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녀 응원단'과 '인공기' 사이에서

부산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우리 사회의 시선은 한 곳에 모아졌다. 그리고 그 뜨거운 관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65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북한 응원단이었다. 이들은 한반도기, 인공기, 태극기가 어우러진 남북한 공동응원을 통해 우리에게 낯설음과 신기함을 넘어 가슴 뭉클함을 선물했다.

탁구, 유도, 축구, 마라톤.... 남북한 선수들의 땀방울이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쉬움을 남길 때마다, 그 주위를 둘러 싼 남북응원단의 함성과 눈물은 하나의 거대한 파도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문화적 차이, 정치적 이해, 역사적 갈등, 이데올로기적 경계를 가로질러 민족적 동질감과 감수성을 다시금 경험케 했다.


물론 "대규모 북한 응원단의 아시안 게임 참가"는 스포츠를 통한 일시적인 민족 동질감 회복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특히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는 남북문화교류를 통해 사람들은 서서히 "그때 우리는 하나였고,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감상적인 멘트나 "눈물의 이별 씬"으로 모든 것을 대체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이미 한국 사회의 많은 주체들은 일간신문의 정치면이 매일 같이 강요해 온 너무나 식상하고 시대착오적인 남북관계를 넘어, 좀더 일상적이고 적극적인 남북문화교류를 경험하고 꿈꾸고 있다.

아직도 두터운 군사주의와 레드 콤플렉스가 우리 사회의 주된 이데올로기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미 수많은 젊은이들의 관심사가 "김정일"에서 "리유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번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남북문화교류를 둘러싸고 보여준 우리 사회의 태도는 매우 역설적이다 못해 흥미롭기까지 하다. 특히 대규모 북한응원단, "리유경"으로 대변되는 소위 "북녀열풍 현상"은 남북한문화교류의 현주소에 대한 하나의 상징임에 분명하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모의 젊은 여성들로 구성된 북한 응원단은 각 경기장은 물론이고 인터넷에서도 최대의 스타로 부상하였다. 단적으로 다음카페에 만들어진 "★북한응원단★리유경☆카페☆"(cafe.daum.net/leeykjjang)는 개설 된지 불과 10여 일만에 회원수가 1만 명을 넘어섰으며, 응원단 리더였던 리유경씨의 경우 "북한 응원단 치어리더 리유경 공식 팬클럽"(cafe.daum.net/yukyunglove)을 비롯해 수많은 개인 팬클럽 카페와 홈페이지가 인터넷에 등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꽃미녀 응원단"으로 불리기 시작한 북한응원단의 인기는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보도되기 시작하였으며, 나아가 각종 언론과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이에 대한 논쟁마저 뜨겁게 진행되었다. "북한여성 Vs 남한여성"이라는 시시콜콜한 언쟁에서부터, 북한응원단에 대한 황색저널리즘의 상업주의 비판, 그리고 "북녀열풍"과 관련된 남북한 문화의 가부장성에 대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이번 북한응원단의 스타덤 현상은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에서 "북한문화가 얼마나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가"(혹은 북한문화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은가)와 "북한문화가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먼저 정치권과 사회 지도층(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의 현실 인식과 우려의 수준과는 달리, 우리 사회에서 북한문화는 이미 호기심을 넘어 적극적인 개입과 향유의 대상이다. 그리고 이번 아시안게임 기간에 발생한 "인공기 논란"과 "북녀열풍 현상"은 이러한 차이를 잘 설명해 준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순수한 스포츠 행사가 정치 선동·선전의 장으로 악용될 수 있다" 또는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인 북한에 대한 찬양·고무는 중대한 범죄"라는 해묵은 논리와 이에 근거하여 (버젓이 경기장과 각종 미디어에 인공기가 쉴새없이 등장함에도 개인은 절대로 인공기를 사용할 수 없다며) 급조된 인공기 사용 원칙은 "북녀열풍" 앞에서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인공기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상징에 정치권과 기성세대가 갇혀있는 동안, 이미 수많은 젊은이들은 그 인공기의 인민이자 그 인공기를 하루 종일 흔들어 댄 여성들의 이미지를 인터넷 곳곳에서 재현하며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은 팬클럽 사이트라는 "이적단체"(?)를 구성하고 "유경사랑", "미녀유경"이라는 고무찬양까지 버젓하게 자행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에서 북한 문화를 대하는 개개인의 문화적 취향과 문화교류의 열망은 이미 보수적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기준 및 검열을 앞지른 지 오래이다.


또한 동시에 북녀열풍 현상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화적 모순들이 북한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즉 이제 한국 사회에서 북한문화는 하나의 문화대상이다. 뿐만 아니라 남북문화교류를 통해 더욱 더 빠르게 가속화되고 있다.

그리고 북한문화가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문화대상이 되었을 때, 이 속에는 자본주의의 상품화, 가부장제의 성적 대상화, 문화행위를 통한 구별짓기 등도 동시에 진행된다. 북한응원단이 북한에서 건너 온 미녀집단으로 둔갑한 이유, 북한 사람의 일상과 삶의 문화보다 미모의 북한 여성을 먼저 접해야하는 이유, 북녀열풍 현상 속에 성적 대상화, 스타덤 문화 등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빈번해진 남북문화교류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경험하기보다는, 왜곡된 문화구조의 또 다른 투영과정을 통해 "북한응원단 리더 리유경"과 "꽃봉오리 예술단 조명애"라는 새로운 연예인(?) 만들기와 스타 프로젝트에 집착하게 된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북한문화에 대한 일방적인 상품화 과정이 아니라 남북문화교류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모색이다. 특히 남북 간 문화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각각의 문화 정체성과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동질성 복원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이해에 근거한 이벤트 중심의 교류행사가 아니라 안정적이고 구체적인 문화교류 과정, 프로그램 개발, 전문가 양성 및 인력 교류 등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최근 경험한 북녀열풍 현상은 남북문화교류의 활성화에 대한 가능성인 동시에, 북한문화의 대상화와 상품화에 대한 진지한 경고이다. 특히 남북문화교류가 활성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문화에 대한 올바른 접근과 이해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북한 응원단의 미모를 칭찬하고 성적 대상화하기에 앞서, 성급하게 북한문화를 규정하기에 앞서 한국 내 기지촌 지역의 미군, 건설 현장의 동남아시아 노동자, 관광나이트의 러시아 여성, 공단지역의 수많은 조선족 등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다시 한번 성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대방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는 문화교류란 교역 혹은 지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원재 / 문화연대 정책실장 redgang@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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