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해방과 노동해방은 같은 것입니다

오픈에스이 노조 김만수 동지를 만나다

글.사진 황정일(노동자의 힘 선전국장)

김만수 동지를 만나기로 한 장소는 국립중앙도서관 1층 로비였다. 36세, 최초의 장애인 주도의 노조 오픈에스이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인 김만수 동지는 다른 이가 말하는 입 모양을 보고 큰 무리 없이 대화할 수 있는 경증 청각장애인이다. 이윽고 거대한 도서관의 1층 회전문을 지나 주선자가 김만수 동지를 알아보고 손짓을 했고 나도 동지의 손을 잡았다.

"오픈에스이 조합원들은 한 곳에 모여있지 않습니다. 일이 각종 도서관과 최근 서울대 규장각 등 정부와 대학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자료입력) 작업이라 조합원들은 여러군데 작업장으로 출근을 하죠. 그래서 직무대행인 제가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조합원들에게 찾아가 대화하고 있습니다." 작업공간인 도서관 옆의 한 건물 입구 계단 옆에 길다랗게 휠체어가 올라올 수 있는 다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사무실 안은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입력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루종일 컴퓨터 작업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근골격계 질환이나 안구 건조증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이라는 회사측은 최근 오픈에스이 노동자 10명 중 6명이 근골격계 질환이 의심되고 8%의 노동자가 당장 치료를 요한다는 진단 판정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픈에스이가 지부로 속해 있는 민주노총 사무금융노련 산하 서울경인지역사무서비스노동조합(서사노)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지하철을 탔다. 지체장애자들이 엘리베이터 설치 등 장애인 이동대책 수립(장애인 이동권)이 필요하듯이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들에게도 지하철 일부 노선에서 시도하는 다음 내릴 역의 전광판 등 문자정보의 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른바 '사회적 접근권'이다. 휠체어가 오르내릴 수 있는 저상버스에도 다음 정거장을 소개하는 액정판이 있다고 한다.

"저는 7살 때 중이염을 앓고 난 후 청각을 서서히 잃었습니다. 10살 전후쯤 그 당시 국민학교에 수학여행이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준비물을 얘기하는 것을 못 알아듣고 있다가 여행바로 직전에 알게 되었죠. 저는 그때 '나는 내가 누가 배려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교는 대구의 영화학교라는 특수학교로 다녔다. 그때 '여기 친구들은 비장애인 보다 내것 네것을 구별하고 동료의식이 없구나' 하고 느꼈다. "대부분 유치원 때부터 장애인끼리만 고립되어서 교육을 받다보니 자기의식세계에만 파묻혀 지내고 그래서 장애인들은 사회적응을 잘 못하게 됩니다. 정보의 자유로운 접근권과 사회 문화적 폭을 넓히지 못하고 있는 교육방식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88년부터 98년까지 10년 동안 대구에서 금속기계노동자로 일했다.

청각장애인들은 정보의 교환을 위해 교회 등에서 1주일에 한번씩 모인다고 한다. 마땅한 통신수단도 없고 직장동료들과 소통도 안되고 외롭게 일하다 일요일 한번의 만남은 아주 중요했단다. "회사에서는 이것을 이해 못했죠. 잔업특근을 다들 하는데 왜 너만 가냐는 거예요." 결국 이 갈등 때문에 회사를 옮겼다. "아임에프 직전에는 동협정밀이라는 세 번째 회사 수습기간이었는데 파업이 있었고 저도 주변사람이 권유해서 90일간의 파업에 참여했죠. 그때 민주노총 대구본부 등에서 지지연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서사노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김만수 동지가 장애인 운동에 눈을 뜨게 된 것은 늦깎이로 들어간 대구미래대학 안에 있던 경북농아인협회 경산청도지부일을 하게 되면서다. "지금 농아인협회를 보면 정부에게 얼마를 많이 얻느냐에 관심이 쏠려 있죠. 그렇게 정부에게 의존하는 복지정책으로는 이룰 것이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산청도지부 일에 한계를 느끼던 차에 오픈에스이 구직광고를 보고 작년 7월에 입사했다. 장애인이 대표이사고 일하는 장애인이 많은 것을 보고 좀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에 입사했다. 하지만 회사는 처음에 약속했던 3개월 수습후에 1년 계약하고 나면 정규직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단기계약기간도 1년에서 6개월로 바꾸고 월급도 줄이겠다고 했다.

현재 오픈에스이 노조 조합원은 장애인으로만 22명이다. "비장애인에도 노조가입을 권유했지만 그들은 대부분 3달 계약이기에 가입하지 않습니다. 물론 나는 장애인이 아닌데 왜 가입하느냐는 선입견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측의 태도 변화에 대항해 서명전을 조직했다. 이것이 작년 말 서사노 가입과 지부 건설로 이어졌다. 회사측은 이에 대항해 사회적 기업이니 이전매개적 기업(다른 회사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회사)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처음에는 반박을 못했죠. 그러다가 알게 됐어요. 회사가 주장하는 사회적 기업의 주체는 노동자인데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논리를 부정하는 사회적 기업이라면 그건 문제가 있습니다."
이날은 단협의 찬반투표가 진행된 날이다. "단협할 때 회사측에서는 너희는 노동자이기 이전에 장애인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장애인으로만 요구하면 시혜 동정으로만 접근하는 정부의 논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장애인에게도 중요한 노동의 권리와 의식이 희미해질 수 있고 결국 자립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장애인은 지원 대상이 아닙니다. 저는 모든 인간은 노동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되는 장애인 인간성의 완성은 노동해방입니다. 최종적으로 노동해방이 장애해방이 되어야 합니다. 회사측의 말이 거꾸로 저의 생각에 중요한 코치를 해 준 셈이죠. 장애해방과 노동해방은 같은 것입니다."
오픈에스이를 시초로 전국장애인노조를 만들고 싶다는 김만수 동지. "장애인들이 장애해방, 진정한 노동해방을 이루고 짐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이론적 체계와 길을 잡아주십시오." 노동자의 힘에게 바라는 그의 주문이다.
태그

오픈에스이노조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전주희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