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대의 부름에 답하다

민중미술가 임옥상

숨막히는 도시를 벗어나 가을햇살의 따사로움을 즐기고 싶은 오후, ‘고풍스런 거리가 여유를 선사하지 않을까’, 실낱같은 기대는 인사동 초입부터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러나 실망감은 가나아트센터에 들어서 날개를 단 쇳덩어리 인간(?)과 맞닥뜨리며 이내 색다른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민중미술 1세대이자 80년대를 대표하는 화가 임옥상. 사회현상이나 시류를 기발한 발상과 감각으로 포착해 전시 때마다 세간의 조명을 받아온 그가 이번에는 흙 대신 생소한 쇠를 들고 나타났다. 그의 열 세 번째 전시회 ‘철기시대 이후를 꿈꾼다’가 열린 이튿날, 전시회장을 찾았다. ‘물빠진 진’ 느낌의 헐렁한 티셔츠에 활력이 넘치는 제스처, 그럴때면 흩날리는듯한 머리카락과 의지가 가득 찬 눈빛. 그에게는 나이가 보이지 않았다.

매향리 탄피들 평화를 꿈꾸다
“전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고 싶은 사람이예요. 철에 영혼이 있다면 살생이 아니라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꿈을 꿀 것이라 생각했죠.”

폭력과 전쟁이 난무하는 현재를 철기시대로 본 작가는 철을 해방시키기 위해 스푼, 포크, 나이프로 폭탄에 날개를 만들어 줬다. 매향리 미군 사격연습장에서 날라온 포탄 탄피와 부속품. 전쟁의 상징인 이 고철 덩어리들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평화’를 향해 비상하는 새가 되고, 바다를 자유자재로 헤엄치는 물고기로 승화했다.

고철 몸뚱이에 폭탄 ‘거시기’를 가진 녀석은 미국이다. ‘The Great American Phallus’. 미국이 저지른 야만과 참상을 남근으로 상징한 속내가 재밌다. 작가는 “전쟁으로 점철된 남성 중심의 세계, 그 중심에 있는 미국을 상징화했다”고 말한다.

“민중으로부터 배운다”
그는 매향리에서 사람들 손을 잡고 울었다. 매향리에 작품을 설치했을 때 반대할 줄 알았던 사람들은 의외로 반겼다.

“작품에 대해 사람들은 배웠냐 안 배웠냐를 떠나 즉각 반응하죠.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진실이예요. 만들고 꾸미는 것이 예술이 아니라 진실을 드러내야 예술이죠.”

유신시절에 대학을 다녔던 임옥상. 대학원 논문을 쓰면서 자신의 작품이 어디에 서 있는가 돌아봤다. 미국의 식민지에서 작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땅, 내 역사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소통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때까지의 작업을 다 집어던지고 새로 그리기 시작했죠” 그림으로 출세할 생각은 없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솔직해져야 하고, ‘자기 몸 파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 속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예술은 민중으로부터 배웁니다” 그에게는 민중이 스승이고, 자연이 또한 스승이다. “자연 속에 자기를 내던질 수 없다면 좋은 예술가가 아니지 싶어요”

‘한바람 임옥상’ 그가 흙과 땅을 사랑하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흙’과 ‘땅’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제스처가 한층 커졌다. 마치 그가 흙 속에서 땀을 흘리며 작업하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물과 불의 노래’, ‘역사의 징검다리’, ‘우리시대의 풍경’ 등 그의 작품은 자연에 대한 사랑은 물론 현실과의 긴장 관계를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 임옥상을 잘 보여준다. “인간이 불편부당한 조건 속에서 함몰되지 않고 이를 딛고 일어서는데 제 작품이 작은 역할이라도 하면 행복하겠어요”

거리로 나온 미술
“모든 예술은 사회주의적이어야 한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나눠갖고, 공유하고, 그런 미덕 속에서 예술이 훨씬 더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내꺼야, 안 보여줘. 이게 얼마나 비싼건데, 이런 자본주의적 생각은 한계가 있죠. 이런 길은 안 가야지, 늘 생각합니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이 끊임없이 현실과 사람들에 밀접해 있어야 한다는 그는 또한 작품이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99년부터 일요일마다 인사동 거리에서 꼬박꼬박 이어온 ‘임옥상의 당신도 예술가’는 ‘벽없는 미술관’을 일구려는 그 나름의 실천이다.

“오히려 ‘당신도 예술가’를 하면서 제가 더 많이 배웠죠. 나도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무엇인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새롭게 하게 됐고”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나 환경운동연합 같은 데 열심인 것도 이런 실천의 연장선상에 있다. 갯벌살리기 문화예술인 모임을 만들고 새만금 간척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도 그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그의 작품은 시대와 함께 호흡해왔다. 매향리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자유의 신 in Korea’를 비롯, 정신대 역사관에 자리한 ‘누가 이들에게 -대지의 어머니’, 판문점의 자유의 소 ‘엘자’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하고 있다.

“모든 예술은 생활 속에 있어야 합니다. 우러러 보거나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과 더불어 있어야 해요. 좀 더 구체적으로”

이현주 / lhj@sp.or.kr
태그

미술 , 민중미술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참세상뉴스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