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얼굴]다시 현장을 일구겠습니다

두산중공업노조 쟁의차장 백형일 동지

전주희(노동자의 힘 선전부장)

예년보다 더 빨리 찾아온 겨울이다. 나뭇잎들은 자신을 붉게 다 태우기도 전에 거리위로 뒹굴고 있다. 한 여름 뜨겁게 달궜던 파업을 뒤로한 현장은 이미 꽁꽁 얼어버렸다. 그 어느 때보다 집요했던 자본에 대한 분노만으로는 백형일 동지의 심경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제일 열심히 하는 친굽니다." 주변의 활동가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 하지만, 활동가로서 그가 걸어왔던 활동에 대해, 지난 파업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2002년, 두산자본의 선제공격

한국중공업 시절, 소위 잘나가던 민주노조는 매번 파업을 벌였고 적지 않은 임단협의 성과를 따냈었다. 그러나 두산자본이 지배주주가 된 후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올해 투쟁은 두산자본이 먼저 도발했고 그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었다. 발전 연대파업 관련 참가 조합원들을 대량 징계하기 시작하면서 금속노조의 집단교섭을 둘러싼 투쟁은 급기야 사측이 5월22일 단협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면서 극으로 치달았다. 노조의 파업에 맞서 사측은 물량반출을 위해 렉카와 트레일러, 용역들을 동원했고, 노조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옥쇄파업으로 강도를 높여갔다. 하지만 사측이 조합원, 가족, 심지어 시골 부모님까지 회유와 협박을 일삼았고, 조합원들의 이탈은 늘어갔다. 처음 1200명의 파업대오가 3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대의원들조차 이탈이 심각해졌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시민중재단이 가동되어 징계를 최소화하기로 하고 파업을 풀었지만 곧바로 대량징계가 떨어졌습니다." 그 때 백형일 동지도 해고됐다.

백형일이 뜨는 곳이 파업이다

88년 고3 실습생으로 처음 한국중공업에 발을 디딜 때만 해도 백형일 동지에게 현장은 "아침이면 웃는 낯으로 출근하는" 작업장이었다. 풍물이 배우고 싶어 노조에서 여는 풍물교실에 참가하고, 그것을 계기로 문체부장을 할 때만 해도 노조가 뭔지는 잘 몰라도 그저 열심히 하면 되겠지 싶었다. 그러나 그 현장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백형일 동지도 함께 조금씩 변화했다.
두산중공업이 된 후 800여명의 조합원들이 명예퇴직으로 현장을 떠나야 했다. 곧이어 사측이 소사장제를 들이밀면서 현장의 불안은 더 높아갔다. 하지만 2001년 당시 쟁의부장이었던 백형일 동지에게는 이 때만큼 바쁘면서도 신났던 적이 없다. "태어나서 최고였습니다.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회 무대도 꾸미고, 쟁의 준비도 하면서 '내가' 뭔가 하고 있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다. "작년 10월부터 소사장제 철회를 위한 부분파업과 게릴라파업을 했어요. 상경투쟁도 겁나게 많이 했습니다." 기습적인 게릴라 파업은 3개월 넘게 진행됐다. 전술을 계획하는 쟁의팀 3명만이 당일 게릴라 파업의 전술을 공유할 뿐이었다. 방송차와 유인물, 집행간부가 '뜨는' 부서가 당일 게릴라 파업을 진행하는 곳이었다. "당시에는 사측도 좀처럼 꼬리를 잡지 못했어요. 그때는 '백형일이 뜨는 곳이 파업이다'는 얘기도 있었어요."라며 옆의 동지가 귀띔해준다.

파업의 패배가 남긴 것

까까머리 실습생이 이제는 짧은 머리의 해고자가 되기까지, 그리고 이제 두원중공업 노조와 현장조직을 고민하는 활동가로 단련되기까지 수많은 투쟁의 경험이 있겠다. 그 중 올해 파업과 파업이후 혼란과 후유증의 한 가운데서의 고민은 그에게 활동의 전환점이 되고 있다.
"휴-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이 많은 만큼 말을 꺼내놓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올해 유래 없는 사측의 탄압은 조합원과 현장활동가들의 위기로 드러났다. 백형일 동지가 속해있는 현장조직 '새탑회'를 포함해 3개의 현장조직과 현장활동가들이 '민주노조 사수와 현장조직력 강화를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임원선출과 임단협 투쟁의 승리를 계획했다. 그러나 문제는 쉽지 않았다. "3개의 현장조직이 있지만 제대로 된 현장투쟁을 벌어내지도, 현장 활동가들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훈련하지 못했습니다. 각자 사람들만 끌어 모아 세를 불리고, 노조 선거에만 나갈려고 하고… 현장조직이라고는 하나 마구잡이로 노조간부를 세우다보니 작은 공세에도 휘둘린 거에요. 이번처럼 어려운 시기에 극명하게 드러난거죠." 2년 집행부 임기 중 어느 집행부도 2년을 다 채우고 내려온 적이 없단다. 대중투쟁의 성패에 따라 조합원의 요구로 집행부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바로 3개의 현장조직간의 조직싸움의 결과라는 것이다. 올해는 정반대의 상황이 나타났다. 막상 투쟁해야 할 시기에 임원추천을 해도 당사자들이 번번이 거절하는 통에 집행부조차 세워내기가 어려웠단다.

다시, '현장'에서

결혼식도 못 올린 채 혼인신고를 먼저 했지만, 곧바로 해고되고 이어지는 수배 때문에 결혼생활을 못해봤다는 백형일 동지. 아내와 함께 가구도 고르고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참 미안하다고 하는데, 옆에 있던 7살 아래의 아내가 그만 이불을 뒤집어쓴다. 결혼하면 함께 살려고 사택을 분양 받았는데 그 집은 벌써 6개월 째 정리 안된 가구들만 덩그마니 놓여있다. 부인은 친정 집에, 남편은 농성에 이어 수배생활로 떨어져있는 상태다. 하지만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백형일 동지에게는 지금, 현장에서 해야할 일이 있다. 백형일 동지에게는 파업의 아픔과 해고의 쓰라림보다 현장조직과 현장활동가와 현장조합원이 눈에 확 들어왔나 보다. "현장조직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현장조직에 대한 학습도 체계적으로 하고 싶습니다. 젊은 활동가들을 발굴하고 묶어내기 위한 새로운 조직방식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다 짤릴 판이에요. 안 나서면 안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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