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가 만난 사람]진보진영 예비경선때 조합원 자유투표 가능

김형탁 민주노총 정치위원장

이광호 madger@kdlpnews.org
그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는 사실과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을 맡은 사실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82년도에 입학해서 10년이 지난 91년에 졸업한 것은 ‘정치학’과 약간의 관련이 있다.

미국 박사들이 중심이 된 교수들의 강의 내용은 60년대 이후 미국을 풍미했던 ‘행태주의’ 정치학이 주류를 이뤘다. 정치학 연구에 ‘과학적 연구방법’을 중시한다는 행태주의는 현실 변화와 가치 문제에 무능함을 보여주었다.

과거 경험의 계량적 분석에 치중하는 연구 방법론은 정치학을 ‘현상 유지’에 기여하는 학문으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80년대 초중반의 한국 정치 현상은 유지 대상이 아니라 ‘타도’ 대상이 아니었던가.

“강의 내용이 맘에 들지 않아 교수님들과 싸움도 종종 했습니다.” 정치에도 정치학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그는 지역 현장 활동을 하느라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김형탁(40)은 졸업한 지 10년만에 이제 현실 정치에 관심을 쏟는 것을 주임무로 하는 정치위원장이 됐다. 8월 27일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부위원장으로 선출된 지 한달 남짓. 첫 번째 정치위원회를 주재한 다음날(10월 2일) 그를 만났다.


노동자 계급투표 추동해야


“올해 대선이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97년 국승 21은 페이퍼 정당이었다. 당시 민주노총은 국승 21을 실질적으로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당이 창당 이후 대중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으로 이번 대선에서는 당과 노조가 독자성을 유지한 채 어떤 방식의 결합이나 연대를 해나갈 것인가 하는 모범 사례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동안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노조가 당에 사람하고 돈만 주는 지원부대 역할에 그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어왔다.”

아울러 “이번 대선을 통해 2004년 총선에 대비하는 힘을 결집시켜내는 공간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지난 6.13 선거에서 얻은 8% 대의 득표는 의미가 크다. 당락 여부와 상관없이 노동자들이 계급투표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민주노총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대선 방침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논의된 내용이 있으면 소개해달라.”

“아직 구체적 논의는 없다. 11일에 열리는 중앙위에 대선 기본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다. 핵심 내용은 인력과 재정 지원에 관한 것이 될 것으로 본다. 조합원 1인당 1천원 모금 문제가 논의될 것 같고 민주노총의 정치 실천단을 조직해서 대중적 차원의 실천을 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걱정되는 대목도 있다. “이번 연말을 전후해서 주요 산별 연맹들의 위원장 선거가 많다.” 금속, 공공, 사무, 화학, 서울본부 등. 이 때문에 민주노총의 주요 가입 조직인 이들이 대선에 총력을 기울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래서 그는 “민주노총 지역본부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주요 조직에서 당의 선대본부에 실질적으로 결합해서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 필요한데 중앙위에서 그런 결정이 있을 것이라고 전해준다.

<진보정치>는 지난 주 유재섭 한국노총 정치담당 부위원장을 만났다.
“한국노총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양 조직의 통합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했는데.”

“대중 조직의 통합 문제는 별도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다. 한국노총 내 개혁특위 논의의 연장 속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한국노총 내 개혁특위에서는 이용득 금융산업노조 위원장을 중심으로 양대 노총의 통합을 위한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의 비판적 또는 회의적 시각도 있긴 하지만.


한국노총과 대화 희망


김형탁 정치위원장이 첫 번째 주재한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 가운데 하나가 한국노총 신당창당에 대한 민주노총의 입장 발표였다. ‘입장’에서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의 최근 정치세력화 움직임은 고무적인 변화’라고 평가하면서 ‘별도의 창당이 아닌 민주노동당 참여’와 ‘협상용 정당이 아닌 밑으로부터의 동의에 의한 창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동자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빠른 시일 안에 함께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의 창당 작업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넌 것 아닌가.

“한국노총에서는 민주노동당을 민주노총당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개인적으로는 한국노총이 당을 만들지 말고 민주노동당과 함께 하면 된다고 본다. 그렇지만 독자 창당이 크게 하나가 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는데 그런 생각도 존중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한국노총 창당 방침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은 발목을 잡겠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같은 논의가 한국노총의 창당 작업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치 사업에 대해 한국노총과 대화를 할 계획은 없나.”
“현재로서는 없다. 필요하다면 만나서 얘기를 나눌 것이다. 그쪽의 얘기도 들어보고 우리 얘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는 한국노총에 소속돼 있는 민주노동당원들이 신당이 창당될 경우 민주노동당 당적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곤혹스런 상황에 대해서도 걱정을 했다.

“민주노동당은 한국노총과 함께 가기를 바라고 있고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다.” 한국노총의 다수 견해도 같은 입장이니까 별 어려움이 없을 것도 같은데. 하지만 누가 알 수 있나. 정치는 생물이라는데. 그리고 ‘노무현과의 연대’ 가능성을 아예 닫아놓은 것도 아니고.

“한국노총의 창당이 통합 과정으로 가지 못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한국노총의 창당 과정에 개입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면 안 된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고 앞으로 하나로 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게 중요하다.”

“민주노동당 지지를 공식화한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에 이견이 있는 것 같은데.”
“대의원대회에서 그런 방침이 결정된 이후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사회당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그 당을 지지하는 조합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중 조직으로서 민주노총이 어떻게 같이 가야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방침을 바꾸자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범추 논의 과정에서 이뤄진 결정의 정신을 보면 진보진영 후보가 경선을 하게 될 때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무조건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하라는 것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자유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노동자의힘에서 얘기하는 정치 방침의 변경은 현실적으로도 어렵다. 진보진영이 더 넓게 단결하려는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는 요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보단일화 '강력 희망'


최근 전직 민주노총 주요 간부들이 중심이 돼 노무현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노동연대’가 출범됐다.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솔직히 이해할 수 없다. 선거 때마다 나타난 비판적 지지가 앞으로도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어떻게 보면 이런 현상은 민주노동당이 개혁, 진보세력 전체의 힘을 모아낼 수 있는 기반이 부족하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당 밖에서 당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들어와서 바꿔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당이든 민주노총이든 흔들릴 필요도 없고 그렇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적 연분이 있는 소수가 움직일 수는 있지만 대세에는 영향을 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선거와 투쟁. 누구나 강조하지만 구체적 현실에서 이것을 어떻게 연동시킬지에 대해서는 고민들이 많다.

“올해 대선에서 진보진영 후보가 대중투쟁과 함께 하는 것은 ‘임무’다. 주 5일 근무를 둘러싼 양대 노총의 공동 투쟁, 공무원 노동 3권 보장 투쟁, 농민과 빈민 투쟁이 11월로 집중돼있다. 집회 때 대표가 연설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 투쟁이 득표로 연결되고 당의 조직 강화로 귀결돼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당의 선거대책본부를 구성할 때 투쟁을 담당할 부서를 “여러 위원회 중의 하나가 아니라 전체 투쟁을 아우르는 비중 있는 부서로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진영의 후보 단일화는 우리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반 대중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 민주노총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은데.”
“대선에서 진보 진영 후보가 복수인 적은 없었다. 솔직히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단일화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그러나 단일화에 대한 ‘강력한 희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중에겐 단결하라 해놓고 후보 단일화를 못 해낸다면 지도부로 자임하는 사람들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쉽지는 않겠지만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

마무리 한마디. “대선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정치위원장을 맡아서 어깨가 무겁다. 당원이든 조합원이든 세상을 바꾸어내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 계기를 맞아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함께 노력해 나갔으면 좋겠다.”
[ 106호] 10.7 ~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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