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공간의 위기는 사이버공간의 대중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세상에는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고, 또 그들은 저마다 다른 취향을 갖고 있는지라, 사이버공간은 참으로 다양한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사이버공간의 대중화는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사이버공간을 이용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이버공간이 이처럼 백인백색의 내용을 가지게 된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대중화의 질적인 차원에서 사이버공간의 위기가 비롯된 것이다.
위기의 징후는 여러 가지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단연 음란물의 홍수를 들 수 있다. 이로부터 인터넷이 음란물과 매매춘의 새로운 온상이 되었다는 이른바 '사이버 홍등가'론이 나타났다. 또 다른 징후로는 새로운 범죄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인터넷은 새로운 각종 정보범죄의 도구로는 물론이고 국제적인 범죄조직의 정보망으로 이용되고 있기도 하다. '사이버 암흑가'라는 말은 인터넷의 이런 어두운 면을 가리킨다. 좀더 최근에 나타난 징후는 이른바 '반사회적 사이트'에 관한 것이다. 예컨대 친나찌 사이트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것인 데, 이런 사이트는 반사회적 태도와 행위를 조장한다는 점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확실히 '사이버 홍등가', '사이버 암흑가', 그리고 '반사회적 사이트'는 사이버공간의 위기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이 사이버공간을 착하고 예쁘게 사용하면 좋으련만, 역시 사람들은 구제불능인 모양이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그런데도 사이버공간이라는 좋은 기계를 허접하고 위험한 용도로 사용하는 데 골몰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만 간다. 어떻게 해야 하나? 사이버공간을 없애 버려야 하나?
물론 사이버공간을 없앨 수는 없다. 더 이상 우리가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매드 맥스'의 세상이 찾아오면 몰라도, 사이버공간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문제를 그냥 두고 있을 수도 없다. 사이버공간의 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 중에서 일부가 찾아낸 묘안은 바로 이럴 때 국가 권력을 써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본래 사이버공간은 거의 무정부 상태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는 데, 그 대중화와 함께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상태로 내버려 둘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사이버공간에 대한 국가 권력의 강력한 경고가 행해졌고, 이어서 사실상의 선전포고가 행해졌다.
그런데 사이버공간의 특성은 무엇보다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에서 찾을 수 있다. 정보가 자유롭게 흐르지 않는 사이버공간은 이미 사이버공간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참으로 중요한 것이 자유의 의미인 데, 그것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자율적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사이버공간은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사이버공간에서 사람들은 자율적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여론을 만드는 방법을 쉽게 배운다.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자율적으로 자유롭게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여론을 만들어 가는 현상을 사이버공간에서는 언제나 쉽게 볼 수 있다.
국가 권력을 이용해서 사이버공간의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것은 이러한 자율과 자유를 침해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사이버공간에 대한 모든 국가 규제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이용자의 자율과 자유라는 사이버공간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을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이버공간의 위기라는 현상을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다. 그리고 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이용하지 않을 수도 없다. 앞으로 가야 하나? 뒤로 가야 하나?
그러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우리가 꼭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 권력은 일종의 필요악이다. 없는 것이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나의 대중매체로서 사이버공간도 이러한 국가 권력의 통치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참된 문제는 사이버공간의 위기에 관한 이런저런 우려를 빌미로 국가 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것이다. 사실 국가 규제는 그 자체로 사이버공간의 위기를 구성하는 중대한 사건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사이버공간에 대한 국가 권력의 자의적 행사는 다시 말할 것도 없이 사이버공간의 위기를 구성하는 강력한 요인이다. 우리의 경우가 바로 그 좋은 예이다.
사이버공간의 위기는 사이버공간의 대중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징후를 예컨대 '사이버 홍등가'로 대표되는 대중의 무분별한 이용에서만 찾는 것은 일면적인 것일 뿐더러 나아가 사태를 왜곡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위기의 징후는 사이버공간에 대한 국가 권력의 개입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는 아직도 국가 권력이 전근대적 가부장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가부장은 가족을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고 심지어 자신의 소유물로 여긴다. 가족은 가부장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사이버공간에 대한 국가 권력의 개입이 강화되는 것을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도록 조장한다. 개혁되어야 할 과거의 폐습 위에서 사이버공간의 위기가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사이버공간의 위기를 강화하는 국가 권력에 맞서는 것은 사이버공간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 사회 전체의 근대화와 민주화를 더욱 진척시킨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국가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행태를 바로잡는 것은 시민사회 전체의 중요한 실천적 과제가 된다.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권리를 위해 사이버공간의 위기를 바로 보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양과, 사회학) rayhope@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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