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퇴직금이 주식시장 불쏘시개인가?

기업연금제의 문제점 퇴직보험 강화 추진해야

주진우/민주노총 정책국장
노동자 퇴직금으로 폭락하는 주식시장 떠받치기. 정부가 지난 10월 11일 경제정책조정회의를 통해 추진 방안을 밝힌 기업연금제를 한마디로 말하면 그렇다.

정부안은 기업별 기업연금 도입으로 서서히 퇴직금제 대체, 기업연금 형태 가운데 확정급부형과 확정갹출형 모두 도입, 기업연금 기여금에 대한 세제 혜택으로 제도 확대 유도 등을 담고 있다. 10월중 노사정위원회 논의, 11월중 입법안 마련, 내년 2월 국회제출 등의 일정으로 이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기업연금제는 노동자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적립금을 주식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투자신탁회사 등에 운용하도록 해서 퇴직후 적립된 금액을 연금으로 지급하는 제도이다.

이중 확정급부형(DB형)은 노동자가 퇴직 뒤 받을 연금액을 미리 정해놓는 것으로 회사가 기금의 운용 책임을 지는 제도이고, 확정갹출형(DC형)은 월급의 일정 비율을 갹출(기여)금으로 정하고 기금의 운용 결과에 따라 연금액이 달라지는 제도로 개인이 기금 운용 결과에 책임을 지는 제도이다.

기업연금제 도입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노동자들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적립금을 주식시장에 투입하겠다는 발상이다. 노동자 노후소득보장책은 이름뿐이다. 그간 정부는 주식시장이 불안할 때마다 기업연금제 도입을 언급해왔다.

이번 방안도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상황에서 서둘러 결정됐다. 특히 벤처열풍의 거품이 걷히고 세계 경제의 불안정화가 심화되면서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현 주식시장 상태를 고려할 때 기업연금제로 떠밀릴 노동자 노후소득보장은 크게 위협당할 것이다.

더욱이 도입 과정에서 확정갹출형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보면, 기금운용의 위험성은 바로 노동자 개인의 부담으로 될 것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서는 확정갹출형 연금제도의 일종인 401(k)를 도입하고 있던 엔론 등이 회계조작으로 인한 주가폭락으로 연금이 휴지조각이 돼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기업연금이 설사 일정하게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 제도가 전체 노동자에게 혜택이 되는 제도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불능력이 충분한 기업들을 중심으로 도입될 것이고, 지불능력이 불충분한 영세소기업은 제도 도입 자체가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정부안은 5인 이상 사업장으로만 대상 기업을 한정하고 있다. 기업연금제 역사가 1백년이 넘는 미국의 경우에도 기업연금 가입률은 노동자수 대비 50% 수준이다. 기업연금제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노동자의 대부분은 소기업, 저임금노동자, 비정규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대부분 취약한 노동자들이다.

결국 기업연금은 전체 노동자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제도로서보다는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 정규노동자의 추가 재산 형성을 위한 제도로만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연금은 또한 기업비용 줄여주기에 그 목적이 있다. 현행 퇴직금제의 기여분은 월급의 8.3%(1년에 1개월치)이다. 그러나 기업연금의 도입 과정에서 이러한 적립금 수준은 현재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안에 따르면 확정급부형의 경우 일단 현재 퇴직금 수준을 유지한다고 돼있지만, 재정경제부는 확정갹출형의 경우 기업이 낼 적립금은 현행 퇴직금의 8.3%보다 크게 낮은 6% 내외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상태이다.

퇴직금의 수급권 보장이 문제라면 기업연금제 도입이 아니라 현행 퇴직보험제를 강화하여 퇴직금의 안정적 수급을 보장해야 한다. 정부는 이미 1997년 퇴직금의 지급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퇴직보험제도를 도입했으나 정부가 이 제도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고 있어 퇴직적립금의 극히 일부만 퇴직보험에 적립되어 있는 상태이다.

정부가 말처럼 노동자의 노후소득보장에 관심이 있다면 기업연금제 도입이 아니라 퇴직보험의 강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 108호] 10.21 ~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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