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책]내 영혼 대륙에 묻어

등중하는 나에게 철도의 어용들과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철의(노동자의 힘 회원)

"풍부한 실천을 배우려거든 중국 운동을 공부하라." 후배들이나 마음을 여는 동료들에게 곧잘 하는 어느 작자의 흰소리이다. 그렇다. 나는 중국 공산당이 항일투쟁을 하던 시기, 그들의 유연하고 풍부한 실천에서 감명을 받았다. 그들의 노선은 분명하였으되 실천은 풍부하였다. 그리고 단호하였다. 풍부하고도 단호하다고? 서로 어울리지는 않지만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국공합작은 어떠한가? 스스로에 대한 자신과 노선의 단호함이 없다면, 고도로 정예화된 조직이 없다면 그런 위험천만한 전략을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노동자의 힘이 제안했던 공동투쟁본부 건설이 무산된 지금 나는 그것을 뼈아프게 되새긴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타협과 조정은 이렇게 어렵다. 하물며 자본가들 집단인 국민당에게 합작을 제안하다니. 자신들을 벌레 보듯 싫어하는 장개석을 그들은 명분과 대중이라는 그물로 완벽하게 엮어 버렸다.
나는 등중하(鄧中夏)를 존경한다. 그는 내가 알았던 첫 번째 중국인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나 관우, 조조와 제갈량 같은 사람은 전부터 알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누구나 다 알 터이고 말하자면 통속적인 인물들이다. 내가 활동가를 자처하고 나선 뒤 비로소 나타난 사람인 등중하는 청나라 사대부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는 거인(擧人)출신으로 우리나라 식으로는 진사양반이다. 물론 머리가 좋아 북경대학 출신이다. 부인은 중국 당의 총서기였던 이립삼(李立三)의 누이. 이런 정도면 운동에서도 기득권을 누릴만한 처지였다. 그러나 그는 실천가이고 유능한 조직자일 뿐이었다. 억울한 징계를 감수하며 당이 준 허드렛일을 불평없이 수행하였다.
불운하게도 그는 붙잡혀 사형을 당하였다. 중국 운동이 바닥을 기고 있을 무렵, 그러니까 구추백-그는 중국 당의 두 번째 총서기였을 것이다-의 맹동주의 노선으로 봉기가 실패한 뒤끝이었다. 국민당이 합작의 대상이던 공산당원들을 무차별로 학살하던 무렵, 붙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등중하는 위력적인 대중파업을 이끌었다. 1921년 장신점(長辛店)의 경한(京漢) 철도파업에서 그는 규찰대를 조직하여 경비원들을 몰아내었다. 전화·전기 코드를 뽑아버리고 관리자들의 작업장 출입을 엄금하였다. "그런 정도는 지금 남한에서도 다 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때의 중국은 군벌이 지배하는, 말하자면 "권력이 총구에서 나오던" 살벌한 시절이었다.
이어 그는 1925년 홍콩과 광주에서 영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조직하였다. 이 파업은 실로 일년 반 이상 완강하게 이어졌다. 홍콩에 웅크린 영국 제국주의자들을 노동자들이 봉쇄하여 고사직전으로 만들었던 유명한 홍콩, 광주파업이 그것이다. 이 파업에서 조직한 규찰대와 파업대오는 1차 국공합작에서 북벌의 주력이 되어 중국 군벌들을 제압하였다.
등중하는 탁월한 조직자였다. 주장을 앞세우기보다 흐르는 물처럼 조직과 인물에 스며들어 투쟁에 나서게 하였다. 어용노조 위원장이나 폭력단까지 자신도 모르게 파업투쟁에 참여하였다. 폭력단 두목은 으스대기를 좋아하므로 쌍권총을 허리에 채워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을 중심으로 기반을 확대한 뒤에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영향력을 빼앗겼다.
철도 노동조합의 이무기 같은 어용간부들에게 시달릴 무렵 등중하는 나에게 철도의 어용들과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어용들보다 더 지혜로워야 하고, 어용들보다 더 풍부하고 끈질겨야 함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춥고 배고프던 혁명가였다. 주장하기보다 복무하던 충실한 조직원이었다. 사형을 앞두고도 여유와 낭만을 잃지 않던 흔치않은 사나이였다. 이런 훌륭한 인물을 한번 만나고 싶지 않은가? 이 책을 열면 그를 만날 수 있다. <전소혜(錢小惠)지음, 백산서당, 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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