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경(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문화부장)
우리나라 2만3천여 종류의 직업속에 무인 경비업체란 것이 있다. 가입된 고객의 안전과 시설물 보호를 책임지는 일이다. 때문에 일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특수부대원 출신이다. 캡스 노동자의 경우 해병대가 40%, 공수부대가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특이하게는 북파공작원도 있다. IMF 직후인 99년 캡스자본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인 타이코에 인수된 뒤 월 300시간의 장시간 노동, 연장수당 미지급, 복지정책 부재, 불공정한 인사, 도난 교통사고 미수금 개인변제, 불합리한 인센티브제도 운영 등으로 노동자들은 착취해왔다.
파업의 책임은 전적으로 회사에 있다
노동자들의 불만은 곧 노동조합 결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사측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교섭을 경총에 위임하면서 교섭을 거부했다. 노조는 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6월3일~8일간 캡스 노동자들의 파업이 이루어졌다. 파업기간 동안 전국의 1200명의 노동자들은 서울 삼성동 본사 앞에서 노숙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교섭을 거부했던 사측을 교섭에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6월8일 노사는 "6월15일까지 단체협약 체결" "쟁의행위 가담자 불이익 처우 금지" 등 5개 핵심 쟁점 안을 합의했다. 노조는 6월9일 파업을 풀고 업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사측은 기만적인 개악안을 들이밀며 조인식을 거부했고,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 중 부당해고 5명을 포함해 징계와 전환배치 등 노조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임원들이 전국을 돌면서 조합원 탈퇴를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이 결과 파업전 1780명이던 조합원이 순식간에 380여명으로 줄었다. 잠정합의안을 파기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노골적인 노조파괴를 자행한 것이다.
7월3일 캡스노조는 서울지역 산하 조합원들로 즉각 재파업에 돌입했다. 152명의 파업대오는 1차 파업 때 단체협약 체결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수세적으로 파업을 끝낸 것이 조직력의 약화를 초래한 것으로 평가하면서 2차 파업을 결의했다. 그래서 쟁의대책위원회에서는 2차 파업의 목표를 '단체협약 완전체결'과 '부당해고자 원직복직'으로 잡고 끝까지 투쟁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조합원들은 81일간의 재파업기간 내내 흐트러짐 없이 파업을 사수했다. 그러나 사측의 대응도 만만치는 않았다. "고객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파업을 한다" "경쟁업체가 파업을 이용해 특수를 누리고 있다" "캡스파업은 경찰이 파업하는 것과 똑같다"라는 공세로 끊임없이 파업의 대의를 훼손하고 대오를 분열시키려했다.
노동청 점거로 투쟁의 돌파구를
파업이 장기화되자 실질적인 교섭을 끌어내기 위해 쟁대위는 추석 전에 서울노동지방청을 점거했다. 조합원들이 특수부대원 출신들이라 점거는 순식간에 이뤄졌으며 노동청 직원들은 속수무책으로 기습적인 점거를 지켜봐야만 했다. 점거를 통해 지도부는 '사측의 고소고발 철회'와 노동청장이 직접 사업장을 방문해 노사간 실질적인 교섭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요구했다. 결국 노동청 점거이후 노사간 실질 교섭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계기로 파업의 돌파구를 마련하게 되었다.
추석날 새벽 노사는 파업 88일만에 임 단협을 타결했다. 합의사항으로는 임금 9%인상과 단체협약을 완전체결했으며 부당 해고자 6명 중 5명을 원직복직 시키기로 했다. 파업중 임금과 관련해선 사측이 근기법을 위반해 체불한 수당을 해당 직원 전원에게 3년 치 소급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파업참가자에게는 격려금 30만원씩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러나 단협내용 중 단협 비정규직까지 적용 노조창립일 유급휴가 경영 인사 관련 자료 노조에 공개 생리휴가 미사용 수당지급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시 노조동의 등 1차파업시 잠정합의했던 사항은 삭제되었다.
보기에도 시원한 노·동·탄·압 격파
캡스 노조는 파업을 갈무리하면서 조직률의 하락과 이로 인해 단체협약 내용이 후퇴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안타까워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집행부가 '너무 조급하게 타결한 것 아니냐'는 것에 대해 불만도 있었다. 그러나 파업이 장기화 될수록 요구안은 낮아지고 무엇보다 조직사수를 위해 끝내야 한다는 의견들이 분분했다. 체결된 단협안이 보여주듯 파업은 완전한 승리도, 완전한 패배도 아니었다. 그리고 장기파업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조직이냐, 투쟁의 지속이냐'에 대한 논란들도 정리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들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파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트였다." "사측의 인사권을 허물고 동지애와 투쟁으로 해고자복직을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일상의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하자
캡스는 파업문화와 전술측면에서 몇 가지 독특한 모습을 보였다. 파업기간 내내 맹활약한 율동패 "불사조"가 있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창작열로 수많은 율동을 소화해 냈다. 기존의 율동과는 다른 선이 굵은 동작과 무술이 돋보였다. 때론 익살맞고 앙증맞은 율동으로 캡스뿐만 아니라 많은 장기파업장 동지들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노 동 탄 압 이라고 쓰여진 송판을 격파할 때는 지켜보던 동지들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또한 노동자들이 맨날 터지기만 하는 투쟁현장에서 경찰과 깡패들이 캡스동지들에게 맞아 쫓겨나거나, 심지어 무릎을 꿇고 싹싹 비는 모습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추석 전날에는 캡스본사 옥상 점거투쟁에서 '레펠 하강'을 선보였다. 해병대 출신 조합원들이 옥상에서 전단지를 뿌리고 구호를 외치며 외줄에 매달려 지상으로 '하강'하기도 했다.
캡스는 동종업계 최초로 노조를 결성했다. 1971년 회사 창립이래 10여 차례 노조결성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사측의 탄압에 실패하다 지금의 노조가 업계 최초의 노조결성과 파업투쟁으로 임 단협을 체결하게 된 것이다. 이는 동종업계의 추가 노조결성과 근로조건 개선 요구 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실제로 서비스연맹과 캡스노조에 노조결성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국내 경비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젊음과 건강을 팔고 있다. (주)세콤과 함께 국내 보안경비업체의 70%정도를 점유하고 있는 캡스의 파업은 "시민 안전을 담보로 파업을 벌인다"는 자본의 여론공세에 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성과가 있다.
캡스는 이제 막 민주노조를 힘들게 건설했다. 그러나 이를 사수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힘들 것이다. 우선 조직력복구가 시급하다. 서울을 제외한 지방은 현재 조직률이 10%를 밑돌 정도로 사측의 현장탄압이 거세다. 현장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152명 파업대오 모두가 간부이자 현장 활동가가 돼야 한다. 노사간 전선이 그어진 전쟁터에서 이제는 현장으로 돌아가 현장의 투쟁을 끊임없이 조직해야 한다. 그리고 파업의 후유증을 최소화해야 한다. 파업에 나오지 않은 조합원들과 조합 탈퇴자들과의 갈등을 첨예화시키는 것보다는 이들을 포용하고 조직해야 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파업에 대해 심정적 동의와 참여치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일부 조합에 무조건적인 반대자와, 회사도 조합도 싫다는 양비론자, 개인주의적 사고로 투쟁의 성과를 폄하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조직대상이요 동지들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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