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작은 몸이 어디에서 쉴 수 있을까’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상가건물 4층에 들어서 있는 ‘관인 ○○학원’. 아이들의 소리가 시끌벅적한 이곳은 음악과 미술을 가르치는 예능학원이었다. 원장에게 “35개월된 아이를 저녁 때까지 맡길 수 있냐”고 묻자 그는 “가능하다”면서 “사실 더 어린 애들도 여럿 있다”며 교실 안을 보여줬다. 창문에 안전망이 없는 교실은 책상과 의자, 각종 교구, 한 쪽에 서있는 미끄럼틀로 여유공간이 없었고 대개 4~5세의 아이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원장의 말처럼 33~34개월된 유아들이 끼여있었다.
어린이집이나 놀이방이 더 알맞을 것 같은 이 아이들은 여기에서 하루 10시간 동안 꼼짝없이 있어야 했다. 학원은 통상 이보다 나이가 많은 애들과 반일반 중심이기 때문에 낮잠을 잘 만한 공간도 따로 없었다.
원장은 “반일반 아이들의 부모가 낮잠을 재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해와 어린애들만 따로 재우기가 좀 어렵다”면서 “어린애한테 무언가 가르치려는 것보다 마땅한 보육시설을 찾지 못해 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20명이 넘는 교실에는 교사 1명이 있어 어린애들에게 더 신경을 쓰기가 힘들어보였다.
성북구 길음동의 한 학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비교적 큰 규모의 예능학원으로 36개월 미만의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점심시간에 유아들은 반찬없이 국에 말은 밥을 먹고 있었는데 바로 옆에는 전기밭솥과 뜨거운 국냄비가 놓여 있다.
이중에는 아침 일찍 학원 봉고차에 태워져 1시간 가량 다른 아이들을 태우는 데 함께 돌아다니는 어린애도 있었다. 학원은 보육시설에 비해 늦게 시작되기 때문에 아이를 일찍 맡기고 출근해야 하는 부모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36개월 미만의 유아를 종일반으로 두고 있는 일부 학원들은 준보육시설이나 마찬가지다. 마땅한 보육시설을 찾지 못했거나 프로그램에 만족하지 못한 부모들이 대안으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학원의 경우 보육시설에 적용되는 층수 제한이나 안전시설에 대한 기준이 없다. 때문에 유아들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안전보호대상 여부가 달라지는 것이다. 학원 등의 종일반은 필요악으로 보육의 ‘사각지대’인 동시에 빈약한 보육인프라의 ‘피난처’가 되고 있다.
유치원에 취원이 가능한 연령은 36개월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그만큼 전문 보육시설이 아니면 유아들을 보호할 만한 시설이 미비해 금지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치원 종일반에서 36개월 미만의 아이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동작구 흑석동에 사는 전명순씨(32․가명)는 “집 주변에 마땅한 보육시설이 없어 종일반을 운영하는 학원이나 유치원이 있는 게 다행스럽다”면서 “아이가 2살일 때 다른 동네에서는 1․2층은 학원이고 지하층에서는 어린애들을 돌보는 곳에 맡긴 적도 있다”고 말했다.
27개월된 아이를 키우는 직장여성 이혜옥씨(29)는 평일에는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주말에만 집으로 데리고 온다. 종로구에 사는 그는 집과 가까운 구립 어린이집에 맡길 생각도 했지만 시설이 열악해 차라리 주중에 헤어져있는 쪽을 택했다. “현관문 하나만 열면 바로 찻길인데다 유아들이 있는 2층의 시멘트 계단이 가파르고 위험해 보여 도저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면서 “낮에 아이들이 햇볕을 쬘 만한 마당도 전혀 없어 사실 놀랐다”고 말했다.
이처럼 부모들이 마음 편히 맡길 보육시설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일부 국․공립이나 시설 좋은 몇몇 민간 운영의 곳을 빼고 나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특히 정부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는 민간시설의 경우 아이들의 보육료에만 의존하다보니 수준 높은 시설을 요구하기 힘들다.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8년째 어린이집을 운영해온 원장 ᄇ씨는 지난 3월 재정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았다. 그는 “1994년 정부가 민간시설에 융자지원을 해주었지만 보육료만으로는 어린이집 운영하기에도 빠듯했다”면서 “IMF를 겪으면서 나중에는 어린이집 건물까지 근저당잡혔다”고 말했다.
보육시설이 공공의 개념이지만 ▲유아수 ▲동일 지역내 분포 등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당국의 관리로 지역에 따라 보육시설이 몰려있거나 아예 없는 등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구로동에 위치한 한 민간 어린이집 ᄀ원장은 “구청에서 보육료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지만 지역에 따라 그 값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래도 교회 건물에 있어 임대료가 값싼 편이라 겨우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 역시 출입문에 안전장치가 없어 이방인의 출입에 대한 대처가 없었고 취사실이 아이들 놀이방과 맞닿아 있어 위험해보였다.
서울시 어린이집․놀이방 이영애 회장은 “민간으로 운영되는 어린이집이나 놀이방도 정부가 공보육의 틀로 껴안아야 한다”면서 “국․공립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기존 민간시설에 대한 지원확대가 보육인프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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