 주요 역과 터미널에서 '올바른 주 5일 근무 도입' 홍보와 함께 진행해 19일 취합된 서명용지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한국노총은 "근로기준법 49조 1항을 개정해 주40시간 규정 및 임금보전을 명문화하고 근로기준법 제 54조를 개정해 2일 이상의 유급 주휴를 명문화하되 중소, 영세기업에 대한 세제와 금융상의 지원을 통한 주 5일 근무제의 전면적이고 동시적인 실시"를 촉구했다.

이와 관련 한국노총은 임단협과 결합된 총파업과 총력투쟁을 통해 정부입법안의 국회통과를 저지할 것을 선언했다. 더불어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는 물론 대선 연계 투쟁을 통해 적극적인 입법 철회 투쟁을 펼치겠다고 나서 첨예한 충돌이 예상된다.

재계의 '기업경쟁력 저하론'언제까지 유효한가

경제 5단체 또한 정부입법안이 발표된 뒤 6일 공동명의로 정부입법안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재계는 '국제기준에 맞는 근로시간제도 정립'을 요구했다. 재계는 "장시간 노동이 관행이었던 과거의 제도 개선 없이 '휴일에 관한 제도'만 국제기준으로 바꾼다면 기업경쟁력 저하로 국가경제의 성장잠재력이 훼손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재계의 '국제적인 주장'대로 입법안을 수정한다면 생리휴가제도 폐지는 물론이고 법정공휴일(현행 17일)도 6일 축소되어야 한다.

초과근로한도에 대해서도 재계는 "화학섬유, 철강, 석유화학산업 등의 경우 업무특성상 연중무휴 3조 3교대 사업장의 경우 초과근로시간 한도를 현행과 같이 12시간으로 유지하면 1개 근무조가 충원되어야 한다"며 "3조 3교대에서 1개조 증원시 인건비는 최대 29.5%가 증가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2006년 7월까지 30인 이상의 모든 사업장에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한다는 것은 "실근로시간이 53.5시간인 중소기업을 고사시키자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재계는 세계적으로 관행이 되고 있는 '무노동무임금원칙'을 강조하며 "주휴무급화는 필수요건"임을 주장하고 있다. 또 '소득수준에 맞는 공휴일 조정'을 주장하며 정부안의 휴일수(136~146일)가 일본보다 많다며 "1인당 소득이 3만 불을 상회하는 일본보다 우리가 더 많이 놀면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라며 공휴일 6일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재계와 노동계의 입장 차이가 큰 가운데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중소기업 사장단 중심의 '정부 입법안 반대궐기대회' 등 재계 차원의 입법안 철회 투쟁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국회 통과 여부 불투명

정부안이 19일까지 각계의 의견수렴을 거친 뒤 10월 초 정부안을 확정하고 국회로 제출될 일정에 맞춰 대규모 노사 마찰이 불가피한 가운데 대선을 앞둔 정당 간 입장 차이도 크다.

자민련은 "주 5일 근무 시기상조론"을 내세워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현재 상태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노사합의'를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 또한 "일단 (주 5일 근무를) 시작해야 하지 않느냐"는 입장만 고수할 뿐이어서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 통과여부도 불투명하다는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정부안이 뜯길 대로 뜯겨 누더기인 상태로 일단 통과돼 노사 모두에게 내내 외면당하는가, 아니면 올 회기를 넘겨 주 5일 도입 시기의 전체적인 연기는 물론 현재 진행 중인 연월차휴가를 반납하는 방식으로 실시되고 있는 '변형 주 5일 근무제'의 확산을 부추기는 데 일조하는 지도 모른다데 있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라고 노래하던 노동자는 어느 날 '왜 먹기 위해 일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에 빠진다. 언제까지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고 노래해야 하는가. 이제부터는 일하지 않아도 먹을 수 현실을 노래해야 하는 게 아닐까. 너무 앞서 간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하루를 '일' 중심으로 살고 있는 노동자들을 돌아본다. 먹는 일이 싫어진다.

워킹보이스 임임분 기자 sunbi@kcw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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