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보이는 문화]서울의 이면(裏面), 영구임대주택

①'범생이'와 '영구'

나는 94년부터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남다르게 민감한 편이다. 나 자신이 빈민 출신이고 빈민층 문화에 익숙하다 보니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빈민 문화에는 독특한 것이 있다. 흔히 빈민문화를 표상하는 달동네나 산동네와는 다른 문화적 일상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일례로 인근 중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또래들끼리의 언행에서도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다. 보통 중고딩들은 범생이, 양아치, 날라리, 개날라리 같은 호명방식으로 서로를 구별한다. 그런데 영구임대단지 출신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또 다른 호명방식이 이루어진다. 중산층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보통 범생이라고 불리며, 영구임대단지에 사는 아이들은 '영구'라고 불리는 것이다. 가령 호진이라는 친구가 영구임대주택에 산다는 게 친구들 사이에 알려지게 되면, 아이들 사이에서 뒷다마는,
"야, 호진이 영구라며?"
"뭐, 호진이가 정말로 영구였어? 그런데 그 새끼 왜 여태껏 범생이인 척 했어?"
라는 식으로 진행된다. 간혹 아이들끼리 싸움이라도 벌어지게 되면, 게다가 범생이와 영구 사이의 싸움이라면,
"이 영구 새끼가…."
"그래, 이 새끼야. 나 영구다. 어쩔래? 씹새끼야!"
라는 식의 언술들이 어김없이 빠지지 않는다.
범생이가 '영구'라고 언표를 던졌을 때, 거기에는 이미 모락모락 차별의 냄새가 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영구라는 정체성 때문에 따돌림이 발생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째서 그런 걸까. 거기에는 달동네 아이들이 좀 사는 애들한테 따를 당했던 예전의 도시적 경험과 영구들이 범생이한테 따를 당하지 않는 요즘의 도시적 경험의 차이가 자리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예전에 이 동네에서 알았던 두 녀석을 회상하게 된다. 한 명은 일찌감치 고1때 자퇴하고 중국집에서 배달을 하게 된 현광이라는 녀석이고, 다른 한 명은 비교적 학교를 잘 다니고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얻어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가진 우현이라는 녀석이다. 이 두 녀석은 참으로 대조되는 지향점을 보여준다. 빈민-노동자라는 자기 계급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우현이와 현광이는 완전히 다르다. 그러다 보니 학교 안이나 바깥에서 같이 노는 무리들도 다르고 노는 방식도 틀리다.
현광이의 경우는 빈민-노동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극단으로 몰고 간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현광이가 속한 무리들은 범생이들의 중산층 문화권력에 대항해서, 나름대로 '개날라리'로서의 권력을 구축하기도 했다. 본드를 불기도 하고, 대마초를 구해다 피기도 하고, 매일 같이 술로 고주망태가 되기도 한다. 또 심한 경우에는 부모를 폭행하기도 하는 등, 전형적인 일탈의 모습을 보인다. 얘네들은 일찌감치 폴 윌리스(Paul Willis)가 「교육현장과 계급재생산」에서 분석했던 대로, 스스로 계급이동의 가능성이 없음을 '간파'하고 불온한 언행과 심각한 일탈수준으로 자기들만의 문화권력을 구성한다.
반면 우현이는 마음 착한 범생이들과 잘 어울려 다닌다. 같이 노는 무리들 중에 범생이들이 다수고 영구가 혼자나 둘이라면, 직접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꿀리는 게' 없지 않다. 우현이가 딱 그런 경우다. 그런데 그렇게 범생이들과 놀다 보니, 녀석은 자기 용돈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곤 한다. 이런 식의 초과지출 경향은 더욱 더 우현이를 범생이-지향적으로 만든다. 돈을 쓰려면 필연적으로 신분상승을 꿈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달동네와 영구임대주택이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영구임대주택으로 대량 이주한 빈민들이 보이는 개량화되고 양성화된 라이프 스타일은, 달동네 시절의 빈민문화보다는 오히려 중산층의 삶과 비슷하다. 연탄이 아니라 중앙난방식 보일러를 때고, 아들딸의 방에 들어가기 위해서 문을 벌컥 여는 것이 아니라 노크를 해야 하고, 더 이상 재래시장에 가는 게 아니라 인근 그랜드마트 같은 유통할인점에서 장을 본다. 영구임대주택에서의 이러한 삶의 방식과 공간 구성은 현광이보다는 우현이 같은 타입의 인간을 더 많이 만들어낸다. 부모들은 중산층을 지향하고, 영구 아이들은 그들대로 범생이를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빈민문화 혹은 노동자문화의 새로운 국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자기보다 높은 신분만을 쳐다보고 살기 때문에 자본-노동의 경쟁이 아니라, 영구임대단지와 교실 내부에서의 노동-노동의 경쟁만이 존재하는 식으로 빈민문화가 재편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후기 자본주의의 국면이 중산층뿐만 아니라 하층 계급에게까지 전면화됐다는 얘기도 가능할 것이다. 어쨌든 이런 판도 속에서 영구임대주택단지의 아이들은 문화적 우세종으로서, 환영(fantasmagories)으로서의 범생이를 지향하며 지내고 있다.

김성윤 / 서울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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