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현대중공업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의장)

현중노조 건설 주역으로 해고자 청산 거부하며 단식투쟁


"15년 세월을 돌이켜보면 서럽기도 하고 후회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그 심경이 복잡하지만, 노동조합을 만들 때 그 정신만은 지키고 싶습니다."



농성 천막을 찾은 1일은 김진국 해고자가 단식 13일차 되는 날이었다.
B형 간염을 앓고 있는 그는 단식을 하며 이렇듯 하루하루 자신을 파괴시키고 있다. 일주일이 지나 동료들의 손에 이끌려 간 병원에서 의사는 간이 파괴되면 돌이킬 수 없다며 당장 단식을 중단하라 하건만......
87년 당시 11명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조합 설립투쟁으로 구속되고 석방되자마자 해고 된지 15년, 딱 한달 모자라는 15년이다.
집회에서 그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87년 노조를 만들자고 함께 하자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한명도 함께 나서지 않았어요. 우리는 절망했습니다. 절망의 끝에 서있던 그 순간 5명이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러자 바라만 보고 있던 5천명이 순식간에 함께 했고, 스크럼을 짜고 공장을 한바퀴 도니 1만 5천명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해고자들에게는 바로 지나온 청춘이자 분신과도 같은 것이기에 자신을 파괴하는 아픔마저 감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김진국 해고자를 마주하니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머뭇거리고 있으려니 본인이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제는 내가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노동조합이 어용이라는게 원래 좀 잔인하다고 하던데, 잠정합의안에 3년치 생계비를 11월 30일까지 지급하는 것으로 했거든요. 어제가 은행이 쉬는 날이니 그저께까지 정리해야 한다고 와서 서명을 요구하는 거예요.
이 천막을 걷어야 그걸 입금시켜 준다고 말입니다.
“너희가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느냐, 이것은 회사나 경찰이 아니면 이런 짓을 할 수 없다.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어찌 이럴 수 있느냐.” 화가 나서 호통을 쳤습니다.

원망하기보다 조합원들이 이런 현실까지 이르게 한 것을 스스로 자책한다
노동조합은 조합원 한명이라도 보호해야 하는 기본적인 책무가 있습니다.
자기들 말로 “노동조합의 뿌리다, 노동조합을 위해 헌신해 왔다, 민주노조 사수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고 하면서도 당사자들에게 한번의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리한 것은 노동조합의 근간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볼 수 밖에 없지요.
특히 그 부분에 대해서 해고 당사자들이 분노하는 것이구요. 저 같은 경우는 어쨌든 내손으로 만든 노조라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상당한 자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예요. 내가 만든 노동조합에 의해서, 그 조합원들의 손에 의해서 내가 짤린 그런 모양이니까요. 개인적으로도 매우 한탄스럽고 심경이 복잡합니다.
가슴 아프고, 누굴 원망하기 전에 내 책임이 누구보다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울러 그 책임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현재 활동가들이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반성할 줄 알아야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조합원들을 원망하기보다 조합원들을 이런 현실까지 이르게 한 것이 내 스스로 미안하다는 생각이 커요. 저는 단식투쟁을 통해 제 마음을 새로 정리하는 것이 큽니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합원들에게 석고 대죄하는 심정으로 단식투쟁을 시작했다
이 천막 농성에 결합하고 있는 사람들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활동가들 중에도 대의원 선거, 또 침체되어 있는 분위기를 나름대로 이 천막을 중심으로 집중력을 형성해 새롭게 민주노조를 재탈환할 수 있는 계기로 보는 시각, 아니면 해고자 문제에 있어 노동조합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런 행위를 응징하고 원상회복시키는 것을 목표로 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조합원들 마음을 돌리고 싶어요. 이 투쟁을 조합원들에게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시작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충분히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결을 지었으니까요. 조합원들 다수가 “그래, 해고자들 고생했으니까 그나마 그 정도의 돈 가지고라도 새로운 생활을 찾아가야 되지 않느냐, 우리가 복직을 못시키니까.” 나는 그런 순수한 마음이었다고 보거든요.
일부는 내용을 모르고 합의된 줄 알고 찍기도 했을 것이구요. 그러나 해고자를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민주노조를 만들고 지키고 해왔던 그런 본분에 어긋난다는 것을 조합원들이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조합원들에게 호소하고자 했습니다.

함께 생활하는 4명의 해고자들이 단임협도 끝나 다시 가닥을 잡아나갈 계획이다
현재 단식을 하며 제가 아침에 상복입고 가서 자리깔고 앉고, 우리 해고 동지들이 현수막 들고 조합원들에게 이런 의미를 계속 알려내고 있습니다. 활동가들도 결합하고 있고......
막상 현장조직들과 공대위를 구성하고 최윤석 집행부를 공격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이제 단임협도 끝났으니 다시 가닥을 잡아나갈 생각입니다.
지금 투쟁해야 할 해고 당사자가 7명인데, 그중 이영현 동지는 정리를 했습니다. 천막결합이 어려운 조건인 정영빈 동지 외에 이갑용 동지는 구청장을 맡고 있어 4명이 같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4명이 홍보물도 내고 실무 역할도 전부 다하다 보니까 같이 논의할 시간도 별로 없어요. 곧 해고자들이 모여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할 예정입니다.

해고자들을 이렇게 청산하는 것은 곧 부메랑이 되어 조합원들에게 돌아간다
조합원들은 신뢰할 만한 지도자가 아니면 잘 안 따릅니다. 그런 면에서 대단히 명확하고 냉철하지요. 지금 나는 조합원들이 안 따라 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지도력을 가지지 못한 활동가들이 문제지요.
그러나 조합원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면, 자기 스스로의 본질을 잊고 가는 것이 안타깝지요. 예를 들어 해고자들을 이렇게 청산하는 것은 곧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가거든요.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한다든지, 얼마든지 이를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해고자조차도 자기 손으로 정리했는데, 조합원 몇 명 정도야 얼마든지 정리할 수 있는 거죠. 조합원들이 그런 것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다는 안타까움이 있어요.

조합원이 문제가 아니라 신뢰받지 못하는 활동가가 문제다. 87년 이후 스스로 상실해간 현장 지도력을 회복하길 바란다
문제는 활동가들한테 있는 것이지요. 87년부터 형성된 현장 지도력을 우리 스스로 까먹은 것 아닙니까? 잘못해서 까먹은 것이죠. 활동가들이 서로 헐뜯고 어쨌든 자기 조직 이기주의 이런 것들로 인해서 더 많이 손상됐지요. 그래서 회사가 만든 어용도 많지만 활동가들이 만든 어용도 많지요.
이제는 “저 사람은 죽기를 각오하고 뭔가 할 수 있다”는 그런 신뢰가 있어야 조합원들이 함께 하는 것이죠.
무엇보다 활동가들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새롭게 현장 지도력을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만든 노동조합, 그래도 변절하지 않고 그 울타리 바라보며 살아왔던 15년
참 만감이 교차하죠. 좋은 시절도 있었고, 현장 지도력을 확고히 가지고 있던 시절도 있었고, 그동안 혹독하게 고생했던 시절도 있었고, 4번 징역을 살고 경찰서에 끌려간 것만도 셀 수 없을 정도 아니겠어요.
나태해진 적도 있었고 그 나태함 때문에 후배 동지들에게 항시 질타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농부가 씨뿌려 놓고 자라는 걸 뿌듯하게 보는 것처럼, 내가 만든 노동조합이니까 그래도 변절하지 않고 그 울타리 바라보며 살아왔던 15년입니다.
여러 가지 희노애락 속에서도 그렇게 쳐다보며 살아왔는데, 결국은 조합원 손에 의해 이렇게 정리된 결과가 되었어요. 돌이켜보면 서럽기도 하고 후회도 되고 안타깝기도 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그 심정이 대단히 복잡한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87년부터 89년까지 울산에서 같이 활동했던 권용목 친구같은 경우 국민통합21에 가고...... 그런 것 보면서도 허탈하기도 하고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전의 노조 만들 때 그 정신만이라도 다시 세우고 싶지만, 내가 하기는 어려울 테지요. 이번 계기로 활동가들이 마음을 다잡고 당장 그렇게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계기는 만들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입니다.”

기운이 없어서인지 만감이 교차해서인지 더 이상 이야기를 잇지 못한다. 일어서는데 베게 한쪽 귀퉁이에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손때가 묻은 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라도 조합원들이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 살아갈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