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아무도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부시 ‘간접사과’를 보고

최규엽/미군기지없는나라만들기운동본부장
효순이와 미선이를 무시무시한 장갑차 무한궤도로 짓뭉개버린 두 명의 ‘살인’ 미군이 그들의 각본에 따라 진행된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내고는 유유히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떠나던 날 주한미대사와 주한미군사령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부시 대통령의 사과 메시지라는 것을 전달했다.

“이 사건에 대해서 슬픔과 유감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과 미국의 긴밀한 협조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것을 재차 강조한다.”
부시의 메시지라는 것은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어린 두 여중생이 살해된 지 5개월하고도 보름이 지나서야 ‘슬픔’이니 ‘유감’이니 하는 것도 화가 치미는데 그마저 직접 하지도 않고 주한미대사를 통해 전달한다는 건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사과라는 것은 진실로 반성하는 마음과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행동이 같이 따를 때 설득력을 갖는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미군이 일본여중생을 성폭행 했을 때 클린턴은 즉각 직접 사과했다. 부시가 사과했다는 증거도 없다. 자필로 사과문을 쓰고 본인의 사인이라도 한국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 아닌가.

미국대사가 적당히 꾸며낸 말을 사과라고 떠들어대는 것은 아닌지. 진실로 반성하는 마음도 없다. 재발방지 부분은 더욱더 아무 것도 없다. 한국인에게는 유달리 오만한 미국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반미투쟁의 열기에 또다시 기름을 부었다.


범죄자 처벌 재발방지 약속해야

미군재판의 무효, 재판권의 한국법정으로 이양, 불평등한 소파협정 개정의 약속이 없는 한낱 유감표명이 무슨 사과란 말인가. 우리 국민들을 기만해도 이런 기만이 없다. 이 세 가지 모두를 약속해도 어린 두 소녀의 죽음이 보상될지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죄를 지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미군은 도대체 상식 밖의 존재다. 그들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지닌 한국사회의 치외법권적 존재다. 공무중과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별해 놓았지만 공무중이 아닌 미군범죄 사건의 경우도 제대로 처벌받은 적이 미군 지배 57년의 역사에서 몇 건이나 있었던가. 장갑차 무한궤도로 두 명의 가녀린 몸을 세 번씩이나 덮친 것이 어찌 실수일 수 있으며 도대체 무죄가 될 수 있는가.


정치인들은 뭐하고 있는가

기실 부시 대통령의 사이비 사과조차도 한국의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이 5개월여 동안 김대중정부의 탄압에 맞서 피터지게 싸워서 나온 것이다. 반세기동안 성역화됐던 의정부 미2사단 철조망을 뚫고 해골이 그려진 미국깃발을 들고 투쟁했던 민주노동당 당원을 비롯한 청년학생들의 행동은 온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미국에게는 더할 수 없는 위협이 됐다.

그동안 김대중정부의 탄압에 맞장구를 쳐오던 이회창 후보는 선거 때 특유의 공약 사기행위를 하고있다. ‘식물대통령’ 비슷한 김대중 정부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이회창후보가 여중생문제를 해결할 진실한 맘이 있다면 대통령 당선된 후 어쩌고저쩌고 하지 말고 지금 즉각 임시국회를 소집해서 ‘한미행정협정 개정 권고 결의안’ 을 즉각 의결하라.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한 것이라는 것을 이회창후보와 노무현후보가 모를 리 있겠는가. 1949년도에 한국국회는 미군철수를 결의했고, 미군은 철수했다. 필리핀 상하양원은 미군철수를 결의했고 미군은 필리핀에서 철수했다. 간단한 것이다.
[ 114호] 12.2 ~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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