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2002 지금 분노하지 않는 자들은 누구인가

동두천 미군재판 규탄대회 현장

▲ 청년들이 태극기 위에 피로 새긴 혈서

이지안 mulu@kdlpnews.org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2002
미군재판을 보고 97년전 11월의 통곡을 전합니다


지난 번 이등(伊藤) 후작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여 마지않았다. 그러나 천하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아,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되게 하였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발췌요약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 논설.
<황성신문>의 주필이었던 장지연은 이 논설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비난하고, 을사 오적(五賊)은 우리나라를 남에게 팔아 백성을 노예로 만들려는 매국노임을 규정했다. 또 조약이 무효임을 전국민에게 알렸다. 장지연은 이날 오전 5시 체포돼 경무청에 수감되었으며 <황성신문>의 사원 10명도 체포되었고 신문은 무기 정간을 당했다.


18일부터 23일까지 지난 한주간 동두천의 아침은 분노와 함께 열렸다. ‘기만적인 미군재판저지 살인미군체포 총력투쟁대회’가 진행되는 미군부대 캠프케이시 앞은 여중생 장갑차 압사사건에 대한 기만적인 미군재판에 항의하는 70~80명의 여중생 범대위 소속 회원 및 시민들과 이보다 10배가 넘는 7백~8백여명의 중무장한 전경들이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몇 차례의 밀고 밀리는 몸싸움이 시작되면 경찰은 시위대를 한사람씩 연행해 마구 짓밟기 시작했다.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전쟁은 아침마다 반복됐고 날이 갈수록 부상자는 속출했다. 시민, 학생, 취재기자 할 것 없이 경찰의 방패에 얼굴이 찢겨나갔다. 김준기 민주노동당 고문도 왼쪽 앞이마가 15cm가량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페르난도 니노 관제병의 무죄가 확정된 후 열린 21일 아침 집회에서는 뇌진탕으로 구급차에 실려가는 동두천 시민이 생겨났고, 실신한 어린 학생도 눈에 띄었다.

이날 집회에서 범대위 상임대표 문정현 신부와 한상렬 목사는 삭발을 자청했고 범대위 소속 학생들은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썼다. 문정현 신부는 아예 땅바닥에 드러누워 “나를 밟고 가라”고 소리쳤다. “살인미군 처벌하라”, “재판권을 이양하라”, “소파협정 개정하라”는 구호가 끊임없이 동두천 상공에 메아리쳤다.

하지만 아침마다 목놓아 구호를 외치고, 부시를 본딴 허수아비를 불태우고, 달걀과 붉은 페인트병을 미군기지 안으로 던지는 것만으로는 이들의 억울함을 달래줄 수 없었다. 살인자가 무죄라니, 이 치솟아 오르는 분노를 어찌할 것인가.

분노는 금요일에도 계속됐다. 미군법정은 페르난도 니노 관제병에 이어 22일 밤 운전병 마크 워커 병장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꽃다운 열다섯 청춘을 짓이긴 미군 2명은 ‘그들만의 법정’에서 죄없는 사람으로 탈바꿈됐다.

대한민국 국민을 깔본 저들의 오만함. 미8군 사령관 찰스 캠벨 중령은 “이번 평결은 여중생 사건이 형사적 과실을 물을 수 없는 사고였음을 말해줬다”면서 공정한 판결이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점령군’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그순간 한반도는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 권영길 후보가 부시를 본뜬 허수아비를 불태우고 있다.

‘살인미군 재판저지를 위한 총력투쟁대회’는 여중생 압사사건 재판 첫날인 18일 월요일부터 전개됐다. 이날은 특히 재판을 참관하기로 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방청을 위해 캠프케이시 앞에 도착했으나 미군 측은 끝내 방청을 불허했고, 전경은 미군기지로 들어가려는 권후보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권후보는 이날 집회에서 “여중생 범대위 대표이자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의 자격으로도 재판을 방청하지 못한 데 대해 분노를 억누를 수 없다”면서 “앞으로 이같은 일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되며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자주적인 나라, 통일의 시대를 이루기 위해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며 울분을 토했다.

홍근수 범대위 상임공동대표는 “대통령 후보인 권영길 후보의 방청까지 불허하는 것은 미군재판이 기만적으로 진행되는 증거”라면서 “언론을 의식해 마치 공개재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인미군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한편, 미군에게 무죄평결이 내려지자 정치권과 시민단체도 소파 재개정과 미군의 재판권 이양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국민통합 21도 오랜만에 한 목소리로 소파 재개정을 촉구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21일 광화문 미대사관 앞에서 규탄기자회견을 갖고 “불평등한 소파협정에 의해 일방적으로 치러진 주한미군의 재판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모든 대통령 후보들이 소파 개정과 부시 미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자”고 호소했다. 참여연대와 민변 등 9개 시민·여성·환경단체도 21일 공동성명을 내고 “한국 국민의 안전과 최소한의 자존심조차 무시하는 미군 당국의 오만함에 분노하고 정부의 무책임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정부는 22일 “미 사법 절차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해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김종철 대변인은 “주권국가의 정부로서 상상할 수도 없는 입장표명”이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여중생 범대위는 12월 2~9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농성을 벌일 미국원정투쟁단을 모집하는 한편, 내년 2월 국민배심원 1백만명이 참여하는 ‘여중생 살인사건 민간법정’을 열어 우리 국민들이 직접 미군범죄자들을 심판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미군, 권후보 참관 불허
'의전' 핑계 일방적 통보



◁ 지난 18일 동두천 미군기지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권영길 후보.

권영길 후보의 미군재판 방청은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이자 여중생 범대위 대표 자격으로 이미 허용된 것이었다. 그러나 권후보는 미군 측의 명분없는 거부로 18일 진행된 첫 재판에 참석치 못했다.

미군 측은 애초 유족외 인사들에 대한 방청을 불허했으나, 여론에 밀려 여중생 범국민대책위 소속 인사와 민변 소속 변호사 등 2명의 인사에게 방청을 허가했었다. 그러나 범대위 추천 방청자가 권후보라는 사실을 알고 재판 시작 하루전 일방적으로 권후보의 방청 불허를 통보해 온 것이다.

이승헌 자통위 국장은 “애초 미대사관 측은 권후보의 재판 참관을 인정하고 권후보의 인적사항까지 건네 받았는데 재판 하루 전인 일요일 11시경 전화로 권후보의 방청을 거부했다”고 미국 측을 강력히 비난했다.

미 대사관측은 “정치적 부담이 있고 의전문제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권후보의 방청을 거절했다. 미 대사관 측과 직접 통화한 노회찬 사무총장은 “의전은 필요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으나 애초부터 의전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들은 결국 ‘불허’를 결정했다.
[ 113호] 11.25 ~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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