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 바꾸기 운동을 시작하자

여성비하 TV드라마 비판

오혜환/드라마바꾸기운동 준비위원회 위원장
드라마는 우리 생활의 거울이다. 남편의 외도로 인한 이혼, 이에 따른 여성의 맞바람, 유부남의 당당한 애인 등 과거 금기시됐던 주제들이 최근 TV 드라마에서 봇물처럼 다뤄지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식상하다. 주제는 다양해졌으나 결말은 예측 불가가 아닌 그렇고 그런 짜고 치는 고스톱이기 때문이다.

안방극장 제작의 주도권은 물론 남성 PD들에게 있다. 이들은 모두 부모 세대로부터 자연스레 가부장제를 물려받은 세대이며, 겉으로만 여성 상위를 외치는 두 얼굴의 사나이들이다. 이들이 제작에 관여하고 있는 한 어떤 TV 드라마도 상업주의와 결합하여 광고주를 유치하기 위한 시청률 경쟁에서 자유로워 질 수 없다. 작품성과는 전혀 무관하게 말이다.

반면 TV 드라마 작가의 90% 이상은 여성이다. 그녀들은 말한다. 제작자가 요구하는대로 작품을 쓰지 않으면 왕따를 당하고 인기작가로서의 길이 막히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여성을 비하하는 드라마를 어쩔 수 없이 쓴다고. 그렇다면 작가나 PD에게만 책임이 있는가?

나는 이를 즐겨보는 여성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의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좋은 드라마가 무엇인지, 문제가 되는 드라마가 무엇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보편 타당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우리네들이라면 보는 시각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최근 MBC의 <인어공주>라는 드라마는 직장여성들도 이를 보기 위해 일찍 퇴근할 정도로 인기 폭발이다. 29세의 젊고 당당한 여성 작가(장서희분)를 등장시켜 당당한 전문직 여성의 정체성 찾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려운 언론 고시를 뚫고 입사한 여기자(우희진분)가 약혼과 함께 퇴사를 하는 황당한 설정도 있다.

어디 그뿐이랴. KBS 주말 드라마 <내사랑누굴까>를 보면 맏며느리(이승연분)는 박사과정을 밟던 똑똑한 여성인데 맏며느리로서 10여명 정도 되는 집안 살림을 완벽하게 하는 팔방 미인형으로 묘사된다.

종영된 MBC의 <고백>이란 드라마는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남편(유인촌분)의 외도와 그와 다른 여자(정선경분)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불임한 부인(원미경분)이 다시 받아들이는 과거 가부장 시대의 남아선호 사상 및 가문 계승을 은근히 당연시하고 있다. 의사여서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원미경이 가족의 중요성 때문에 유인촌을 받아들이는 것인지, 아니면 홀로서기에 익숙치 않아 유인촌을 받아들이는 것인지 모호하다.

KBS의 <러빙유>나 SBS의 <라이벌>, <순수의 시대>등은 신데렐라 신화의 대표적인 부자왕자와 ‘예쁘고 착한’ 공주의 재탕이다. 또한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연령대는 어떤가.

심지어 미모가 뛰어난 고등학생 여배우가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20대의 성형 미인들이 주인공을 장식한다. 노년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드라마는 없다. 성형외과가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은 TV 드라마에서 예쁜 여자만이 백마 탄 잘 생긴 왕자를 만날 수 있다는 뻔한 끝맺음을 보여준 결과이기도 하다.

드라마 속 여성들은 사랑의 노예로 나타나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시기와 질투를 하거나 사랑이나 결혼 앞에서는 자신의 일을 쉽게 포기하며 가부장제 가정에 갇혀 남편에게 사랑과 관심을 달라고 ‘앙탈’을 부린다.

여성이 여성의 적으로 등장하고 어머니는 딸에게 여자는 그저 시집이나 잘 가면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아들은 절대 집안일을 거들면 안 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는 80년대가 아닌 21세기 우리가 보는 드라마의 현주소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전복하기 위해서 먼저 여성들이 변하기를 바란다. 여성 스스로 일상에서부터 아들과 딸에게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습관부터 지양하자.

남편과 아들, 사회와 국가가 여성을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동등한 인간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드라마바꾸기 운동’을 가정 내에서부터 실천해보자. 남편과 함께라면 더욱 좋다.

또한 방송사 홈페이지에 드라마의 잘못된 부분은 꼬집고 비판하는 ‘사이버 테러’도 서슴지 말자. 남녀의 평등지수가 OECD 국가중 최하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을 이용해야 한다. 이제, 드라마와 접속하는 코드를 바꾸자.
[ 104호] 9.16 ~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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