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익/객원기자 progk21@hanmail.net
얼마 전 한나라당 보수파의원들의 모임인 통일안보의원모임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산 아시안게임 답방설과 관련 이는 “12월 대선을 앞둔 깜짝쇼식 답방추진으로 ‘신북풍’을 목적으로 한다면 결사저지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고, 이회창후보도 이러한 이유로 김위원장의 답방은 다음 정권에서 추진되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 동안 정권유지와 기득권수호를 위해 ‘북풍’이라는 변수의 재미를 톡톡히 경험했고 그 위력을 잘 알고 있는 이들로서는 이제 자신들에게 불어올지도 모를 매서운 바람에 대한 이 같은 반응은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정세를 설명하는데 ‘바람(風)’이라는 요소가 키워드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북풍’, ‘총풍’, ‘병풍’, ‘세풍’, ‘장풍’(96년 장학노 비리사건), ‘황풍(황장엽의 망명과 황장엽리스트)’등 한국정치는 말 그대로 바람잘 날이 없다.
이 중 ‘북풍’은 분단체제를 배경으로 선거를 앞두고 발생하는 일종의 ‘북한변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북한변수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과장과 왜곡을 통해 몸집을 불림으로써 국민들의 안보심리와 전쟁발발에 대한 불안감을 자극해 왔고 선거시기 집권세력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해 왔다.
87년 KAL기 폭파사건, 92년 이른바 간첩 이선실과 남조선노동당 사건, 96년 4.11 총선 때 북한군의 판문점 무력시위, 9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발표된 오익제 월북사건과 이석현 의원의 명함파동 등에서 이러한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북풍’의 특징이 선거를 전후로 발생한다는 측면에서 모든 북한변수를 ‘북풍’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배경이 기본적으로 분단체제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풍’은 ‘색깔론’과 결합하여 분단이후 ‘반공’을 국시로 하는 집권세력의 민주진보세력에 대한 유용한 폭력도구로 활용되어왔다.
이승만 정권시기 ‘부산정치파동’과 ‘진보당사건’, 박정희 시기의 ‘통혁당’, ‘동백림사건’, ‘인혁당’과 ‘민청학련’, ‘남민전’, 전두환·노태우 시기의 무수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조직사건,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분단체제를 이용해 국민들의 안보심리를 극대화하여 집권유지에 활용한 사례는 사전으로 만들어도 될 만큼 널려 있다. 그리고 그 최대 피해자는 절름발이 한국정치의 역사 그 자체였다.
하지만 현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을 중심으로 불거지고 있는 북풍논란은 냉전고착이 아니라 탈냉전을 향한 바람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북풍’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즉 6.15공동선언은 한반도의 화해무드에 결정적인 출발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부시집권 이후 지속되는 미국의 공세적 대북정책과 서해교전을 축으로 다시 경색되어 있던 남북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집권세력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개연성의 측면에서 동일한 성격 또한 존재하지만,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단행된 DJ방북과 6.15공동선언이 민주당의 득표에 그리 큰 영향을 주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특정 지역의 견제심리를 자극했다는 경험에서 보면 이는 속단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북풍’이라는 북한변수가 독립적인 메커니즘으로 결과를 산출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아니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북풍’효과가 대선을 비롯한 각종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지역주의라는 균열구조 위에서, 구체적으로는 비호남지역의 지역주의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북풍’은 그 진원지가 북쪽이냐 아니면 남한이냐에 상관없이 한국정치의 변수로서 이미 기능하고 있는 ‘우리 안에 부는 바람’인 것이다. 결국 왜곡과 과장으로 점철되어온 북풍, 색깔, 지역바람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진보의 바람’이라는 점이 다시 강조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104호] 9.16 ~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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