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1호, 고희동 생가 철거위기
역사문화적 가치 고려, 복원 추진되어야
서울 시내 곳곳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문인과 미술가. 음악가들이 살던 집이 남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세상의 무관심 속에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에는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였던 고희동(1886~1965)의 생가(종로구 원서동 16번지)가 철거위기에 몰려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의 집은 고희동이 1918년 일본 유학에서 귀국하여 직접 설계를 통해 지은 후 41년 동안 거주한 한-일 절충식 한옥이다. 올해 9월, 이 집을 사들인 (주)한샘이 집을 헐고 그 자리에 4층짜리 연구소를 짓겠다며 종로구청에 건축허가원을 낸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다행이 종로구청은 서울시 한옥심의위원회의 '북촌의 한옥지구와 창덕궁의 경관을 망가뜨릴 우려가 있다'는 권고를 받아들여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한샘과 건축가 김석철은 설계한 건물에 법적인 하자가 없다며 행정소송을 거론하는 등 공사를 강행할 뜻을 보이고 있다.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문화연대)는 이에 성명을 내고 고희동 생가가 중요한 이유는 '적법성'의 여부가 아니라 그 집에 담겨 있는 '역사적 의미와 문화적 의미'라며 한샘과 건축가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건축가 김석철은 이 집이 고희동 생가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보존상태 불량'과 '일본식 건축'이라는 점 등으로 '보존가치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문화연대는 '이 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건축가'이자 '북촌을 지키기 위해 북촌에 살고 있는 건축가'인 그가 이처럼 '비역사적이고 반문화적인' 발언을 했다는데 '비애감'마저 느낀다며 한샘의 건축계획을 '(역사와 문화에 대한)파괴의 시도'라고 규정했다. 이어 화가의 친일경력과는 별개로 집 자체가 '우리의 가옥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 그 집으로 인해 '주위를 시간적으로 깊이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철거가 아니라 시급하게 복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희동 생가를 복원하는 것이 순탄치만은 않다. 현행 제도상으로는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되는 건축물만 지원이 가능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문화계의 한 인사는 '고희동의 친일행적이 마음 한 켠에 걸리는 것이 사실'이라 면서도 '역사적 의미가 깃든 공간을 단지 보존상태만의 이유로 철거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프랑스 화가 밀레의 초라한 생가가 관광 명소화 된 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문화행정은 여전히 관료적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 역사문화적 가치를 경시하는 한샘과 건축가 김석철을 비롯하여 미비한 문화행정에 일침을 놓기도 했다.
일일문화정책동향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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