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우(노동자의 힘 연대사업위원)
9월2일 새벽 6시 마석, 비두와 꼬빌
지하실 내 방 주위에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한두명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숨을 죽이며 그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발자국의 주인공들은 방문을 열고 벽을 더듬거리며 불을 켜려고 한다. 그리고 나를 흔들어 깨우며 한마디를 던진다. "니가 비두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알고 있다. 몇차례의 거센 저항속에서 나는 그들에게 개처럼 끌려 나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층에서 나의 동료 꼬빌이 수갑이 채워진채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내 친구, 동료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검은 그림자의 괴한 40여명에게 둘러쌓여 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나는 외쳤다. "우리 이대로 잡혀가지 말자! 투쟁하자!" 그러자 4-5명이 달려들어서 나를 폭행했다. 나는 차밑으로 굴러떨어졌다. 나의 팔은 뒤로꺽였고, 두손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9월2일∼11일까지 법무부 산하 출입국 관리소, 국정원, 경찰의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합동단속'이 진행되었다. 단속 첫날인 9월2일 마석 이주노동자 거주지역에 들이닥친 단속반에 의해 평등노조 이주지부 조합원인 방글라데시 노동자 비두(30), 꼬빌(30)이 연행되었다. 이들은 이주노동자 방글라데시 공동체의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탄압과 체포는 비단 이번 집중단속기간만의 일은 아니다. 작년에는 인천 공장기숙사에서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자고 있던 중에 수갑이 채워져 단속반에게 강제적으로 연행되었고, 올해 8월29일 안산에서는 '자진신고 여부를 알아볼 수 있는 컴퓨터가 버스안에 있으니 들어가서 조사해보자'는 유인으로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이 체포되었다.
9월3일에는 성수동 일대의 공단에 단속반원들이 들이닥쳐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해갔다. 단속반원들은 군포, 성남, 안산 등 이주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들이닥쳤다.
'프레지오 3358' 인간사냥을 시작하다.
9월10일 오후3시50분 출입국관리소를 나선 단속반의 차량 '하늘색 프레지오 3358'은 이주노동자를 잡아 채울 대형버스를 동원해 모란에 도착했다. 주로 단속반이 출몰하는 지역은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공단과 주거지역이며, 예외적으로 유흥가 일대로 단속을 나갈 때도 있다. 특히 유흥가에서는 지역자본과 결탁한 조직폭력배들이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주요한 단속의 대상은 식당에서 일하는 중국인 '아줌마들'이다. 모란에 도착한 것은 성남의 유흥가에 상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를 단속추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실적(?)도 올리지 못한 단속반은 다시 고속도로를 통해 구로공단으로 이동하였다. 이들은 남구로역 주변에 대형버스를 대기해놓고 남구로역 주변의 유흥가 일대를 수색하고 있었다.
이미 단속반의 대형버스 안에는 중국교포로 보이는 이주노동자 4인이 감금되어 있었다. "왜 거기 계신거에요?"라고 물었지만 서글픈 눈빛만이 차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재차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잠시후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에 의해 창문이 닫혔다. 하지만 감금되어 있던 이주노동자들은 눈치를 보며 창문을 열었고, 커튼밖으로 손을 내밀며 무엇인가를 전달하고자 했다.
이를 본 단속반 직원 1명이 밖으로 나와, "당신들 누구냐? 어디 소속이냐? 공무집행을 방해하지 마라!"라면서 시비를 걸어왔다. 그들은 "우리는 범법자를 잡으러 왔다"며 의기양양이다. 국가의 지시 사항이기에 매일 밤을 새도 힘든 줄 모르겠다던 그들은 잠시 후 1명의 중국교포 아줌마를 낚아채서 황망하게 사라졌다.
'표적수사'와 정부정책의 함수관계
이로써 법무부가 9일간(9월2-10일까지) 잡아들인 이주노동자는 634명. 하루 평균 90여명이 강제단속의 그물망에 걸려든 셈이다. 이것은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외국인 인력관리 제도'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2002년 3월 정부는 '자진신고제'를 통해 불법체류자들을 합법적으로 추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저항하고 시민·사회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합법취업을 보장하고 불법체류를 근절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선전하며 산업연수생을 8만에서 14만 5천명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2002년 12월까지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은 단 한명도 남김없이 추방하겠다'는 의도 또한 숨기지 않고 있다.
이번에는 아시안 게임 이후 대대적인 단속추방 사전작업으로 핵심적인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에 대한 '표적수사'를 진행했다. 10일간의 단속이 핵심적인 이주노동자 활동가와 이주지부를 중심으로 진행된 것을 보아도 이러한 정부의 의도는 드러난다. 법무부에서 비두와 꼬빌씨를 체포한 후 조사했던 주요한 내용이 '민주노총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냐', '이주지부를 어떻게 알게 되었냐'라는 것이었으며, 이주지부에서 주최한 집회에 참석한 사진을 증거로 강제추방의 근거를 들고 있다.
정부는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이 대대적인 단속과 핵심활동가들에 대한 표적수사속에서 위축됐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자신이 민주노총 조합원임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민주노총은 왜 우리가 잡혀가는데 가만히 있죠?" "총연맹에서는 왜 우리 투쟁에 연대를 안하는 거에요?"라고 서툰 한국말로 자주 질문을 던진다.
고국에 돌아가도 이주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되기 때문에 환영받지 못한다. 한국에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강요되는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 임금체불과 반인륜적인 행태를 참는 이유가 '먹고 사는 문제' 말고 달리 있겠는가. 또한 연수생이라는 이유로 직장을 옮기거나, 직업을 바꿀 권리도 박탈당하고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감당하기에 스스로 불법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언제 불법이라는 미명하에 강제적으로 고국행 비행기를 타게될지 모른다. 70-80년대 '산업의 역군'이라 불려지며 외화벌이에 동원되었을 남한의 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들의 모습과 교차되어 서글픔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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