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정권 생명 연장의 꿈을 파탄내자!

전주희(노동자의 힘 선전부장)

2002년 가을의 수확

전북 장수군에 사는 김한식(65)씨는 벌써부터 한숨이다. 96년부터 전북도 권장에 따라 사과와 배, 포도를 시작했다.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그동안 모은 재산 1억원을 투자해 귀농의 알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런 김한식씨의 '꿈'을 말렸다. "차라리 1억원을 은행에 넣어놓고 곶감 빼먹듯 빼먹으라고 합디다. 어차피 까먹을 돈 뭐하러 고생해가며 까먹으려고 하냐고요.
허허." 농사 7년차 그의 초기 투자금 1억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제 그에게는 1억1천만원의 빚이 남아있다. 올해 4천600여만원을 추가 투자했지만, 사과와 배, 포도를 다 수확했는데도 총 수익이 4천여만원을 밑돌고 있다. 한-칠레 협상타결 소식을 듣고 포도는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겠다고 한다.

완주군 이서면의 하연호(51)씨는 78년부터 농사를 시작해 올해로 15년째다. 올해는 감, 포도, 표고버섯 등을 지었다. 1200평 감 농사를 지었지만 태풍으로 감이 다 떨어지고 멍들어 "단돈 1원도 못 건졌다." 2400만원을 시설(하우스 등)에 투자해 표고버섯을 지었지만 올해 총 수입은 120여만원에 불과하다. 시설을 빌려 포도농사를 지었지만 원래 시설주인에게 한 평당 50만원의 시설비를 주고 나면 남는게 없다. 그나마 내년부터 포도는 안할 것이다.

YS정권부터 '쌀 만으로는 안된다. 고부가가치 수익사업을 벌여야 농업의 경쟁력이 산다'는 기조아래 42조원이 농업에 '투자'됐다. 농민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권장에 따라 비용이 많이 드는 시설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늘어난 것은 수익이 아니라 빚이었다. 계남리의 한 농민은 "젊은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려고 하면 농업후계자라고 해서, 융자를 줘요. 그게 첫 번째 빚이죠. 요즘은 시설농사 안 짓는게 없어요. 모두들 농사로는 힘들다 하지만 빚들이 워낙 많으니까… 화훼 같은 경우는 평균 2억씩 빚들을 가지고 있죠. 여길 벗어나질 못해요. 다 그 빚들 때문에 발목이 잡혀서 그냥 안되는 줄 알면서도 계속 농사짓는 거에요."라며 '우리 마을 사람들이 내는 이자로 농협 간부 월급 준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제 가을 들녘의 풍성함을 얘기하는 농민들은 없다.

2002년 10월24일, 얻은 것과 버린 것

10월24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됐다는 소식이 전국에 타전됐다. 자본과 정권이 한국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이라 축배를 들고 있는 사이에 농민들은 포도나무를 베어버리기 시작했다. 타결 이후 4억달러의 무역흑자가 가능할 것으로 추정하며, 한-일 또는 한-중-일 3개국간 FTA도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고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 사이 1500여명의 농민들은 FTA중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산자부에서는 타결 이후 즉각 보도자료를 배포해 "칠레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사과, 배와 함께 쌀은 양허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포도에 대해서는 계절관세를 적용하기로 해 농가의 어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정부의 노골적인 '언론 물타기'에 크게 반발한다. "사과랑 배랑 쌀이 제외됐다구요? 영원히 제외된답디까? 포도는 11월부터 4월까지 계절관세 도입한다고는 하지만 칠레는 저장기술이 무척 발달한 나라라고 합디다. 시설포도 짓는 사람들은 다 죽으라는 소리지요. 어디 그 뿐입니까? 아, 우리 사람들이 어디 포도 먹는 사람 따로 있고, 사과 먹는 사람 따로 있디요? 알만한 사람들이 국민들을 그렇게 속이면 안되죠."라며 분통을 터트린다. 과수농업을 하는 농민들은 작목전환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대부분 전환되기 때문에 포도농사가 같은 과수인 사과나 배로 대체된다. 때문에 과수작물 전반에 대한 동반 폭락이 예상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니 사과와 배는 살고, 포도는 죽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볏짚과 화장품, 마늘과 휴대폰 그리고 냉장고와 포도 맞바꾸기 : 정부는 한-칠레 협상타결을 통해 한국 농업의 결정적 붕괴를 감수하고서라도 지역블록화를 통해 전지구적 경쟁체제에 적극적으로 편입하겠다는 의지를 관철시켰다. 2001년 현재 식량자급율이 29.4%에 불과하고 영세농가가 61.1%에 달하지만, 정부의 농업정책은 파탄난 농업을 회생시키겠다는 정책은 아니다. 적극적인 워크아웃과 구조조정으로 소수의 농업 대자본을 양산해, 경쟁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정부의 핵심적인 의도에 대해 농민들은 '농업포기 정책'이라고 보고 있다.

11월13일 농민대회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

상황이 이런데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 전국농민회총연합(전농)은 11월13일을 벼르고 있다. 'WTO 쌀수입개방 반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저지 11·13 우리쌀 지키기 전국농민대회'의 기치아래 30만 농민 대항쟁을 조직하고 있다. 이번 농민대회는 2004년 WTO 뉴라운드 협상, 쌀 재협상 등을 앞두고, 그리고 한-칠레 협상에 따른 국회비준을 저지하고 신자유주의 정권의 농업정책이 이미 파탄났음을 폭로하는 자리다. 또한 실제로 30만 농민이 서울로 총집결함으로써 대선을 앞두고 차기 정권에 대한 600만 농민의 결사항전을 선전포고하는 장이기도 하다.
30만 항쟁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가? 이미 쌀수입 반대를 위한 1000만인 서명운동이 각 시, 군민을 대상으로 조직되고 있다. 또한 각 마을 신작로마다 농민회, 여성농민회, 환경단체, 노동사회단체, 심지어 지역 소방서까지를 망라하는 지역적 연대단위가 각각 내걸고 있는 "WTO-쌀 수입 반대, 식량주권 사수하자"는 플래카드가 가로수 사이를 채우고 있다. 또한 각 도별 이장단 선언운동 및 투쟁선포식을 기점으로 각 지역 천막농성에 돌입하여 11월13일까지의 조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1.13 농민항쟁을 시작으로 전국적·전민중적 총투쟁으로 확장하자.

11.13 농민대항쟁이 진정 신자유주의 정권의 농업기조를 확 바꿔버리기 위한 투쟁의 장이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항목이 더 추가되어야 한다. 첫째는 11월13일의 농민대회가 대선을 앞두고 보수정당의 예비 대통령에게 농민의 분노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미 저들은 수많은 TV토론회에서 얼굴을 내밀며 '누가 당선되더라도 우리는 신자유주의 기조를 단 한줄도 바꿀 수 없다'고 합창하고 있다. WTO와 관련해서도 웬만해서는 언급을 자제하고 있는 판국에 그 중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고 한들 지배계급의 '담합'을 청원을 통해 깰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13일 여의도에 30만이 아니라 600만이 총집결한다고 하더라도, 얼굴만 바뀐 신자유주의자들이 권력을 잡도록 용인한다면 말짱 도루묵 되는 판이다. 지난 10월23일 '우리쌀 회생연대'와 전농은 대선농정공약 국민토론회를 통해 이러한 한줄기 희망이라도 잡아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유예조치'일 뿐이다. 따라서 전농은 11월13일 이후의 투쟁계획을 현실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을 내야한다. 실제 11월25일로 예정되고 있는 2차 농민대회를 13일에 버금가는 총집결투쟁으로 배치하고, 13일 집회 때 25일 총결집의 결의를 대중적으로 밝혀야 한다.
두 번째는 13일 농민대회를 시작으로 전국적이고 전민중적인 총투쟁전선을 제안하고 확장하는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11월7일 빈민대회, 10일 노동자대회, 13일 농민대회라는 굵직굵직한 대규모적인 집회가 잡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민중진영을 묶어 세울 수 있는 총단결의 장은 현재로서는 계획되지 못하고 있다. 각 대회장에서 대표자들의 연대발언과 연대대오만으로는 지금의 정세를 반전시킬 수 없다. 실제로 노동자-농민이 총단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자발적으로 조직되거나 제안되어야 한다. 이장단 선언 운동을 이장단과 각 단위노조 대표자의 공동 선언운동으로 조직하자. 각 마을별 농민들의 농성과 함께 지역본부와 각 단사에서 도심지를 중심으로 한 농성이 함께 배치되어야 한다. 13일 30만 농민들의 상경투쟁은 반드시 성사되어야 하지만 정권의 고속도로 사전봉쇄가 예상된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적극적인 연가투쟁을 조직해 농민들의 투쟁을 엄호하고 확장해야 한다. 반WTO-반신자유주의의 전국적 전선은 대선을 겨냥해서가 아니라 대선까지도 돌파하는 실질적인 총집결을 위한 세부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자-농민의 분노가 저들 지배계급에게 확실하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며, 신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전민중적 심판의 장이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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