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리 폭탄테러가 벌어진 인도네시아의 대학생들이 지난 21일 자카르타의 미대사관 앞에서 평화집회를 벌이고 있다.
박은홍/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 연구교수(정치학)
동남아의 대표적인 휴양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참혹한 ‘폭탄 테러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은 즉각 테러 배후 인물로 ‘이슬람 근본주의자’이며 제마 이슬라미야(JI)를 이끌고 있다고 간주하는 아부 바카르 바쉬르를 지목했다. 그러나 일부 인도네시아인들은 오히려 사건 배후에 미국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
그동안 현 인도네시아 정부가 미국이 기대하는 것만큼 반(反)테러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과 이번 사건을 연관시키고자 하는 시각이다. 발리 폭탄테러 사건은 인도네시아 여론을 미국이 뜻하는 대로 몰고 갈 수 있는 충분한 이슈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기대하는 해석은 이와 다르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2억의 대다수가 이슬람을 믿고 있다. 아시아 최대의 이슬람국가다. 32년 장기 집권을 한 수하르토 군부는 이슬람조직의 ‘근본주의화’ 경향을 ‘근대’의 맥락에서 견제했다.
따라서 ‘이슬람 근본주의’와 수하르토 독재체제 간에는 대립과 긴장이 잠복되어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1998년 수하르토 체제의 붕괴는 이슬람조직의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크고 작은 종교분쟁, 지역분쟁이 터지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발리는 작은 섬이지만 힌두교가 유입된 지역이고 힌두문화의 상징이 됐다. 실제 발리 주민의 대다수가 힌두교를 신봉한다. 따라서 이번 폭파사건은 이교도 지역이자 ‘타락해버린’ 외국인 상대 관광지 발리에 대한 ‘이슬람근본주의’의 ‘광기’에 가까운 ‘성전’(聖戰)으로 포장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필리핀에서도 연쇄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필리핀 당국은 폭탄 테러 용의자로 이슬람교도 청년 5명을 체포했다. 필리핀에서의 ‘이슬람근본주의’의 테러행위가 국제사회의 이슈로 떠오른 시기는 9.11 사태 이후.
미국은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의 바실란섬에 활동하고 있는 2백명의 ‘도적떼’ 아부사야프를 뿌리뽑는다는 명분을 내걸고 10여년만에 필리핀에 다시 병력을 파견했다. 아로요 정부는 미국의 경제원조에 기대를 걸고 부시정부의 요청을 지체하지 않고 수용했다.
미국의 식민지였던 까닭으로 반미 기운이 남다른 필리핀에서 기지 철수 후 10년만에 다시 등장한 미군의 모습은 일부 필리핀 대중들을 거리에 나서도록 했다. “양키 고홈, 아로요 고홈”.
그리고 2002년 10월 이슬람교도라고 지목되는 인물들에 의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이는 대부분이 카톨릭교도인 필리핀 국민의 종교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1996년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을 통해 국제사회를 다시 한번 긴장시킨 미국의 보수적 논객 사무엘 헌팅톤은 서구의 정책 결정자들 앞에 놓여진 과제는 서구를 계속 강하게 만들어야 하고 다른 문명, 특히 이슬람문명을 밀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선동’에 동요하는 보수성향의 부시정부가 들어섰고 얼마 안되어 일각에서 보기에 ‘문명의 충돌’을 상징하는 9.11 대참사가 발생했다.
‘자기실현적 예언’이라는 말이 있다. 예언에 동조하는 집단의 개입이 없었을 경우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이 예언을 고려한 계산된 행동으로 말미암아 예언이 맞아떨어지게 되는 역설적 현상을 꼬집은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1997년 아시아의 금융공황을 투기자본의 ‘자기실현적 예언’과 관련지었다.
동남아시아의 ‘테러현상’은 극우보수적 선동에 포섭된 ‘자기실현적 예언’이 동남아시아로 전이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1997년 동남아시아 금융위기 때와 그 얼굴을 달리하고 있지만 본질은 같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한다.
[ 109호] 10.28 ~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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