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구(노동자의 힘 연대사업위원장)
노동자 민중의 일터와 삶은 어렵고 냉혹하다
어찌 말과 글로 노동자 민중의 현실을 다 담을 수 있겠는가. 소위 IMF 이후 노동자 민중은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지구화 공세에 의해 자본주의 체제유지를 위한 자발적인 하위 파트너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아왔다. 대다수의 노동자 민중은 그저 자본의 이해보장과 지배세력의 정권재창출을 위한 들러리로 살아온 것이다. 물론 분노와 저항 그리고 절규는 가슴속에 갖고 있으면서도, 노동자 민중의 일터와 삶은 그저 힘들고 벅찰 뿐이다. 파견근로·비정규직으로 그리고 도시빈민으로 자본과 정권에 빌붙어서라도 살아야하는 절박함이 어깨를 짓누르고 숨통을 조이고 있다. '이땅의 노동자 민중은 죽어야 비로소 편할 수 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현실을 더욱 참담하게 할 뿐이다.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는 불가피해 보이기까지 한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이놈 저놈을 택할까 하는 고민은 노동자 민중의 삶과는 무관한 배부른 짓거리로 치부되기 일쑤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통령 후보를 찍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힘든 것이 대다수 현장의 분위기라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활동가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동자 민중이 현실의 장벽을 뚫고 투쟁의 주체, 정치의 주체로 서야 한다는 것을 택도 없는 당위적인 주장으로 폄하하고 노동자 민중을 대상화하면서 대변인양 하는 세력이 다수이자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운동지형 역시 비껴갈 수 없는 어렵고 냉혹한 현실이다.
그래도 희망은 정면돌파를 선언한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이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노동자 정치선언'을 하며 산화한 지, 강산도 서너 번은 변했을 30여 년이 지나 2002년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다. 노동자들은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인간답게 살겠다며 배수진을 치고 악법폐지와 노동탄압 분쇄를 위한 총력투쟁을 벼르고 있다. 농민들은 생존의 벼랑끝에서 반WTO 투쟁의 일환으로 식량주권 사수를 위한 쌀 투쟁을 중심으로 11월13일 30만 총궐기 항쟁과 11월25일 농기계를 동원한 전국적 보고대회 형식의 투쟁을 앞두고 있다. 빈민들은 죽음까지 강요하는 정권에 맞서 노점보장을 통한 생존권 사수를 위해 11월7일 삶의 터전인 거리에서 전면적 한판 투쟁을 결의하고 있다. 학생들은 반제·반신자유주의 연대투쟁을 힘있게 만들기 위해 힘겨운 상황임에도 투쟁의 선봉에서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 모두가 현시기 투쟁의 방향과 방안을 실천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거꾸러뜨리지 않고서는 도탄에 빠진 노동자 민중의 삶을 일으켜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온 몸으로 확인하고, 투쟁주체로 서서 자본과 정권에 맞선 일대격전을 선언한 것이다.
소위 운동권(?)이라는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의 주체들은 패배주의 그늘을 배회하면서 대중투쟁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기 급급해하거나, 현실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는 '혁명'이라는 도식에 갇혀있지 않았는가. 그들만의 활동방식에 안주하고 갇혀왔던 모든 관행을 극복하고 노동자 민중투쟁의 요구와 주체를 중심에 두기 위해 스스로를 '비우고 버리는, 하여 다시 세우는' 노력을 부단하게 해야한다. 무릇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을 위한 '혁신과 연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 결사, 사회주의자의 붉은 단심, 혁명의 열망과 투혼 등의 기치는 주의주장에 멈추어서는 안된다. 11월과 12월 반제·반신자유주의 기치아래 치열하게 전개될 대중투쟁과정에 복무함으로서 실천적인 '계급정치'의 힘으로 진전시켜야 한다.
그렇다. "못살겠다 세상을 바꾸자." 가슴속에 가둬둔 절규를 희망으로 만들기 위한 하반기 노농빈학 연대투쟁에 나서자. '진보'라는 허구와 '대리(변)'라는 허울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투쟁과정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할 교두보 확보와 주체형성에 주력하자. 투쟁주체이자 정치주체인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이 실천적으로 제출하고 있는 투쟁과제에 함께 하지 않고 머뭇거린다면 노동자 민중의 '계급정치'는 그만큼 지연될 뿐이다. 잊었는가. 96-97년 노동법 개악을 저지하지 못해 밀리고 밀려서 황폐화된 현장, 철저하게 자본에 의해 통제되는 현장에서 쫓겨나고 죽어갔던 수많은 노동자들을 말이다. 11월, 12월 투쟁을 위력적으로 전개하자. 2003년 더욱 미쳐서 날뛸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자 민중 수탈 기도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계급정치 실현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해나가자. 노동자 민중의 투쟁에 실천적으로 화답하자.
연대투쟁을 넘어 '총단결 총투쟁'의 기치를 높이 들자
11월, 12월 노동자 민중 투쟁의 성사와 결과를 온전히 노동자 민중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어야 할 지점이 있다. 그 하나는 정치적·실천적·대중적 동의를 전제로 투쟁과제를 틀어쥐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선을 활용해야 한다며 청원·압박하고 결국 '진보정치'에 몸 대주는 투쟁이 아니라 투쟁으로 대선국면을 돌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자 민중의 '계급정치' 실현에 한발짝 다가서야 한다.
작년 명동성당에서 민주노총 단병호위원장이 자진출두하면서 지난했던 김대중정권 퇴진투쟁의 성과를 고스란히 잃어버린 기억을 잊어서는 안된다. 올해 발전노동자들의 38일간의 투쟁으로 열었던 노동과 자본의 힘관계를 반전시킬 4월2일 총파업 무산이 야기한 현실을 직시하자. 하반기 정면돌파해야 할 자본과 정권은 그리 녹녹한 상대가 아니다. 엄청난 공권력을 중심으로 동원가능한 모든 물리력을 통해, 하반기 투쟁의 정치적 성격을 거세하고 계급정치로 진전시키는 일체의 흐름과 노력을 막으려 할 것이다. 대중투쟁의 요구와 주체들을 체제내화하는 데 사활을 걸고 대응할 것이 예상된다.
하반기 노농빈학 투쟁대오들은 이러한 자본과 정권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기세로 예년에 비해 결의와 조직정도가 매우 드높다. 하반기 투쟁과제에 대한 투쟁주체들의 이해와 결의는 다양하고, 불균등한 것 또한 현실이다. 당면 투쟁과제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은 '보수'와 '진보'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지 못한 것이 핵심적인 문제이다. 11월, 12월 노동자 민중투쟁은 자본과 노동이 각각의 생존을 걸고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투쟁의 장이다. '악법철폐', '노동탄압분쇄', 노동기본권 쟁취', '투자협정·WTO반대', '비정규직 철폐를 중심으로 한 불안정노동 철폐', '식량주권 사수', '기간산업사유화 저지', '공무원 노동3권쟁취' 등 어느 요구하나도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 관통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이를 분명히 하고 있지 못하는 한, 투쟁은 적들에 의해서 뿐 아니라 내부에서 교란될 여지가 충분하다. 투쟁주체들이 투쟁과제를 틀어쥔다는 것은 다름아니라 11월 12월 노동자 민중투쟁이 노동과 자본의 정면투쟁 선언이자 투쟁의 장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연대투쟁의 수준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불가피하고, 그 실현자체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러나 현시기 제출되고 있는 투쟁과제는 연대투쟁을 넘어 총단결 총투쟁의 기치로 받아안지 않고서 실현하기 불가능한 것이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현재 '연대'를 이야기하는 많은 활동가들이 있다. 품앗이가 아니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연대투쟁의 과제로 자리매김하는 한 실현할 수 없는 과제이기에 총단결 총투쟁의 기치로 투쟁의 한길로 나서야 한다.
삶 자체를 유지하기에도 버겁고, 대리주의가 주도하고 있는 현실에서 '계급정치'는 희망일 수 있는가. '계급정치'가 어렵고 힘든 투쟁을 결의하고 함께 해야 하는 그 무엇이라면, 말과 뜻은 좋으나 동참하기는 어려운 것이 투쟁의 현실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저항할 수 있는 방안은 아무래도 노동자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보수정치와 싸우겠다는 '진보정치'를 택하는 것이 현실적이며 편해서 노동자 민중에게 더욱 호소력을 가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진보'는 보수에 대한 반정립은 될 수 있을지언정,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의 해방세상을 위한 장도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기 위해 투쟁의 경계를 확장하려는 투쟁과정이 갖는 계급성을 거세할 수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노동자 민중을 대변할 수 있는 의회진출과 절대화된 산별만을 절대절명의 과제로 삼는 당-노조 양날개론 식의 의회주의적 편향은 끊임없이 노동자 민중을 청원·압박이나 하게 하고 일개의 유권자 취급하는 것일 뿐이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아니라 '노동'과 '자본'의 투쟁이며, '대리(변)'을 택할 것인가 '주체'로 설 것인가에 대한 결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 바로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들은 이러한 핵심 지점을 체득하고 있다. '진보'와 '대리(변)'는 노동자 민중이 택해서는 안되는 길임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네들은 절대로 노동자 민중 삶의 현실을 해결할 주체가 아닐 뿐 아니라, 투쟁과정에서 함께 하기 힘들 거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왔기 때문이다.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이 계급정치의 희망으로 우뚝 서야한다.
반제·반신자유주의 투쟁과제는 대동단결에 기초한 연대투쟁이 아니라, 총자본에 맞서기 위한 총노동의 총단결 총투쟁을 통해 실현해야 할 과제이다. 노농빈학 투쟁주체들이 분노 그 자체에 조응하고 그것을 모으는 것에 그치는 연대를 넘어, 단결·투쟁하여 자본의 질서를 깨뜨리고 나아가 해방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총단결! 총투쟁! 이것이 분노와 저항 그리고 절규를 끝장내고 '계급정치'의 희망을 만들 유력한 방안이다.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