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유권자의 눈초리가 무섭긴 무서운가보다.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들이 쏟아내고 있는 여성공약들은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51%) 여성표를 잡기 위한 ‘몸부림’이라 할 만하다. 후보마다 차이는 있지만 호주제 폐지나 보육문제 해결 등 여성계의 요구를 받아들인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후보들이 과연 공약을 실행할 재원확보 방안이나 시행방법을 확보하고 있으며, 양성평등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여성계가 이에 대한 ‘검증’에 나선 결과 ‘아니오’로 나타났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17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등 4명의 여성공약(표 참조)을 비교․평가한 결과를 내놓았다.
여성계가 요구하는 3대 핵심과제는 호주제 폐지와 고용평등, 보육의 공공성 확보 등이다. 이 가운데 호주제에 대해서는 이 후보가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권 후보가 가장 진보적인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됐다.
이 후보는 호주제 폐지를 목표로 호주승계순위를 재조정하고 친양자제도를 도입한다고 했지만, 이는 임기동안 호주제의 핵심문제조항인 부가입적제도와 성씨선택은 개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권 후보의 경우 호주제를 즉시 폐지하는 것은 물론 일인일적제 실시, 아버지성 강제조항 폐지 등 앞선 정책을 내놓았다. 호주제 즉각 폐지와 자녀성씨 부부간 합의를 내건 정 후보의 공약도 진취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반면 노 후보는 호주제 폐지 이후 대안적 호적편제와 성씨선택문제를 민간과 논의해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지난 15대 대선 때 민주당이 호주제 폐지를 약속하고도 이행하지 않은 점 때문에 구체적인 이행계획을 제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고용평등 분야에서도 권 후보의 안이 가장 모범적인 것으로 나타난 반면, 정 후보의 공약은 미흡한 것으로 평가됐다.
권 후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 공기업 30% 채용목표제, 여성근로감독관 증원 등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노동자의 특성을 고려한 구체적인 조처들을 제시했다. 노 후보도 특수직종의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공론화 한 뒤 노동자의 범위에 포함되도록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문제해결에 대한 구체적인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최저임금 상향조정, 가내노동자 보호제도 등에 대한 대책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점으로 평가됐다. 정보통신․관광․공공고용 등에서 100만개의 여성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힌 이 후보의 공약도 매우 고무적인 것으로 평가됐으나, 일자리 창출과 직결되는 보육정책 강화방안이 다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 후보의 비정규직 노동자 4대보험 적용확대, 여고․여대생 취업촉진 등도 긍정적인 공약으로 분류됐지만, 여성일자리 창출에 대해서 권 후보와 함께 구체적인 목표가 없는 것으로 평가됐다.
보육문제의 경우 네 후보 모두 의지는 높은 것으로 평가됐지만, 구체적인 정책에는 비판이 쏟아졌다.
노 후보가 보육료 지원을 부모 소득에 따라 차등화해 1조68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것은 가장 우수한 정책으로 평가받았고, 이 후보가 국가보육 5개년 계획을 세우고 보육교사의 인건비를 현실화하겠다고 한 것은 다른 후보에 비해 돋보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이․정 후보의 보육예산 2배 확대 공약에 대해서는, 그만한 예산으로 이들이 제시한 차등보육료제 도입, 국공립영아보육시설 확충 등의 정책을 시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됐다. 더구나 두 후보는 만 5살 아동 무상교육 등 이미 현행 법에서 실시되고 있는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해 ‘의미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권 후보가 내놓은 영아보육․유아교육의 연령별 이원화 정책은 비현실적인 정책으로 평가됐으며, 노 후보 역시 현재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공공기관 방과후 보육프로그램 확충 등 실효성 없는 대책을 내놓았다.
각 후보들의 여성공약들은 예전에 비해 내용이 풍부해졌지만, 이번 대선 역시 여성을 ‘표’로만 보는 말잔치가 될 것이란 우려도 크다. 여전히 구체적 이행계획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공약 가운데 여성부 출범, 정당법에 여성할당제 명시 등을 빼고는 대부분이 ‘헛말’이 됐다. 여성연합 남윤인순 사무총장은 “구체적 내용 없이 큰 틀의 범주만 제시된 공약이 비율이 높아 공약이행에 대한 책임성도 모호하고, 재원마련 방안과 시행방법․시기 등이 제시되지 않으면 ‘빈 공(空)약’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후보들은 앞으로 선거운동과정에서 유권자들한테 구체적 이행계획을 약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연대, 어떻게 분석했나
대선후보들의 여성정책에 대한 2002대선여성연대의 평가는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이나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조사에서 5% 이상의 지지를 받은 후보들을 대상으로 했다. 이 때문에 출마 선언을 한 사회당 김영규 후보와 이한동․장세동씨 등은 제외됐다.
평가는 저출산․노령화 사회나 가족구조․여성노동시장 변화 등의 요인을 충분히 반영했는지, 공약을 실행하기 위한 입법․제도 등이 마련됐는지, 정부의 실질적인 책임과 해결의지가 나타났는지 등에 초점을 맞춰 이뤄졌다. 여성연대는 각 후보 진영으로부터 여성정책 공약을 서면으로 전달받아 평가자료로 썼다.
한편, 여성단체연대는 21일부터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4명의 후보를 초청해 여성정책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후보별 일정은 노무현 후보 21일, 권영길 후보 22일, 정몽준 후보 25일, 이회창 후보 26일이며, 오전 11시부터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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