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만나고 싶었습니다]안면중학교 김인규 미술 선생님

그림은 삶에게 쓰는 편지…우회로 없는 삶을 꿈꾸며






▲ 삶으로, 예술로 온몸으로 현실과 부딪히며 사는 그는 '젊은' 선생님이었다.<사진:대학생신문 원주 기자>



김인규 선생님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02년 '인터넷 부부 누드사진 사건'이었다. 선생님은 '음란물 제작 유포' 혐의를 받아 여론의 마녀사냥식 재판을 받았고, 교육청으로부터 3개월 정직 처분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93년 중앙미술대전에 입상하고 94년 민중미술 15년전, 99년 비엔날레 풍자전, 4회 광주비엔날레 작품 전시 등의 활동을 펼쳐온 '화가'인 그의 '표현'은 그렇게 묻혀졌다. 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던 선생님은 지난 해 또 한번의 홍역을 치루고 다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 있다.

나의 그림은 실제 상황이다
첫인상이 심하게 굴절되어 있다는 것만큼 진실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도 없을 것이다. 세간에 '인터넷 부부 누드사진을 올린 선생'이라고 알게 된 김인규 선생님. 그는 왜 그런 사진을 찍었고, 왜 인터넷에 올렸는가, 미처 이야기들을 시간도 없이 '이건 엽기야'라고 몰아갔던 기억은 어쩌면 가물가물하지만 선명하다. '김인규'를 모르더라도 여전히, '인터넷 부부 누드 사진사건'하면 '아'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것이다. 그를 그렇게 기억하는 것은 분명히 슬픈 일이다. 어떤 선생님보다도 친절한 미술 선생님, 이미 오래된 경력의 화가를 그따위로 떠올려야 하다니. 한바탕 안주거리처럼 씹히던 그의 사진 이야기가 더 이상 흥미롭지 않게 된 지금, 그가 책을 냈다.
'나는 세상에 끌려나와 심판대에 세워졌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물론 그들은 나의 답변이 끝나기 전에 관심을 거둬 버렸지만, 나는 굼뜨게도 이제야 그에 대해 무언가 답을 하고자 한다. 이미 그것은 기나긴 여정이었고, 앞으로 또다시 기나긴 여정이 될 것이다.'
라는 글로 시작하는 <나의 그림은 실제 상황이다>(푸른나무, 2002)에서 우리는 우리가 놓쳐왔던 시대의 화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굴절된 첫인상에 부끄러움을 가지게 됨과 동시에.

예술, 현실에 편지쓰기
안면도의 작은 정류장에서 지나가던 아이들의 인사를 받고 있던 선생님은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계셨다.
"요즘, 눈병이 유행이라…."
차를 타고 십여 분 나가니 금새 바다다. 바다가 보이는 찻집에 마주앉자 선글라스를 벗은 눈이 빨갛다.
"책, 안 내려고 했어요."
작년, 사건(?)이 일어난 당시 여러 출판사로부터 출판 제의를 받았던 선생님은 오랫동안 고사해왔다고 한다. 그러다, 사람들이 잊어갈 무렵,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혀진 일을 다시 끄집어내는 일이잖아요. 망설였지만 사건화되고 시끄럽게 일이 진행되면서 (본질은) 덮어지고, 표피적인 전달만 된 거죠. 이제와 충분히 전달할 필요가 느껴졌어요."
'선생이 인터넷에 부부의 누드 사진을 연재한 사건'에서 그가 '충분히 전달하고자' 한 진실. 늘어진 뱃살과 성기, 아내의 부른 배가 드러난 사진이 말하고자 한 그것.
"예술은 현실에서 똑 떨어져 나온 별도의 세계가 아니라 일상 자체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구체적이어야 하죠. 누추함과 답답함 속에서 환희로운 환상을 가질 수 있는 것, 무언가를 '발견해내는 힘'이 예술입니다. 그럼으로써 삶에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하는거죠."
그는 현실에게 말을 걸기 힘들 때, 예술로 현실에 '편지를 쓴다'고 표현한다. 캔버스의 세계는 바깥과 연관을 가져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캔버스를 바라보는 것은 필터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일이다. 이는 세상과 접속이 어려울 때 택하는 방법이다. 리얼리티를 가지는 실질적인 만남을 가질 때, 캔버스라는 우회로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전교조 활동을 하면서 그가 예술을 접은 이유다. 그러나, 만남이 불가능한 상황, 편지를 통해서 밖에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는 다시 붓을 들었다. 문제가 된 사진은 예상치 못한 셋째 아이가 생겼을 때, 그의 존재를 끌어안으면서 남긴 갈등과 대화의 산물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미술을 사는 지금, 그는 다른 작품을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단다.

"그들은 칼을 빼서 아군을 찔렀다"
문제는 다시 그가 '선생님'이었다는 점인지도 모른다.
"교사에게는 '나를 따르라'는 말을 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벌거벗은 존재예요. 존재의 벽과 싸워나가는 것이 삶이라면, 교사의 역할은 그것의 동반자, 기댐목, 울타리일 뿐입니다. 한편, 교사도 인간으로서 자기 존재와 대면하고 자기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소년 보호법과 인터넷 내용 등급제라는 새로운 국가보안법이 그를 옭아맨 주요 장치였다. 그는 음란함을 괴물스럽게 바라보는 분노가, 엉뚱하게도 "아군인 나를 찔렀다"며 허탈하게 웃는다. 성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의도는 무시되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해석되어야 할 자리에 공권력의 권위유지 욕구만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그의 사건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복직이 되고, 표면적으로는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 하지만, 그는 자신이 "물 위에 뜬 기름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고개를 젓는 그는 슬퍼 보이다가 이내 그것조차 "내가 지게 된 새로운 내 삶"이라 말한다.
전교조 활동을 하던 그를 옭아 맨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편견은 여전히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부딪혀야 할 대상은 다층화됐다. 변화를 원하는 자, 삶으로 증명받기를 요구받는다. 삶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는 젊은 화가는 시리도록 푸른 사람이었다. 그의 삶의 동지, 아내와 그의 삶의 리얼리티인 셋째 아이. 그는 그들과 함께 고독한 싸움의 길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학생신문사 원주 기자 tea-snow@hanmail.net


태그

김인규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참세상방송국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