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객이 전도된 대학가요제
내가 "한려대학교"라는 그 문제의 대학에 있었을 때, 친하게 진하던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화학공학을 전공하신 선생님인데, 대중음악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고 계신 터여서 평소에 나하고 말이 잘 통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분은 제 4회 대학가요제 출신이었다. 당시 전남대표로 출전해서 4인조 포크그룹을 만들어 나갔는데 아쉽게도 입상에는 실패했다고 한다(그 때 대상을 받은 사람이 '바윗돌'을 부른 정우차씨였다). 그런데 그 선생님의 말로는 입상하지 않았어도 자신들은 영웅이었다고 한다.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얼굴이 알려지고 나니까 전남지역 대학교에서 축제가 있는 날이면 제법 초대를 받았다고 하며, 나중에는 지방 라디오방송국에나 호프집에서도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분은 대학가요제가 자기 삶의 유쾌한 후일담으로서 늘 항상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추억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
어쨌든 그 사실은 정말 우연한 계기로 알게된 것이었는데, 그 때 먹은 술이 원수였던지, 그 날 밤에 이야기가 급진전되어 급기야는 같이 있던 한 선생님이 아예 추억을 되살릴 겸 밴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고단한 학교생활을 달래기 위한 유쾌한 후일담이 엉겁결에 5인조 교수밴드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들은 3달 동안의 맹연습 끝에 그 해 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그 때 3달 동안의 시간이 내가 한려대학교에 있으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모인 5명의 교수들이 모여 학교의 비리문제를 논의하게 되었고, 그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 이듬해 5월에 교수협의회를 만들고 5인조 밴드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치열한 2년 6개월 간의 한려대학교 정상화와 민주화 투쟁을 전개하게 되었다.
지난 10월 19일에 있었던 26회 대학가요제를 보면서, 헤어지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 선생님이 생각났다. 이번에 출전한 참가들 역시 대학가요제 출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사귀고 유쾌한 시절을 보냈다면, 그 선생님처럼 좋은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전통의 대학가요제들이 사라져가고, 기획사의 잘 포장된 만들어진 가수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대학가요제의 존재는 더 돋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이 대학가요제를 하나의 흥행 상품으로 만들려고 하는 제작진들의 무리한 기획으로 인해 그 날의 주인공이 되었어야 할 참가자들이 오히려 소외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그날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팀은 모두 14팀이었다. 그런데 그날 게스트로 나온 기성 가수들은 윤도현 밴드, 전인권, 자우림, 환희, 비, 이수영, 성시경, 박효신, 장나라, CB메스, T(윤미례) 등 모두 11팀이었다. 순수 아마추어 음악경연대회를 표방하여야 할(물론 이후에 참가자들이 기성가수로 진출할 수는 있겠지만) 대학가요제의 참신함이 기성가수들의 집단출연으로 인해 손상되지는 않았나 심히 우려되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왜 그렇게 기성가수들이 많이 출연해야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사실 시간상으로 보아도 이날 참가자들에게 할애했던 시간보다, 사회자나 게스트에게 할애했던 시간이 더 많았다. 물론 기성가수들이 나와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격려와 축하를 해주는 미덕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30회, 40회 기념대회도 아닌데 11명의 게스트 출연은 아무래도 지나쳤다고 보고 싶다. 혹시나 이 무대가 관객을 끌기 위한 수단이었거나 홍보를 위한 그들만의 리그는 또 아니었는지 반문해보고 싶기도 하다.
MBC 대학가요제 제작진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다음 대학가요제에는 제발 게스트들 많이 출연시키지 말았으면 한다. 그 시간이 있으면 출연팀을 늘리던지 그들에게 충분히 대학가요제를 즐기게 만들게 해주었으면 한다. 대학생들에게 지금의 대학가요제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가수로 정식 데뷔하기 위한 고급상표를 얻기 위해서?, 아니면 대학시절의 낭만과 열정을 느끼고 싶어서? 대학가요제는 이 두 가지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옳은 지혜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오늘의 대학가요제는 전자에 더 치중하는 것 같아 보인다. 대학가요제를 좀더 날 것 그대로의 젊은 열정이 발산되는 공장으로 그냥 놔 둘 수는 없을까? 11명의 게스트들의 원치 않은 "월권행위"를 지켜보면서, 그래서 주객이 전도된 대학가요제를 지켜보면서 80년대의 암울한 광주의 기억을 대학가요제 출전으로 달래려고 했던 그 동료 선생님의 좋은 추억담이 다시 떠오른다. 대학가요제는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년에도 이런 식으로 무더기 가수들이 출연해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벌어지면, 아예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대학가요제 폐지운동"이나 할까 보다.
이동연 (문화연대 사무차장, 문화평론가) sangyeun@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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