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연(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
2002년 9월16일, 달력상으로는 하반기가 절반 정도밖에 안남았으나 상반기부터 시작한 임단협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보건의료노동조합의 성모병원, 경희의료원, 한라병원 등의 파업투쟁이 김대중정권의 공권력 침탈을 받으면서도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 외에도 한진중공업, 캡스, 한진관광 등 50여 곳이 장기투쟁사업장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아직 2002년 임단투를 최종 평가할 상황은 아니다. 더구나 보건의료노조는 공권력 투입이라는 초강경 탄압에 맞서 10월16일 연대파업투쟁을 결의한 상태이기 때문에 민주노총 2002년 임단투의 승패는 남아 있는 이후 투쟁결과에 좌우될 것이다. 따라서 이 평가는 민주노총 전체의 임단협 투쟁에 대한 중간평가이다.
▒▒2002년 임단투의 조건
주체적 조건
금년 임단투는 전체 민주노조의 주체적 여건으로 볼 때 매우 힘든 상태에서 시작했다. 2월25일 국가기간산업 3사 연대파업과 2월26일 민주노총 연대총파업투쟁으로 2002년 투쟁의 포문을 힘차게 열었고, 발전노조의 끈질긴 산개투쟁은 민주노총 4.2 총파업투쟁을 현실화시켰다. 그러나 4.2 총파업 유보에 의해 상황은 한순간에 역전되었다. 현장은 민주노총 중심의 연대투쟁에 대한 전망을 상실하고, 민주노총 지도부는 투쟁지도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어렵게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 하에서 2002년 임단투가 시작되었다.
임단협 요구와 목표
임금인상투쟁과 관련해서는 임금인상 12.5%, 사회임금 인상, 최저임금 현실화(전산업 노동자 정액임금의 1/2), 비정규노동자 동일노동 동일임금 보장, 임금제도 개선(기본급 비중 확대와 연봉제 분쇄) 등을 목표로 설정했다. 투쟁돌입 직전(5월 14일)을 기준으로 보면 공공연맹의 8.27% 인상률 외에는 각 조직이 대체로 12.5%에 근접하는 인상률을 목표로 설정했다. 그러나 "기업 또는 산업별 단위의 노사교섭에 의해서 결정되는 시장임금과 법정외 복지인 기업단위 복지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국가복지 제도와 법정 기업복지 등 사회적 기준에 의해 제공-분배되며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되는 임금"이라는 개념의 사회임금 인상은 그 내용이 사실상 사회보장의 내용이어서 기업별 단위노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임금인상투쟁에서는 현실적인 투쟁목표로 잡히지 못했다. 나머지 요구들도 민주노총 차원의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목표에 그쳐 현장의 임단협투쟁과는 거리가 있었다.
단체협약 요구로는 노동시간단축 및 불규칙노동에 대한 규제, 비정규직 차별철폐와 정규직화, 고용안정과 구조조정 중단 등이 핵심적인 목표로 설정되었고 이들 요구들은 각 단위노조들의 2002년 단체협약 요구에 일정정도 반영되었다.
투쟁전술
5월 16일, 민주노총 제1차 비대위에서는 5월22일부터 5월26일 기간에 임단투 시기집중 연대파업투쟁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이 투쟁전술에 따라 5월22일에는 금속산업연맹(금속노조 2만5천명), 화학섬유연맹(1만명), 서비스연맹(2천명)이 파업에 돌입하고, 5월23일에는 보건의료노조(2만명), 공공연맹(1만명)이, 5월 24일에는 민주택시노조(1만명)가 잇달아 투쟁에 돌입할 것으로 계획이 최종 확정되었다. 민주노총은 각 연맹의 시기집중 연대파업대오를 집회투쟁으로 묶어내기로 했다.
이러한 투쟁전술은 단위노조 요구를 중심으로 하는 임단투로 대정부 정치총파업투쟁을 조직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수년간의 투쟁평가에 근거한 것이었다. 투쟁시기는 애초에 설정한 5월15일경보다 1주 정도 늦추었는데 이는 월드컵 부담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월드컵 시기에 바짝 붙여 교섭력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한편 월드컵 시기에 바짝 붙임으로서 예견될 수 있는 미타결 상황에서는 월드컵과 관계없이 투쟁을 계속한다는 배수진의 의미도 있었다.
자본과 정권의 공세
4.2 총파업 무산사태로 기선을 잡은 김대중 정권은 세계적인 축제인 월드컵에 무슨 파업이냐는 공세를 강화하면서 노조를 양보타결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자본과 정권의 이데올로기 공세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기간에도 노동자들이 파업할 수 있다는 여론이 40% 대를 유지했다. 이런 가운데 정권이 추진한 월드컵 관련 8개 업종(숙박업, 항공업, 버스·택시, 제조업, 금융업, 정보통신, 병원 등) '노사정 공동 평화선언'이 무산되는 등 월드컵 공세가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이에 따라 정권은 테러공포를 조장하며 월드컵 경기장, 선수숙소 근접지역 집회불허 등 파업대오를 사업장 안에 가두고 가두집회투쟁을 봉쇄하는 탄압작전을 구사했다.
▒▒투쟁의 경과
5월말까지의 투쟁
월드컵 시기로 바짝 붙인 투쟁시기는 일정정도 교섭진척의 효과가 있어서 병원 사업장의 상당수와 공공, 금속 사업장의 다수 사업장이 투쟁돌입 직전 타결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다. 금속노조의 두산중공업·만도·영창악기 등 46개 사업장 14,000명, 금호타이어노조 4000명, 보건의료노조의 경희의료원, 고대의료원, 성모병원, 상계백병원, 서울백병원 등 41개 병원 16,413명이 파업투쟁 돌입했다. 택시노조 1만명, 공공연맹의 사회보험노조, 경기도노조 등이 가세하여 5월말까지 총 250여개 사업장 6만여명이 파업투쟁에 참가했다. 매년 임단투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던 공공연맹은 4.2 총파업 후유증을 넘지 못해 5.26 파업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월드컵기간 투쟁
전국이 월드컵의 열기에 묻히자 투쟁은 장기화되었다. 6월11일에도 전국 77개 사업장 64,000명이 파업투쟁을 계속했다. 민주노총은 투쟁전선의 확대를 위해 2차로 5월 28-31일 기간에 금속노조 2차 투쟁사업장, 부산지하철, 데이콤, 농협노조, 축협노조 등 파업대오를 가세시킬 계획을 세웠으나 대부분 타결되어 투쟁이 확대되지 못했다. 7월로 예정되어 있던 기아차 등 대규모 사업장과 화학사업장 임단협투쟁을 6월말로 전진배치하려는 시도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 7월 투쟁사업장들은 월드컵 이후인 7월에도 의미있는 연대투쟁전선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6월11일 은근히 기대를 했던 현대자동차투쟁도 전체 전선에서는 별 역할을 못했다. 이런 가운데 6.11 민주노총 총력결의대회, 6.27 노동운동탄압규탄 국제공동행동의날 집회 외에는 월드컵 기간에 규모 있는 가두집회투쟁도 조직되지 못했다. 결국 6월말까지 민주노총 차원의 위력적인 임단투 투쟁이 전개되지 못하고 개별 조직의 투쟁으로 월드컵 분위기에 묻혀 투쟁이 장기국면으로 접어들었다.
7월 이후 투쟁
7월부터 택시노조의 투쟁에 민주노총이 결합하여 인천에서 민주노총 집회를 개최하는 등 장기투쟁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나섰다. 택시노조 역시 시청앞 집단 단식투쟁 등 인천시장을 집중 공략하여 인천시가 중재에 나서고 중재안을 수용하는 형식으로 파업투쟁을 종결하고 지역차원의 노사교섭으로 완전월급제 쟁취로 한발 나아갔다.
9월8일, 병원파업사업장 공권력 투입
서비스 연맹의 4개 사업장, 금속노조의 삼호중공업, 세원테크 등과 함께 보건의료노조의 임단투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8월27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임원보궐선거를 했다. 새로운 지도부가 채 전열을 정비하기도 전인 9월8일 김대중정권은 병원 파업장에 경찰병력을 투입했다. 이로써 김대중 정권은 98년 만도기계, 99년 롯데호텔, 2001년 대우자동차에 이어 집권말년까지 노동자의 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여 탄압하기에 이르렀다.
보건의료노동조합은 명동성당에 수배중인 위원장을 무사히 진입시키고, 400여명의 조합원이 명동성당 내 천주교 서울대교구청 앞 농성투쟁에 돌입함으로써 투쟁거점을 확보했다. 그러나 천주교 신부인 의료원장의 교섭거부로 2002년 임단투는 계속될 전망이다.
▒▒임단투 중간 평가
임단투 진행 현황
9월16일 현재 교섭돌입률 77.6%(1,227개 노조, 교섭가능한 전체노조수 대비), 교섭타결률 32.8%(403개 사업장, 교섭돌입노조수 대비), 임금인상 평균요구율 기본급기준 12.29%, 총액임금기준 12.84%, 임금인상 평균타결율 기본급 기준 7.87%(총액임금기준 9.0%).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교섭돌입률은 빠른 편이나 타결진도는 매우 느린 편이다. 이는 그만큼 2002년 임단투가 장기화되고 분산적으로 진행됨을 의미한다.
단협 핵심요구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관련 조항에 금속산업연맹의 소속 노조들이 대경특수강(비정규직 35명 정규직화), 범한금속(계약직 여사원 2년후 정규직화), 금속노조 26개 사업장(비정규직 보호-사내하청 처우개선)에서 합의한 정도의 성과가 있으나, 핵심적인 쟁점을 중심으로 전국단위의 투쟁이 집중되지 못하고 주로 단위노조나 지역별로 임단협 교섭이 분산되어 진행되고 있다.
최저임금투쟁에 있어서는 민주노총이 자본측의 안과 별 차이없는 수정안을 제출하고 그마저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서 자본측 안이 통과되는 최악의 상태를 맞이했다. 이는 교섭기술에만 치중함으로써 최저임금 문제를 부각시키는 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것이다.
투쟁평가
2002년 임단투는 세부적인 문제를 차치하고 주목할 점이 있다. 4.2총파업 유보, 민주노총 지도부사퇴, 비대위상태, 월드컵 공세라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6만여명의 조합원들이 흔들림없이 파업투쟁에 돌입했다는 점이다. 이는 김대중정권 5년간의 신자유주의 공세로 노동대중의 생존권이 얼마나 핍박받고 있으며, 그것을 투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조합원 대중의 의지가 꿋꿋이 살아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지도부가 조금만 더 튼튼하다면 자본과 정권의 공세를 능히 돌파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산별노조의 투쟁이다. 2002년 임단투를 이끌고 온 조직은 보건의료노조, 택시노조, 금속노조 등 산별노조이다. 물론 이들 산별노조의 2002년 임단투가 산별노조에 걸맞는 투쟁을 충분히 했는가에 대해서는 평가할 점이 많다. 여전히 각 산별노조 산하의 지부들이 전체가 하나가 되어 산별 차원의 파업투쟁을 전개하지 못했다는 점 등. 그러나 분명 산별노조는 제한적이기는 하나 연대투쟁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 최종의 평가는 보건의료노조 연대파업이 되겠지만. 만약 현재의 산별노조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을 산별체제로 바꾸어 낸다면 투쟁은 한단계 질적 변화를 할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산별노조 건설을 당명의 과제로 놓고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2002년 투쟁에서 특기할 점
-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
대우조선을 비롯한 금속 사업장들에서 상반기를 통하여 주목할 투쟁이 벌어졌다. IMF 기간동안 엄청나게 강화된 노동강도로 인해 집단적 직업병으로 발병한 근골격계 질환 = 골병에 대하여 대항투쟁을 노동조합이 조직하고 있는 것이다. 근골격계 투쟁은 바로 노동강도 강화저지 투쟁이다. 이 투쟁은 근본적으로 지금 시기에 정권과 자본이 벌이고 있는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를 축으로 한 신자유주의 전략에 대해 정면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노동자 민중의 절실한 생명권투쟁과 결부되어 있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골병들고 죽어가는 현실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 이토록 적나라하게 직접 보여주는 사례가 없다. 자본측도 사활적으로 이 투쟁을 가로막으려 하고 있다. 대우조선의 사측이 임금대폭인상을 내세워 근골격계 관련 산안단협은 개악안을 내고 이 산안관련 단협에서 노조가 완전히 무릎 꿇지 않는 한 교섭은 없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는 것은 그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근골격계투쟁은 올 임단협 투쟁과정에서 작년과 달리 새로 등장한 가장 주목되는 이슈이다.
▒▒전망과 과제
민주노총은 남은 하반기 투쟁의 핵심 중의 하나로 보건의료노조 투쟁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탄압분쇄 투쟁을 결의했다. 그러나 이 투쟁으로 보건의료노조 외의 다른 노동조합이 연대파업투쟁의 형태로 나설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그러나 투쟁확산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9월 25-27일 기간에 보건의료노조의 경고파업, 10월16일의 보건의료노조 연대총파업 결정되어 있다. 현재의 탄압에 비해 투쟁돌입시기가 다소 먼 것이 불안하기는 하나 이는 민주노조진영 전체가 병원투쟁대오 사수에 총력을 기울임으로써 보완해야 할 것이다.
2002년 임단투가 계속되고 있는 하반기에 잘못하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 공권력투입으로 현장을 뺏긴 병원투쟁이 패배하면 주5일근무제를 빌미로 근기법개악, 경제특구법 제정으로 노동조건의 엄청난 후퇴, 신자유주의 정책의 완성이 현실의 문제로 치고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당면한 노동운동탄압을 분쇄하고, 이 투쟁을 근로조건개악 저지투쟁으로 연결시켜 대중투쟁의 파고를 높여야 한다. 다가오는 대선투쟁의 중심도 이 투쟁에 있음을 말할 나위가 없다.
□□ 금속노조 상반기 투쟁 약평
금속노조는 2001년 금속노조를 건설한 이후 2002년 집단교섭 투쟁을 통해 '산별협약'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섭구조와 협약'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투쟁하였다. 동시에 '금속노동자는 하나'라는 기치와 '한다면 한다'라는 조직적 결의를 바탕으로 많은 투쟁을 조직하고 싸워왔다. 02년 금속노조 투쟁의 최대관건은 '금속노조'라는 150여개 지회가 어떻게 전국적 투쟁을 통일적으로 하면서, 산별협약의 기초를 만들어 갈 것 인가였다. 이를 위해 '기본협약'을 자본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요구를 최소화하였다. 그 결과 125개 사업장 중에서 기본협약을 합의한 사업장은 101개 81.5%에 이른다. 하지만 금속노조 주요 대공장인 두산중공업과 삼호중공업 등에서 자본의 집단교섭과 기본협약의 거부로 인해 02년 투쟁이 마무리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낮은 수준의 기본협약이라도 자본이 용인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만큼 교섭형태 조차도 전체적 투쟁을 사고하지 않고는 확보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은 금속노조가 02년 투쟁을 '교섭의 내용'이 아닌 '교섭형식'을 목표로 한 투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본과 '교섭구조'를 만들어 내면, 그 내용은 기본협약을 순차적으로 모아나가면 가능할 것이라는 안이한 발상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한편 금속노조는 17만 금속연맹과 함께하는 투쟁의 목표를 설정했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금속연맹과 분리되는 현실을 목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점은 금속노조로 산별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점으로도 이어진다. 금속노조는 금속노동자 전체의 요구를 안고 싸우려는 모습보다 금속노조와 비금속노조를 가르는 경향의 증대되고 있으며, 미전환 금속연맹 대공장들은 금속연맹이 통합력을 잃으면서 전국적 투쟁전선에 복무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3만 2천으로 출범한 금속노조가 17만을 아우르지 못하면서 금속노조 스스로는 열심히는 싸웠지만 목표하는 산별적 형식과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이 힘겹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금속연맹은 지난 13~14일 단위 대표자 수련회를 통해 금속연맹이 위기상태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모색의 길을 찾고 있다. 금속노조도 본조-지부 수련회를 통해 현재 상태를 공유하면서 이후 방향을 마련하기 위해 3분과를 구성하기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총론' 수준에서 위기의 진단을 동의하지만, '각론'에서 '위기의 원인'을 회피하는 것으로는 위기 극복은 어렵다. 발본적인 반성과 혁신이 필요할 때이다.
- 노동자의 힘 현장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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