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교육으로 세상열기(10)

7,80년대 민중교육운동과 노동자교육의 방향

홍은광(s-power21@hanmail.net)

과거를 평가하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80년대 민중교육운동에 대한 평가는 교육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는 동시에 미래의 상을 밝혀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민중교육운동은 노동야학, 노동자교육, 빈민교육, 선교운동, 교사운동 등의 형태로 진행되어 왔다. 90년대를 넘어 2000년대에 이른 지금 7,80년대 민중교육운동의 역사적 자양분과 한계는 여전히 지금의 노동운동, 교육운동, 시민운동의 구체적 현장에 서려 있을 것이다. 7,80년대 민중교육운동에서 고민되고 실천되었던 여러 논쟁의 지점과 실천의 형태들을 분석함으로써 현재의 노동자교육을 둘러싼 고민들을 풍부화 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표이다.

7,80년대 민중론의 전개와 한국 민중교육운동의 주요 흐름

민중교육운동의 전개에 있어서는 물론 60년대 이전에도 민중교육의 흐름이 있었지만, 민중성의 발견과 기존의 지배교육과 다른 원리에서 교육을 진행하고자 하였던 교육운동은 70년 이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70년대의 민중교육운동은 60년대의 교육활동에 대한 비판과 반성, 해방신학의 도입이라는 전반적인 상황에서 사회의 변화를 주요한 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활동은 여전히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단체 내의 지식인과 목회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전의 계몽적 교육운동을 넘어서 민중의 삶에서부터 시작하고, 지식인들이 민중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민중과 함께 배워야 한다는 것이 주요한 민중교육운동의 방향으로 설정되었다. 이 과정에는 프레이리의 교육사상과 실천이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당시 민중교육의 실천 현장은 기독교 선교운동, 노동야학과 노동운동, 농민선교운동, 도시빈민선교운동 등이었다.

80년대의 민중교육운동은 사회의 구조적 변혁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조직 유형도 종교단체의 외피를 벗고 자주적 대중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 내용도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인식, 사회과학적 안목의 성장을 위한 것으로 구성된다. 이 시기에는 프레이리의 의식화론이 노동운동, 농민운동, 학생운동, 교사운동 등의 여러 영역에서 중요한 지침의 역할을 하였으며, 맑스주의와 결합되어 하나의 비판적 운동주체 형성을 위한 교육 방법으로 채택되었다. 80년대 민중운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기존의 해방신학적 민중교육론과 과학적 사회주의의 민중교육론이 이론적, 실천적 갈등을 거쳐 점차 과학적 사회주의로 그 중심이 옮겨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90년대를 넘어 오면서 후기 맑스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유입되고, 신사회운동과 시민운동이 성장하면서 민중교육론과 실천은 또 한번의 전환을 겪게 된다. 변혁운동의 지향점으로서의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계층 분화, 제한적 민주주의의 실현 등은 새로운 행동 양식과 영역을 가진 '신사회 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운동과 다양한 문화운동의 성장의 조건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물론 계급적, 정치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노동 교육, 정치교육도 여전히 민중교육운동의 주요 영역으로 남아 있지만 그 체계화와 이론화는 미진한 상태이며, 시민교육 운동의 체제 내화와 비정치화에 대한 우려 또한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민중교육, 노동자 교육의 복원과제들

80년대 민중교육은 70년대 초·중반의 그것과는 달리 이른바 '민중성'을 찾고자 하는 시도와 지향이 제기되었다. 즉, 민중의 삶에서 그들의 모습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배울 수 있어야 하며, 그 속에서 진보의 가능성을 추출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당시 기독교 민중교육 연구소 소장이었던 허병섭 목사는 '민중 사실'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실제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도의 운동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90년대의 민중은 개별화된 학습자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민중적인 것'은 그저 '학습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강해진다. 민중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자던 초기의 생각은 민중이 가지고 있는 것에 머무르는 것으로 변질되어 왔다.
학습자로부터의 출발을 학습자에서의 머무름으로 쉽게 해석하고자 하는 유혹으로 인하여 민중교육의 정신은 개별화된 욕구 충족으로 해체되고 있다. 이는 노동자 교육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다. '민중성, 노동자성'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다. 개별화된 주체가 아닌 사회적 구조 속에 있으면서도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동시에 사회적 관계 속에 놓여 있으면서도 그 관계를 해방적 관계로 바꾸어 나갈 수 있는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이 민중성일 것이다. 그곳에서 시작하되, 그곳에서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 끊임없는 변화를 추동하는 민중 교육, 노동자 교육의 복원이 필요하다.
언제부터인가 '욕망의 정치학'이라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금지당해왔던 욕망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운동과 이론의 실제에서도 금지당해 왔던 욕망을 분출하는 것이 필요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한편에는 욕망의 해방성을 방패삼아 욕망분출을 절대화하고, 지배의 욕망과 순응의 욕망과, 서로 교통하지 않는 개별화된 욕망의 배설을 정당화라는 흐름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욕망은 교육의 영역에서는 학습자의 욕구라는 형식으로 애매하게 표현된다. 그리하여 학습자의 욕구가 다양성과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절대화된다. 중요한 것은 절대화된 다양한 욕구가 아니라 교육자의 의도와 학습자의 욕구의 상호 작용을 통한 변증법적 변화의 과정일 것이다. 교육자의 의도를 절대화하는 것만큼 학습자의 욕구를 절대화하는 것도 위험하다. 민중교육은 어색한 절충이 아니라 변증법적인 과정을 통해 서로가 변화해 나가는 과정을 그 핵심으로 한다.

2000년대 노동자 교육의 방향을 찾아가자

노동자 교육 또한 7,80년대 민중교육운동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90년대 노동자 교육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조합 교육과 사회운동단체를 중심으로 한 노동자 교육의 형태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 교육은 이제까지 임단투를 준비하는 이른바 '방침교육'을 중심으로 비정기적, 비체계적으로 이루어져왔다. 교육 사업은 다른 사업에 비하여 주변부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교육역량은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사회운동단체의 노동자 교육 또한 그다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점점 제도화, 상품화되는 사회교육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교육의 방향을 다른 여타의 교육상품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이른바 '수요자 중심 교육'으로 그 방향을 선회하고자 하는 유혹도 강하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외피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교육의 본질적 지향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
노동운동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대안적 사회를 향한 운동이며, 이는 체제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의식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일 것이다. 이른바 '노동자 의식'을 갖는 것이 새로운 대안적 사회 형성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노동자 의식은 맑스 원전의 사회과학적 개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일상적 삶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점을 출발로 하여 주체의 확장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허락된 욕망뿐 아니라 금지된 욕망까지 꿈꿀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학습자를 존중한다는 것은 학습자의 겸험의 긍정적 가능성을 최대로 확대하는 것이지, 학습자의 현재 상황에서 지체하는, 학습자에게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하고 그저 재미있는 교육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어야 한다. 노동자 교육에서 '재미'란 순간 웃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 내에서 저항의 근거와 가능성을 밝혀 나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뿌듯함'이다.
노동자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노동자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노동자의 일상적 삶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야 한다. 80년대에는 노동자 문집, 노동 일기 등의 형태로 노동자의 일상을 제한적이나마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노동대중의 일상에 대한 이해의 노력을 요즘에는 얼마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스럽다. 광범위한 질적, 양적 조사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교육 내용을 선정해야 할 것이다. 교육 내용을 학문적 구분이나 전통적 교육내용 구분으로 하는 구태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개인의 생애 경험을 공유하며 소통함으로써 개인의 문제와 사회적 모순과의 관련성을 알아나갈 수 있는 방식의 학습 내용이 필요하다. 한 사람 대 나머지 모두의 관계가 아니라 모두와 모두의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교육 방식과 교육 내용이 필요하다. 작지만 소중한 실천과 연계된, 그리고 그 실천이 다시 반추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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