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대책 예산은 없고, 기금은 유명무실

“재해대책 예산이 별도로 편성되지 않아 매년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예비비에서 집행되고 있어 지원 수준이 예산확보 정도나 정치적 분위기에 따라 연도별로 편차가 있다”

[농업재해대책의 방향(2002년)], 최경환(한국농촌경제연구원)

매년 수 만 가구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나라에 재해대책 예산이 없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일본 정부가 지난 해 약 30조원의 재해관련 예산을 편성한데 반해, 우리 정부는 별도의 재해대책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다. 위 지적대로 매년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1년 정부 예산의 1% 수준에서 비축해 놓은 예비비에서 끌어다 쓴다.

올해 책정된 예비비는 1조3,000억 원. 이중 태풍 라마순과 8월 집중호우 복구로 1조89억원, 태풍 루사 긴급지원비로 1,500억원을 지출해 현재는 2,000억원도 남지 않은 상태다.

루사로 인한 재산피해액은 6일 현재 이미 4조원을 넘었다. 보통 피해 복구는 재산피해액의 1.5∼2배에 달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최소 6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당연히 ‘예산이 부족하다’. 정부는 각 부처에서 올해 예산 중 쓰지 않고 남은 불용액을 재해복구비로 전용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돈은 추가경정예산(추경예산)에서 배정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할 계획이다.

자연재해 피해액은 98년 1조5,815억원으로 1조원 대를 처음 돌파했고 2001년에도 1조2,561억원을 기록했다. 정부는 매년 이재민 가구수와 피해 규모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올해 또다시 예산의 1%, 1조3천억원의 예비비만 책정한 것이다.

도대체 이재민 구호 대책이 있기는 하냐고 묻는다면 물론 정부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97년부터 ‘재해대책기금’을 만들어서 응급 복구에 만전을 기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 만전을 기한 결과가 예년과 똑같다. 재해대책기금이 그만큼 부실하다는 뜻이다.

정부는 지난 97년부터 지방자치단체에 지난 3년간의 보통세 수입 평균 결산액의 0.8%를 재해대책기금으로 적립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러나 97년부터 2000년까지 16개 광역시, 도의 재해대책기금 적립 실태를 조사한 결과, 목표액의 50%에도 못 미치는 곳이 대구, 인천, 대전, 경북, 경남 등 5곳에 달했고 이중 대구는 17%로 꼴찌를 기록했다. 기금 횡령, 유용 사태도 종종 발생했다. 부실한 기금은 재해 발생시 예산 조달 문제로 복구 작업을 지연시키는 것은 물론, 평상시의 재해 예방 조치도 가로막는 폐단을 낳는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인색하게 굴기 일쑤인 정부 당국과 지방자치단체는 정작 재해가 발생하면 대대적으로 ‘국민 성금’을 독려하느라 바쁘다. 2001년 168억원, 2000년 120억원 등 매년 수많은 국민이 책임을 방기한 관계 기관을 대신해 이재민 돕기에 나섰다.

기상이변과 난개발 등으로 재해 피해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예산 부족이 문제라면 수십 조원에 달하는 국방비를 줄여서라도 예산을 책정하면 된다.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부족한 예비비를 탓하고, 추경예산을 편성하고, 국민 성금에 의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장성희 / jsh@.s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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