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이 멈췄다.
분노한 장애인들이 자신의 의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안 해 본 것이 없다. 일주일에 한 번씩 버스타기 투쟁을 하고, 수 십 번도 넘게 정부 해당기관에 면담요청과 이동권 대책 수립을 요구해 왔다. 단식을 하다 병원에 실려간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정부와 서울시는 ‘시늉’만 했다. 결국 이들이 선택한 것이 ‘목숨’을 건 철로점거였다.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가 발산역 리프트 추락참사에 대한 서울시의 공개사과와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한 지 31일째 되는 날이었다.
11일(수) 오후 2시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중증장애인 12명이 철로를 점거했다. “리프트 타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데 차라리 싸우다 여기서 죽겠다”
그들은 컴컴한 터널 속으로 휠체어를 밀었다. 서로의 목에 사다리를 얹고 쇠사슬을 감은 채 인간고리를 만들었다. 비장함마저 감도는 가운데 이들은 외치고, 또 외쳤다. “발산역 리프트 추락참사 서울시는 사과하라” “장애인도 지하철을 타고 싶다” 쇳소리를 내며 ‘의정부 북부행’ 전철이 그들의 5m 앞에서 간신히 멈췄다. 아찔한 순간. 그들의 목소리는 차라리 절규에 가까웠다.
인천에서 온 지체 장애인 김격중(37살) 씨는 “장애인의 마음을 알려면 시장도 휠체어 타고 하루만 생활해보라 그래요. 더도 말고 하루만”이라고 말하며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또 다른 장애인은 “콜택시를 도입 한다구요? 정말 웃기는 소리예요. 장애인용 콜택시 100대 도입해도 턱없이 모자라요.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지, 장애인 전용 딱지는 필요 없거든요” 라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경찰이 달려왔다. 플랫폼 한 쪽에서는 학생들이 경찰에 완전히 포위된 채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외치고 있고, 계속되는 경고 방송이 역 안을 울린다. “여러분은 지금 불법으로 철로를 점거했습니다. 당장 해산하지 않으면 강제연행 하겠습니다”
몇 번의 경고방송 끝에 절단기와 들것 등이 운반되고, 경찰이 사다리와 쇠사슬을 끊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도 경찰은 쉼없이 “기자 여러분”만 외쳐댄다. “기자 여러분 뒤로 물러나 주십시오. 다칠 수도 있습니다” 플랫폼에 몰려든 기자는 서른 명은 족히 넘는다. 기자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것인지, 보도를 우려하는 것인지, 경찰은 중증 장애인은 마구잡이로 연행하면서 연신 “기자 여러분”만 외쳐댄다. 그런가 하면 한 쪽에 몰려든 시민들에게 “이것들은 뭐야”라는 말을 내뱉다가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경찰의 강제연행에 맞서, 장애인들은 끌려나가지 않으려고 휠체어 위에서 필사적인 몸부림을 친다. 그들을 촬영하기 위해 몰려드는 기자들, 절단기를 들고 쇠사슬을 끊는 경찰들까지 한 데 얽혀 전쟁터가 따로 없다. 이 때도 경찰의 마이크는 녹음기마냥 “기자 여러분”을 반복하고 있다.
순식간이었다. 장애인들이 선로를 점거한 시간은 불과 30여 분. 연행자 수 76명. 경찰은 비장애인은 물론 중증장애인과 시각장애인에 이르기까지 참가자 전원을 연행했다. 연행자 중에는 대학생신문사 기자도 있었다. 임세환 기자는 기자임을 밝혔는데도 얼굴, 가슴 등을 구타당하며 연행되었다.
부상자도 속출했다. 이규식(뇌성마비 1급 장애인) 씨는 선로에 흐르는 전기에 몸이 계속 닿아 그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다가 겨우 깨어났다. 인천에서 온 김창민 씨는 허리를 크게 다쳐 병원으로 호송되었다.
시청역 근처를 지나던 시민들은 근처 기자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물어왔다. 장애인들의 행동에 대해 버럭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체적인 반응은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 한 아주머니는 안경을 치켜올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청’ 했다. 그러나 이 즈음 “우리에게 이동권은 생존권”이라며 목숨 건 장애인들의 피맺힌 절규만 남겨둔 채 이들을 실은 차량은 벌써 경찰서로 향하고 있었다.
서울시 “리프트 사고 개인 책임”
정부 리프트 위험성 인정 … 서울시 알고도 ‘쉬쉬’
11일(수) 장애인이동권연대(공동대표 박경석)가 목숨을 건 위험스런 시위까지 감행한 것은 지난 5월 발산역에서 장애인이 휠체어로 리프트를 타다 추락해 숨진 사고에 대해 서울시가 제대로 사과를 하지도 않고 근본적인 대책도 내놓지 않는 데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이동권연대는 이 사고에 대한 공개 사과와 함께 서울시가 저상버스 도입과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등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해 왔다.
하지만 서울시와 도시철도공사, 경찰은 이 사건이 장애인 이용자의 전동스쿠터 조작 미숙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결국 이동권연대는 지난 8월 12일부터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단식농성 17일째인 8월 29일 ‘장애인 여러분께 드립니다’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발산역 사고에 대한 입장과 ‘장애인이동권 확보를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내용이 장애인들을 더 분노케했다.
이 보도자료에서 서울시는 “발산역 사고 직후 윤재봉 씨의 장례식장을 방문했으며, 당시 시장이 아닌 보통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장애인 삶’의 안타까운 실상을 보았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이동권연대는 공식적인 사과를 회피하는 서울시를 비난하며 “값싼 동정은 필요없다”며 분노를 표했다.
‘종합대책’ 역시 대부분은 이미 진행 중이던 사업이며, 오히려 몇몇 사업은 이동권연대가 전시 행정이라고 평가했던 대책들. 그 중 2004년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확충 계획은 대표적인 것이다. 이미 지난 해 고건 시장이 발표한 대책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또 이미 실시하고 있는 무료셔틀버스와 심부름 센터 운영을 다시 한번 반복하면서 서울시가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이 강조하고 있지만 이동권 해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서울시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장애인콜택시 도입. 그러나 이동권연대는 장애인콜택시가 ‘행정편의적인 계획’이라고 꼬집는다. 특별교통수단을 마치 대중교통인 것처럼 발표하고 있다는 것. 이동권연대는 “근본적으로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계획 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이동권연대가 철로점거 투쟁을 하기 하루 전인 10일, 새사회연대(대표 이창수)는 “발산역 리프트 추락 사고가 휠체어리프트 시설의 구조적 안전에 문제가 있음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고 있음이 밝혀졌다”고 폭로했다.
새사회연대가 지난 2일 국무총리실에 정보공개를 청구하여 받은 ‘장애인 이동 편의시설 점검 결과’에 는 “경사형리프트는 승강대보다 길이가 긴(1.2m정도) 전동스쿠터가 탑승시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이 문서에는 “발산역 장애인 추락 사고도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적시하고 있어, 리프트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 온 이동권연대의 내용을 정부가 공식인정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또 지난 7월 8일부터 10일까지 국무총리실 주관으로 실시한 ‘장애인 대중교통 이용편의실태 일제점검’에 서울시가 참여한 것으로 밝히고 있어 서울시가 실제로 발산역 리프트 추락 사망 사고 이후 리프트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도, 이후 장애인 안전 문제에 대해 어떠한 실질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 낱낱이 드러난다.
결국 정부가 장애인을 죽음으로 몰고도 ‘쉬쉬’한 채 제2, 제3의 사고마저 부르고 있다.
이현주 / lhj@s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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