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인가 ‘찌라시’인가 증시 공시사항 비밀인 양 폭로...한겨레 역편향도 문제

4억달러 대북 지원 파문과 언론보도

조준상/편집위원  cjsang21@hanmail.net
산업은행이 2000년 6월7일 현대상선에 지원한 당좌대월(기업에 대한 마이너스 통장) 4천억원이 북한에 흘러들었다고 한나라당이 제기한 의혹이 눈덩이처럼 부풀려지고 있다. 무엇보다 정부와 금융감독원의 계좌추적 거부, 현대상선과 산업은행의 자금거래 내역 공개 거부로 인해서다.

그렇다고 이 의혹에 접근하는 언론의 수준 이하의 파당적 보도태도가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먼저 <조선일보>다. 이 신문은 9월27일치 1면 머릿기사에서 ‘현대상선 산은 대출금 4억달러 “현대아산에 유입” 확인’이란 제목을 달았다.

현대아산이 대북 비밀자금 지원 창구였다고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하루 뒤인 28일치에서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의 국정원 창구설을 1면 머릿기사에 보도했다.

<중앙일보>의 27일치 보도 내용은 더욱 가관이다. 현대상선 등 8개 계열사들이 6·13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 5월 말 현대아산에 1천4백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제목은 ‘자금난 현대 8개사 남북 정상회담 직전 1천4백억원 현대아산에 지원, 지원 직후 산은 현대상선에 4천억 긴급대출, 같은 날 상선은 현대건설에 1천억원 지원 결의’라고 달았다. 현대 8개 계열사의 현대아산 지원이 마치 새롭게 밝혀진 사실인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조선일보>도 마찬가지다. 27일치 머릿기사에는 “현대상선은 당시 부도위기에 몰리면서도 2000년 5월26일 현대아산에 증자 참여를 통해 5백60억원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비밀이 폭로된 듯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현대 8개 계열사의 현대아산 증자 참여는 당시 증권거래소에 공시됐던 사안이다. 현대 8개 계열사는 2000년 5월25일 지분비율에 따라 현대아산에 1천3백57억원을 출자했다고 공시했고, 이때에도 이를 둘러싼 논란이 컸던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걸 마치 새로운 사실인 것처럼 “밝혀졌다” “드러났다”로 표현하는 것은 ‘무지의 산물’이거나, ‘파당적 보도태도’의 산물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한겨레>는 역편향을 보인다. 27일치 이 신문은 “4억달러 기업운영에 썼다”라는 제목으로 산은 대출금 4천9백억원을 운영자금으로 사용했다는 현대상선의 해명 내용을 1면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현대상선의 해명 내용을 그대로 믿는다는 인상을 준다. 이런 보도태도의 위험성은 며칠 뒤 현대상선 쪽에서 산은 대출금의 일부가 계열사 지원에 사용됐을 수 있다고 인정한 데서 그대로 드러났다.

실제로 현대상선은 2000년 6월13일 현대건설 기업어음 4백억원 어치를 매입했고, 이는 증권거래소에 공시가 된 사실이다. 이것만 봐도 산은 대출금이 현대상선 운영자금으로만 사용됐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안의 중요성이라는 기준에 비춰, 얼마만큼의 비중으로 보도했느냐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한겨레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일관된 모습을 보인다. 비밀자금 지원 의혹설이 나온 것은 9월25일이었고, 조선과 중앙은 각각 1면 머릿기사와 1면 3단기사로 이를 보도했다. 반면 한겨레는 2면 2단 기사로 다뤘다가, 다음날 현대상선의 해명기사를 1면 머릿기사로 보도한 것이다.

대북 비밀자금 지원설의 실체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현대상선이 2000년 6월7일 지원받은 산은 대출금 4천억원 가운데 3천억원을 회계장부에 누락시켰다는 것 △현대상선은 적어도 산은 대출금의 일부를 계열사 지원에 사용했다는 것 △당시 현대상선 대표이사인 김충식씨는 2000년 6월7일 산은 대출약정서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다.

지원설의 실체는 지난 9월25일 국감에서 엄낙용 당시 산업은행 총재가 “(당시) 김충식 사장에게서 ‘이 돈(산은 대출금 4천억원)은 현대상선이 쓴 게 아니므로 갚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한 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실체는 금감원이 계좌추적을 통해 밝히면 되는 일이다.
[ 106호] 10.7 ~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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