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김에 놀아나는 UN

유엔이 결국 이라크 무기 사찰을 연기했다. 강력한 새로운 결의안에 따라 사찰하라는 미국의 강요에 굴복한 것.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유엔제재위원회는 지난 11년 간 이라크에 대해 강력한 경제제재를 가했다. 세계 2위의 석유 부국 이라크를 단숨에 알거지로 전락시킨 이 경제제재의 배후는 미국이다. 프랑스, 러시아 등 유엔안전보장이사회(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반대로 경제제재는 풀리지 않고 있다.

이라크 무기 사찰을 담당하는 유엔특별위원회(UNSCOM) 활동에도 미국의 입김은 작용한다.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미국 등 5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동의로 UNSCOM이 가동됐지만, UNSCOM이 특정 국가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수집한 정보를 특정 국가에만 제공해서는 안된다는 합의 조건은 미국 때문에 휴지조각이 됐다. 후세인 대통령의 거처를 포함해 민감한 군사 정보를 미국 정보기관과 서로 공유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반면 오랫동안 유엔 결의를 무시해온 이스라엘에 대해서 유엔은 한없이 관대하다. 이스라엘은 1970년대 유대인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한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비롯해 최근 팔레스타인에 대한 폭력 행위 중단 등 유엔의 요구를 대부분 일방적으로 무시했다. 그런데도 유엔이 침묵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뒤에 미국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도로 갈리 유엔사무총장이 쫓겨나고 중동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접근방식에 보다 우호적이고 고분고분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코피 아난이 선임된 것도 동일한 선상에 놓여 있다. 유엔이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가장 중요한 순간 미국의 일방적인 영향력 하에 종속되어 있으며, 그 결과 미국의 세계 전략의 서비스 센터처럼 기능한다는 회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장성희 / jsh@s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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