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8일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서 권영길 대표와 부인 강지연씨가 나란히 서서 박수를 치고 있다.
이호곤/송파을 지구당당원
TV토론에서 ‘당선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왜 출마했는가?’라는 패널의 질문에 대해 민주노동당의 권영길후보는 ‘물론 당선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전혀 없다고 보지는 않는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비켜가는 답변은 TV를 지켜보는 유권자들의 궁금증을 완전하게 덜어주지 못한다.
권영길 후보는 자신의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많은 노력과 돈이 드는 대통령선거에 민주노동당이 출마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솔직하고 명쾌하게 말했어야 한다.
우문엔 현답으로
사실 권영길 후보의 출마는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성장을 위해 너무나 당연한 행위다. 어떤 정치세력이든 자신들의 정치적 성장이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대통령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상식적인 행위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6.13지방자치선거에서 8%의 지지율로 2명의 구청장과 다수의 광역시의원을 당선시킨 대표적인 진보정당이다.
이런 정당이 대통령선거에 참여해 자신들의 국가운영 방향과 정책을 설명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모아가는 것은 민주정치의 기본이다. 그러한 노력을 포기하는 것은 집권을 위한 힘 키워가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행위를 가지고 계속 문제삼는다는 것이 오히려 비상식적인 짓이다.
올림픽과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자신이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시합에 나선다. 그런 큰 시합에 나서서 경쟁해보지 않고서 어떻게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상식적인 태도는 ‘말’지 10월호에서 실린 이천재씨나 최상천씨의 글에서 보듯이 자칭 ‘민주개혁세력’ 또는 ‘소극적 진보주의자’, 또는 일부 ‘민족민주운동권’ 인사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구시대의 유물인 ‘반파시스트공동전선’, ‘반수구공동전선’, ‘반통일공동전선’, ‘범민주개혁세력의 연대’ 등등을 내세우며, 지금은 진보정당의 정치적 성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수구기득권세력의 집권을 막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른바 전략적 사고나 선택을 한다면서 진보세력이 집권할 가능성이 없을 때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한 온건 보수세력 또는 민주개혁세력을 지원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87년 이후 대통령선거가 있을 때마다 으레 그러했듯이, 그들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역시 우리 사회의 진보를 바라는 사람들이 해야 할 제 1의 과제는 이회창 후보의 집권을 막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런가? 그렇다면 지금 모든 진보세력은 반 이회창 후보단일화를 주장하고 지금 반 이회창 후보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정몽준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해야 한다. 낡은 인식의 틀로 뿌리와 주체가 없는 전략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의 논리적 일관성이 어떤 자가당착에 빠지는지를 보여준다.
정치개혁 핵심 보수독점 종식
조금 더 발전된 논리를 가진 사람들의 대안은 노무현과 개혁신당을 지지하는 것이다. 노무현 또는 개혁신당의 지지자들이 우리 사회의 주요한 과제에 대한 해결에 대해 노무현에게 거는 커다란 기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사회의 주요한 과제가 노무현과 같은 길을 걸어서 해결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노무현이 만들고자 하는 나라, 노무현이 가고자 하는 길은 이미 김대중이 걸었다.
그것은 수구세력과 타협해서만이 가능한 나라이다. 자신의 의도나 말과는 무관하게 현실에서 실현되는 보수적 개혁이 우리 사회의 근본적 개혁과는 거리가 먼, 그래서 오히려 국민들에게 개혁과 진보에 대한 불신만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또 다시 경험해야 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은 모든 보수세력도 인정하는 시대적 과제가 돼있다. 그러나 보수적 개혁을 어떻게 얼마만큼 하느냐를 두고 보수 정치세력 내에서 아무리 크게 의미를 두고 싸우더라도 그것은 대부분 사소한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의미있는 개혁의 방향에는 진보적 개혁과 보수적 개혁이 있을 뿐이다. 그 중간의 길은 없다. 굳이 있다면 기회주의적이고 우왕좌왕하는 일관성 없는 길이다. 노무현의 그동안 행보가 괜히 왔다갔다 한 것이 아니다. 노무현의 길은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진보의 길이 아니다.
정치개혁 핵심 보수독점 종식
지금 우리 국민들이 처한 상황은 각 정치세력이 정상적인 경쟁을 원천봉쇄 당하고 있던 87년 이전의 군부독재시기의 그것과 다르다. 아직 진보정당과 신생정당들에 불리한 여러 제도들이 많이 있지만 어떤 정당이나 정치세력도 다른 정당이나 정치세력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그런 가운데 보수정치세력들 사이에 일상적으로 권력을 둘러싼 경쟁과 정권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시기에 민주당이 재집권하든, 한나라당이 정권교체를 하든 그것은 우리 사회와 정치에 별로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우리는 이미 민주당의 집권이 무엇을 가져올 수 있는지 충분하게 보았다. 이런 시기에 진보진영 최대의 당면한 정치적 과제는 진보정치세력이 독자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우리 사회에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과 같은 새로운 진보적인 정치세력이 기존의 보수정치세력이 독점하고 있는 정치판을 바꿀 힘을 갖는 것은 정말 우리 정치에 의미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성장은 모든 진보세력과 민주노동당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치와 개혁을 바라는 모든 국민들의 제1 과제다. 그래서 우리당이 자신의 실력을 쌓고, 자신의 성장을 위해 중요한 기회를 가지는 것보다 다른 보수 정당의 집권이 더 중요하고 의미있다고 하는 것에 우리 당원들 대다수는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성장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없다. 이것이 우리들의 기본 인식이다.
우리는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우리당이 이 나라를 어디로 또는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려고 하는지, 그를 위해 어떤 프로그램과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성장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말할 것이다.
보수정당 중 어느 정당의 집권을 막는 것이나 당선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나물에 그 밥인’ 보수 양당만이 늘 경쟁에 나서는 이런 보수양당 독점체제를 깨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정치개혁은 없다는 것을 설득할 것이다. 더 이상 지역과 인물에 의존하는 구태의연한 정치가 지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많은 국민들에게 민주노동당은 진보세력의 정치적 성장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알리고 최대한의 지지를 호소할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 그만하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보수의 바람이 지배하는 사회다. 진보세력은 언론과 정부 그리고 사회전반에 대한 영향력을 거의 미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비주류이다. 그나마 지난 지방자치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약진하면서 약간의 가능성을 보였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보수세력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힘을 가진 것처럼 걱정하는 것은 정말 앞질러 쓸 데 없는 걱정을 하는 것이다. 정말 우리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 보수세력은 자신의 집권을 위해 우리와 손잡기 위해 상당한 양보를 감수할 것이다. 나는 그런 시기가 하루 빨리 오길 바란다.
지금은 모든 국민이 자신이 원하는 정치를 솔직하게 표로 말해야 한다. 더 이상 자신의 뜻을 사표심리와 같은 논리로 왜곡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정치와 정책을 솔직하게 나타내야지 그러지 못하면 그 표야말로 정말 죽은 표다.
모든 국민들은 자신들이 어떤 정책과 어떤 정치를 원하는지 솔직하게 드러내고, 각 정당과 정당의 후보자들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명하게 말해야 국민들의 뜻이 제대로 반영된 선거결과가 나온다. 대통령선거는 정권을 누가 잡는가를 결정하는 것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선거를 통해 우리는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국민의 뜻을 파악한다. 이것을 왜곡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1등만 권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큰 권력은 1등이 가지겠지만, 2등, 3등, 4등을 하는 정당이나 정치세력들도 국민들이 지지하는 만큼 권력을 가지게 된다. 진정한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를 하고 선거에서 얻은 표만큼의 권력을 행사하며 국정에,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나라당으로 정권교체를 원하는가? 얼굴마담만 바꾼 민주당 세력의 재집권을 원하는가? 아니면 진보정당을 성장시켜 우리 정치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인가? 유권자의 소중한 한표가 어떤 것에 쓰이길 원하는지 그것이 문제다.
※주: 필자는 진보적 개혁과 보수적 개혁을 가르는 핵심이 우리 사회에 부와 권력, 권위를 독점하고 있는 세력을 해체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정책을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것에 있다고 본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반민주적인 소수의 지배에서 상호 견제와 비판, 합리적 대화와 토론을 통한, 민주적인 다수의 지배로 바뀌어야 한다.
[ 109호] 10.28 ~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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