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주(노동자의 힘 회원)
나는 만화를 좋아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다른 사람이 해 주는 고구마나 부침개를 먹으며 배 깔고 누워 만화를 늘어지게 보는 꿈을 꾸곤 하지만 그토록 비오는 날이 많았던 올 여름에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내가 봤던 만화 중 '아빠는 요리사'라는 책이 있다. 현재까지 1, 2부로 70권이 넘게 나온 요리만화인데 주인공은 거의 환상적인 남자다. 기자라는 직업상 야근을 밥먹듯 하고, 술 좋아하는 아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가사와 육아 모두를 책임지는 남편. 거기다 직장에서도 모두에게 인정받는 셀러리맨이다. 자신이 만든 요리로 주변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주변사람들과 여러 가지로 얽히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정감 있게 풀어나가는 그를 지금까지 열심히 읽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남자는 정말 행복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한 사람의 헌신으로 행복할 수 있지만 당사자도 과연 그럴까? 내가 그 만화에서의 역할 설정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이유는 그러한 주인공이 여자가 아니고 남자여서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요즘 들어 육아까지 떠맡게 되면서 그 남자와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된 나는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데 있다. 열심히 활동하는 동반자를 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나 생계와 가사, 육아 그리고 나 스스로의 활동까지 책임져야 하는 현실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학교 때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중 한 발제문에서 '평등이란 여성과 남성이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한다고 할지라도 한 쪽이 억울하다고 느끼지 않아야 진정한 평등이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지금도 나는 여기에 깊이 공감하며 내가 서있는 모든 영역에서 그 정신이 관철되도록 일하는 것이 활동하는 여성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치를 드는 순간, 보통의 가정에서는 여성학 운운하는 재수 없는 여자나 가정을 팽개친 여자가 되어버리고, 활동하는 남편을 둔 경우에도 여성주의적 시각에 빠져 전체의 판을 읽지 못하는 편협한 활동가의 모습으로 지적당하거나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다.
내가 보건대 대부분의 여성활동가들은 자신의 처지와 감정을 드러내놓고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터프하고 할 말 다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것을 가장 최소한으로 챙기고 전체를 배려하는 경우가 많다. 알게 모르게 여성으로서 억눌리며 참고 살아온 사회적 환경과 남성들에게 쳐지지 않고 활동하기 위해, 또는 논리와 책무성을 우선시하는 운동판의 분위기에서 자존심을 구기지 않으려는 노력을 감내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 또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는 구랑(신랑이 볼 것 다보고 나면 구랑이 된다던가?)의 활동을 막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슈퍼우먼이고자 열심히 노력해왔고 때로는 이런 내가 자랑스럽기도 했다.
허나 이제 나는 슈퍼우먼이 되기 싫다. 삶의 충전소가 되어야 할 가정에서 혼자서 집안 일을 처리하며 헉헉대거나 새벽에 들어온 남편을 깨우기 안쓰러워 동동거리며 아이를 데려다주고 지각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의미를 느끼며 즐겁게 활동하고 싶고 육아에 쫓기지 않고 사람들과 만나 수다도 떨고 술도 마시고 싶다.
내가 부정하는 세상을 나에게 강요하지 말라!
사람들은 대안이 적절치 않을 때 주장을 내세우기를 두려워한다. 적절한 대안의 제시 그리고 주장, 이런 논리가 저항 이데올로기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함을 너무나 많이 봐오지 않았던가. 싫은 건 싫다고 아닌 건 아니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깊은 공감과 적극적 배려, 함께 할 수 있는 실천을 만들어나가는 남성동지들이 필요하다. 더불어 한 사람의 활동을 규정할 때 그 주위 사람의 활동을 같이 고려하는 조직의 활동지침이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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