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투쟁 사업장에 가 보면 알게 된다. 항용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고, 불퇴전의 결의를 소리 높여 외치는 선봉의 노조 간부들이 많은 경우에 기실은 일반 조합원들보다 먼저 무너진다는 사실. 대개 그것은 승리에 대한 조급한 집착이나 노동자 투쟁의 자발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간부들이 도저히 안 되는 싸움이라고 판단한 것조차도, 조합원들이 자주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할 때, 삼일만에 깃발을 내렸어야 할 싸움이 석 달이 가고 삼 년이 가고 기어이 이기고야 만다. "질긴 놈이 이긴다 끝까지 투쟁하자"는 그러한 피 어린 경험에서 나온 구호일 것이다.
경우야 약간 다르지만,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라는 지고지난한 길 위에서도 소아적 집착이나 명망가적인 사고에 빠져서 노동자 민중의 대의와 염원을 잊고 일탈의 길로 접어드는 상층의 간부들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보아 왔다. 민주노총의 전직 간부들이 주도하여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이른바 "개혁과 통합을 위한 노동연대"(이하 "노동연대")의 출범 소식을 들으면서, 그리고 최근 여러 매체를 통하여 전해지는 노동연대의 노무현 지지라는 잰걸음을 접하면서, 나는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보았다.
대한노총 혹은 한국노총을 자신들의 정치권 진입의 교두보로 활용하였던 옛 보수 정당들의 노동자 출신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네 진보정당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필시 기성 정당과의 연대 혹은 연합을 놓고 벌이는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90년 창당했던 민중당의 경우를 보더라도 당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보수 정당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목소리를 높였고, 그 진원지는 바로 지도부의 동요였으며, 급기야 그 일부가 기성 정당으로 편입하여 지금까지도 행세하고 있지 않은가. 노동자 민중에 대한 배신의 딱지가 보수 일색의 정치권에서는 개혁적 성향을 가진 차세대 정치인이라는 보증수표로 둔갑하였다.
노무현 대안론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노동연대를 중심으로 하여 노동계 일각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노무현 지지의 움직임이라는 것은 87년 대선 이후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민중민주운동진영이 비판적 지지론, 후보단일화론, 독자후보론 등으로 갈라졌던 그 시기는 한국 사회가 아직 절차적 민주주의조차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던 때였고, 따라서 독재정권에 맞서는 민주대연합론이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2002년 현재 우리 사회의 조건은 크게 다르다.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넘어서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포함하는 내용적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할 때이며, 그러려면 보수 일색의 한국사회에서 진보의 날개를 어떻게 펼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보수정치권에서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워 가는 진보와의 연대는 지극히 빈약한 것이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이며 노무현 또한 예외는 아니다.
김대중에 견주어 볼 때 노무현은 확연히 다르다고 노동연대는 주장한다.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DJP 연합을 했고, 보수에 포위될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은 IMF 경제위기 상황에서 달리 택할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노무현의 주변에는 개혁적인 인사들이 포진하고 노동정책 역시 김대중의 그것보다 진일보하다. 그래서 노무현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고, 노사관계를 질적으로 성숙시킴으로써 보람있는 일터를 만들 것이다.
이것이 그 주장의 줄기이다. 그러나 그것은 박정희 이후 줄기차게 되풀이되었으되 한번도 지켜지지 않은, 장밋빛 미래에 대한 덧없는 약속일 뿐이다. 노무현의 정책과 약속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태이며,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충족시키기는커녕 IMF 이후 파탄에 빠진 민생을 희망으로 되돌리기도 결코 쉽지 않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면, 2000년 총선연대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으라고 권하고 싶다.
총선연대는 4·13총선을 앞두고 도덕성과 청렴성을 주요한 잣대로 부패 정치인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집중적으로 벌였고, 그 결과 소위 386세대를 포함하여 상대적으로 깨끗한 후보가 대거 국회로 진출하게 끔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제16대 국회의 지난 2년여의 성적은 그 이전과 진배없지 않은가. 요컨대 의원 개개인의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보수 일색으로 구조화된 문제가 한국정치 발전의 장애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 노무현은 소신있고 개혁적이며 역량있는 정치인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집권당이며 보수정당인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일 뿐이다.
조금 더 얘기해 보자. 명색이 정당이라면서 국회의원을 서로 꾸어주고, 의원들의 당적이 필요에 따라 수시로 바뀌어도, 당의 정체성에 대한 아무런 성찰적 고민이 일어나지 않는 이 땅에서, 보수 정당끼리의 차이라는 것이 실은 집권했느냐 아니냐 하는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
남북관계만 하더라도 그렇다. 대통령 한 사람의 철학과 역량에 의존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세 특히 미국의 대외정책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 보면, 햇볕정책이 김대중 혹은 민주당의 전유물로만 남을 수 있을까. 노동정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현 정권이 IMF를 빌미로 노동자의 피땀을 빼앗아, 공적 자금이라는 이름으로 재벌과 외국자본 배불리는데 투입하는 과정에서 이렇다할 국민적 저항이 없었던 것은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라는 우호적 조건이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은 다분히 역설적이지만, 실제로 노동자 민중에게 더 이상 나빠질 수도 없는 최악의 생존조건을 만들었다.
지금은 새 정권에 대한 헛된 기대와 믿음보다는 싸워야 할 대상을 명확히 하고 투쟁을 준비하는 주체적 역량을 모을 때이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장래를 좌우할 틀과 토양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시작하고, 이윽고 진보적인 정치세력을 끈질기게 키우고 가꾸는 일로 귀결된다.
노동연대에 대하여 한 마디 해야겠다. 민주노총은 창립 이래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실현하고 제 민주세력과 연대를 강화하는 것을 강령으로 채택하였다. 그리고 각급 의결단위에서 지속적으로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창당을 위한 실천적 결의를 해왔다. 혹자는 민주노총 조합원이라고 해서 민주노동당을 무조건 지지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동의한다. 민주노총의 조합원이라 할지라도 개인적으로 노무현을 지지할 수도 있다. 대중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은 각기 다른 정치적 지향과 의식을 자유롭게 가질 수 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지지를 강요하기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설득해왔다.
그러나 노동연대의 공동대표들이라면 문제가 사뭇 다르다. 노동연대 공동대표의 기준을 전직 연맹위원장으로 삼았다는 그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그들은 한 때 쟁쟁했던 민주노총과 그 산하 연맹의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민주노총의 강령부터 각종 조직적 결정들을 주도하였고 조합원들에게 설파했다. 적어도 단위노조 위원장과 핵심간부들이 그들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선출했을 때에는, 조직의 방침에 따라 조합원 대중을 이끌고 조합원들보다 앞장서서 실천할 것을 믿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진보정당이 아니라 보수정당의 대선 후보를 지지하고 그 당선을 위하여 뛰고 있다. 노무현이 김대중과 다르지 않듯이, 민주노총을 떠나 보수 정당으로 투항하고 실패했던 이전의 민주노총 일부 간부들과 그들이 어떻게 다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노조 간부 출신이나 진보정당 혹은 혁신정당의 활동이력을 자랑하면서 정권의 노동통제정책의 정당성 나아가 독재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역사의 아픈 경험들을 곱씹으며, 노동연대가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를 배신하고, 궁극적으로 정치가 개인의 출세를 위한 도구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노동자 민중의 패배의식을 확산시키지 말기를 진심으로 충언한다.
이성우 님은 공공연맹 과기노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지부장 직무대리/민주노동당 대전시지부장(유성구지구당 위원장)직을 맡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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