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나는 근본주의자가 아니다...문제의 ‘근본’을 드러냈을 뿐"

김진석 교수의 비판에 답한다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한국학교수
<사회비평> 2002년 가을호에서 필자의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비판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김진석 교수(인하대 철학과)의 글을 반갑게 봤다. 반갑다는 말은 절대 인사치레가 아니다.

여태까지 동료 한국 교직자로부터 주로 “전공논문을 안 쓰고 무슨 짓을 하느냐”는 식의 비판(?)만 받아 온 판에 김진석의 알찬 비판적 분석은 반갑기 짝이 없었다.

“위험한 근본주의에 빠진 ‘일상적 파시즘론’과 비폭력주의”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김진석의 비판의 화살은 무엇보다도 “극우들에게 이용당할 소지가 있는” 한국의 일상적 파시즘의 분석자들(임지현, 문부식, 그리고 필자)의 비폭력 강조를 향해 날아갔는데, 필자의 경우에는 그외에도 “서구적 기준의 보편적 기준으로서의 오·남용” 등이 문제가 됐다.

이 대목부터 시작하면 좋을 듯하다. 지면 관계상 김진석이 문제로 삼은 필자의 책 모든 부분에 대해서 충분한 ‘해명’을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몇 개의 대표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시대역행'은 중심부 시각 아니다


책에서 필자는 박정희가 1968년에 세종로에 이순신 동상을 세운 것을 “진보적인 구미인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시대역행으로 보인다”고 썼다. 어떤 의미의 ‘역행’인가 하면 과거의 ‘위대한 장군’들을 군사주의적 국수주의의 상징으로 만든 제국주의 시대가 서구에서(그리고 박정희의 지적인 ‘모국’인 일본에서도) 이미 지났음에도 박정희가 ‘유효기간이 지난’ 대(對)국민 정권 합리화·세뇌 방법을 그대로 써먹었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대한 김진석의 비판의 논리는, 제국주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방어적인 민족주의를 제때에 제대로 섭렵하지 못한 한국사회의 ‘늦어진 발전’의 비극을 “진보적 구미인의 관점”이 아닌 “애정이 어린 눈”으로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질문을 중심으로 한다.

김진석은 “과거의 위대한 장군 모시기”를 이미 우습게 아는 서구나 일본의 발전의 원천이 바로 한국을 위시한 ‘주변부’ 지역의 착취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피해국은 가해국에 비해서 “역사적 시간”이 늦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역점을 둔다(42~43쪽).

김진석이 말하는 “피해국에서의 역사적 진보의 지연”의 논리는 꼭 “애정이 어린 눈”이 없어도 세계체제론을 웬만큼 익힌 학자면 다 이해할 것이다. ‘중심부’의 근대초기 국민통합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주변부’ 독재자들의 잘 알려진 수법이다.

즉 대만의 장개석이 공자와 청나라 말기의 ‘충신’ 증국번의 숭상을 강요한 것이나, 박정희가 이순신의 숭배를 어용화해 강요한 것은, 둘 다 일본 유학시절에 경험한 일제의 대(對)국민 세뇌 방법인 ‘영웅적 장군 숭상’을 각각 ‘토착화’시킨 것이다.

그들이 이처럼 했던 것은 물론 ‘시대역행’이라기보다는 ‘주변부’ 후발 독재의 ‘민족 만들기’의 단순한 논리일 뿐이다. 그 배경을 이해하면서도 필자가 ‘시대역행’이란 말을 쓴 이유는 독재의 ‘국민통합’ 논리보다 세계 민중의 반(反)자본주의적 투쟁의 논리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제시기 조선이 ‘아시아 진보 투쟁의 선봉’으로 불려질 만큼 조선의 지식인계는 이미 그 때부터 상당 부분 사회주의·진보주의자로 구성됐는데, 분단과 6.25의 비극 속에서 남한에서는 멸균실 수준의 반공적 규율이 강요됐다. 그것이 세계의 반(反)자본주의적 투쟁 전개의 관점에서는 ‘역행’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다가 1961년에 집권한 일제의 말류(末流)들이 일제식의 국수주의적 세뇌를 무자비하게 강요해 민중의 역사·현실 의식을 상당히 신화화시켜버렸다. 결국 1930년대에 백남운과 같은 진보적 사학자들이 이미 “봉건 통치자의 작품이자 통치 수단”으로 규정한 단군신화나, “봉건적 지배층의 영웅”으로 봤던 이순신이 1960년대 세대에게 ‘민족적 가치’의 동의어가 됐다. 민중해방의 논리로 봐서 이는 과연 역행이 아닌가.

필자는 이를 염두에 두고 세계적 민중해방의 논리를 추구하는 진보적 구미인의 입장에서는 박정희의 대(對)국민 세뇌행각이 ‘시대역행’이라고 썼는데, 김진석이 이 표현을 “서구 중심적”이라고 비판했다.

백보를 양보하여 그 글을 썼던 순간에 부지불식간에 서구 중심주의적인 논리가 작용했다고 치자. 그러나 진보적 한국인이나 대만인의 입장에서 봐도, 박정희나 장개석 등의 독재자들이 추구했던 ‘민족영웅 숭상’의 세뇌 정책이 독재체제가 굳어지기 전의 진보운동의 성과를 무너뜨렸다는 의미에서 “역사적 역행”이 아닌가.

한 마디로, 자본주의적 세계체제 발전의 논리상 불가피한 요소인 “주변부 후발 강경 국가주의의 등장”이 반(反)자본주의 투쟁의 논리로 따진다면 분명히 민중들에게 강요한 ‘역행’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사실이 진보적인 구미인들에게 자명하다는 것을 강조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해방의 논리 자체가 구미 중심주의적인가.

필자의 “서구 중심주의”를 김진석은 다른 부분에서도 찾았다.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주장하면서 필자는 “유럽 자유민주국가의 상식이 되어버린” 이 제도가 한국에 아직까지 없다는 사실과, 11년 전에 필자가 본 고려대 운동권 학생들이 입대 거부의 가능성에 대한 의식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서 김진석은, 대체복무의 도입과 모병제로의 점차적 전환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필자가 “폭력적인 역사의 와중에서 어쩔 수 없이 폭력적인 군대에 몸을 담은 많은 사람들의 실존적 고민을 무시”하면서 그들을 “비겁자 혹은 생각 없는 군사주의자로 매도”하면서 “서구적 높이”에서 그들에게 “다그친다”고 비판한다(46쪽).

이 비판에 대해서 뭐라고 답할 수 있는가. 11년 전에 필자의 친구가 돼준 고려대 예비역들에 대해서 필자는 “비겁자”라든가 “생각 없는 군사주의자”라고 “매도”한 적이 없다. 그들이 군대에 자의로 간 것이 아니고 파쇼적 국가가 짜놓은 제도에 어쩔 수 없이 순종했다는 걸 필자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필자가 지적하고 싶었던 것은, 어쩔 수 없이 군대에 갔다와야만 했던 그 남학생들이 ―‘운동권’임에도 불구하고― 파쇼적 정권의 군국주의적 담론의 상당 부분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받아들였다는 안타까운 사실이었다(사실, 그들의 ‘군국주의 학습’은 ―역시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학교부터 시작되곤 했다).

예컨대, 그들이 문화·역사적 단위인 ‘나라’와 지배층의 억압 기구인 ‘국가’를 혼동하면서 ‘국가’를 위한 각종의 ‘복무’, 그리고 ‘국가’에 의한 출세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학생시절에 ‘운동권’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 졸업 후에 <조선일보>에 입사하거나 안기부에 들어가는, 그야말로 이율배반적인 일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그 예비역들의 ‘군사주의’는 내재된 것이 아니고 학교·군대라는 기구를 통해서 파쇼정권이 성공적으로 세뇌시킨 부분이었다. 그들은 ‘비겁자’가 아닌 희생자였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징병제의 억압적·반(反)민중적 기능에 대해서 일찍이 눈을 뜬 구미 평화주의자의 사례를 든다면 꼭 “서구 중심주의”의 죄를 짓는 것인가. 파쇼적이지 않는 대다수의 중심부·준주변부(예컨대, 대만)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미 대체복무제가 실시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 꼭 “서구 중심주의”의 함정에 빠지는가.

일제가 프랑스와 독일을 모방하여 자국에서 1873년부터, 식민지 조선에서 1943년 8월 1일부터 실시한 징병제가 과연 무엇이 그렇게까지 ‘한국적’인가. 한국의 징병제 군대를 운영하는 현재의 지배세력들이 정신적으로 일제를 얼마나 닮았는지 김진석이 필자보다 더 잘 알 것이다.


'서구 중심주의' 비판 과녁 빗나가


김진석의 비판과 관련해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간의 한계란, 본인도 모르게 자신이 태어난 지역의 풍토를 ‘보편적’인 것으로 착각하게 돼 있다.

필자의 글 속에서 필자가 태어난 지역의 가치가 ‘보편적’인 것으로 착각되는 듯한 ‘냄새’가 풍겨진다면, 필자가 거듭 반성해서 필자의 한계 극복에 전력을 다할 것이다. 다만,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 서술할 때 필자는 의식적으로 ‘서구인’의 자세를 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필자의 주요 관심사항은, 극우들이 만들어낸 ‘국가’와 ‘민족’에 대한 온갖 허위의식들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진보세력의 과제를 돕는 일이었다.

파시즘을 극복한 서구 민중의 성과를 언급한 것은, 오로지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정상’으로 착각하기 쉬운 한국 파시즘의 모습을 세계 비교론적인 문맥에서 보다 폭넓게 그려내기 위해서였다. 일제와 미제의 침략·간섭 등으로 존속·고질화된 후진적 부분을 필자는 우리 한국 국민에게 ‘탓’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우리도 빨리 극복하자’는 의미에서 다른 지역의 선례를 이야기했을 뿐이다.


'비폭력' 원칙이 민중에 유리


덧붙여 이야기해야 할 사항은, 임지현, 문부식, 그리고 필자의 비폭력 강조에 대한 김진석의 비판이다. 지면 제한으로 여기에서 상론하지 못하지만, 요점만 이야기하겠다.

김진석이 “점잖은 상징 자본이 없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폭력”(51쪽)을 그러한 “상징 자본”이 있는 사람으로서 과연 비판할 만한 도덕적 근거가 있느냐고 묻고, 직접적 군사적 폭력이 아니더라도 비폭력주의자마저도 추구해야 할 교육·학술 분야에서의 경쟁이 과연 넓은 의미의 폭력이 아니냐고 묻는다(53쪽).

즉,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저한 비폭력의 현실적 불가함을 강조하여 비폭력주의자의 논리가 “공허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의 논리가 원리원칙상 틀린 것이 아니다. 제도화된 폭력인 자본주의가 사라지기 전에는, 민중 쪽에서 아무리 평화와 비폭력을 갈구해도 넘지 못할 ‘벽’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극적인 예를 들자면, 1년에 1백여명을 넘는 동지들을 잃는 콜롬비아의 노동·진보운동가들이나, 파쇼국가 이스라엘에 의해서 생존권이 박탈된 팔레스타인인들은 아무리 평화를 갈망해도, 김진석의 말대로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는 만큼 그들의 자기 방어를 책망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

다만, 상황 논리상 약간이라도 폭력 없이 민중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면, 가급적이면 끝까지 ‘비폭력’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민중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세계 저항운동의 역사가 증명한다. 제도권의 폭력 능력이 보통 민중에 비해서 훨씬 우월하기에 폭력적인 저항이 불필요한 희생만 불러일으킨다는 점도 그렇고, 폭력투쟁이 부르주아 매체의 반(反)민중적 선전의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도 그렇다.

그래서 김진석의 논리와 정반대로 오히려 “상징 자본”이 없어서 부르주아 매체의 왜곡 보도에 의해서 큰 손실을 입을 민초일수록, 폭력을 가급적이면 피하는 것이 순리다.


군대는 극우 헤게모니 재생산 거점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 전체가 다 폭력인데 왜 군대만을 집중 공격하느냐는 김진석의 비판에 대한 답변은 간단하다. 한국 군대만큼 개인의 인격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민중투쟁에 방해가 되는 극우적 헤게모니 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군에서 ‘국가의 신성함’에 대해서 세뇌를 당한 사람이면, 자신이나 소속집단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파업에 참석할 수 있어도 체계적인 계급적·사회주의적 세계관을 갖기가 힘들다. 극우국가의 군대가 극우 헤게모니에 충실한 우민(愚民)을 양산한다는 진리만큼은 더 자명한 진리가 있는가.

우리가 <조선일보>를 극우 헤게모니의 핵심 기관으로 지목하여 ‘안티조선’ 운동을 벌이듯이, 똑같은 의미에서 우리의 미래인 비폭력적 민중투쟁의 정신적인 기반을 파괴하는 군사주의를 반대한다.

김진석 비판에 대한 필자 답변의 핵심을 간단히 압축한다면, 필자는 “민족주의·군사주의·폭력 반대에 집착하는 근본주의자”가 아니다.

권력이 만들어낸 민족주의적 허상의 파괴도, 권력을 지탱해주는 군사주의적 세뇌의 반대도, 권력자들에게 민중 탄압의 명분을 주는 폭력의 자제도 모두 진보세력 투쟁의 미래에 절실히 필요한 부분들이라는 것이다.
[ 104호] 9.16 ~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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