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형(경희대 한의대 학생)
아침 9시 강의시작, 저녁 6시 강의 끝. 의대, 한의대의 4, 5년차 학생들이 겪게 되는 하루의 일과이다. 하루 종일 보는 것은 책과 슬라이드,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120명의 사람들뿐이다. 아침 9시, 수업 시작이다. 교수님은 복사물을 나누어주고 한 30분 설명을 하시더니 슬라이드를 켠다. 교실의 창문을 꼭꼭 닫은 뒤, 말아두었던 검은 커튼을 옆으로 확 치면, 교실 밖의 따뜻한 공기와 햇살은 금방 차단되고 사방이 컴컴해진다. 그 속에서 슬라이드를 켜면 마치 동굴 속에서 신기루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음.. 검은 것은 글씨요, 하얀 것은 바탕이로구나... 어두운데다 교수님의 설명이 점차 귀에서 조그만 울림으로 줄어들게 되면 그날 수업 듣긴 틀린 거다. 그만 졸음으로 빠져들고 만다. 앗! 하고 순간 깨어보니 이미 수업은 끝났고, 주변은 환해졌다. 친구들은 여기 저기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거나, 매점으로 음료수를 사먹으러 나가고 있다. 나도 졸음을 깰 겸 교실 밖으로 나와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는다. 휴... 건물 밖으로 나와보니, 잔디에 햇살이 비쳐 파랗게 빛난다. 커피 한 잔을 홀짝이다, 조교가 교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부랴부랴 다시 강의실로 들어간다. 출석을 부른다. '김개똥? 네~~ 이말똥? 네~~' 혹 친한 친구가 안 나왔는지 살펴본 후, 빠진 친구들의 대출을 해 준다. 나도 그 친구들의 신세를 몇 번 진 적이 있어서, 수업을 빠졌지만 출석은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번 수업은 노교수님이 하신다. 경희의료원에서 30년 근무하신 분이다. 첫 수업 말씀으로 경희의료원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막~~ 불만을 쏟아놓는다. '아니, 청소아줌마도 300만원 넘게 받어. 근데 내 월급은 280만원이여. 경희의료원이 쓰러지려고 할 때마다 내가 붙들어 세운 몸이여. 파업이 웬말이여...' 온갖 인생역정을 다 토로하신다. 근데, 청소아줌마는 용역으로 비정규직화되어서 파업 안 하는디.... 교수님이 뭔가 착각(?)을 하셨나 보다. 좀 세태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강의실 안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알게 되는 지식은 대개 이런 류이다. 나중에 경희의료원 노동자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노교수님의 말을 전해주니까 너무 기가 막혀서 웃음도 안 나온단다. 겨우 최소한의 생존임금을 받는 용역 비정규직이 무슨 300만원이냐고. 허허. 그런 거구나.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강의를 마치고, 학교 뒤 분식집으로 달려가 후딱 점심을 먹은 뒤 강의, 또 강의... 하루가 지나고 시계를 보니 6시다. 오늘도 다 끝났구나... 빨리 학생생활을 벗어나야지. 실력있는 한의사가 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생활도 안정되게 하고... 대부분 이런 꿈을 꾸며 하루하루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한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스친다. '내가 공부한 것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우리 아버지는 노동자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받은 돈으로 등록금을 내고, 용돈, 책값, 자취방세 모두 아버지가 벌어서 내는 돈이니까, 공부한 것은 '내 것' 같기도 하다. 공부한 결과도 '내 것'이니까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별 문제가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근데, 다시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9시에서 6시까지 공부할 때, 내 또래의 노동자 친구들은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을 한다. 내가 지금 이렇게 공부하는 것은 그 노동자들의 밑받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입는 옷, 보는 책, 앉아있는 책상, 이 교실 건물, 내가 먹고 살아가는 모든 물건들이 사실은 노동자들이 만든 건데.' 그렇게 본다면, 내 공부는 '내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것'이 되는 거다. 노동자들이 일할 때, 나는 공부했고, 나는 그 노동의 결과물들을 향유하고 있으니까. 내 공부의 결과, 의료행위도 당연히 노동자들이 향유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 내가 공부해서 실력있는 한의사가 된다면, 의료행위를 통해 사적인 재산과 안정된 생활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돈이 없더라도 아픈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나의 '실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말하자면, 무상의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강의실의 대다수 친구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나도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있다구. 내가 한의사가 되어서 돈 많이 버는 것은 정당한 거야!' 용접 흄을 마시고, 그라인더 갈아가며 청춘을 보내는 내 또래 젊은 노동자들은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까. 궁금해진다... 밤 늦은 시간이다. 도서관으로 향하며, 똑같은 강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젖이 된다고 했다는 격언을 생각해본다. 내 공부도 '이윤'만을 위하는 '독'이 아니라, 모두가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젖'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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