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PD에게 검은 돈이 전해졌다. 자기 소속 연예인의 편의를 부탁하며 기획사가 전한 돈이다. 돈을 덥석 물었던 몇몇 PD들은 방송사를 떠났거나 아직 해외 도피 중이다. 아직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방송사 PD가 독립 프로덕션 인사에게 폭행을 당한 사건이 터졌다. 방송사 구성원들은 앞의 사건에는 고개를 숙였고, 뒤의 사건엔 분노했다. 한 사건엔 부끄럽다고 말했고, 다른 사건엔 흥분하며 외주 개선 특별 위원회까지 구성했다. 한 사건은 윤리적 문제로 보고 고개 숙이는 것으로 정리하고, 다른 사건은 제도적 차원이라며 법제 개선으로 처리하려 하고 있다.
방송사 구성원들의 사건 해석이 참으로 딱하다. 개인적 차원과 구조적 차원을 사안에 따라 솜씨 있게 갖다대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심정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그 편리한 잣대를 뽑아내는 배짱의 뿌리를 짐작해보았다. 짐작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다. 이건 틀림없는 ‘우리끼리즘’ 탓이다. 방송사 안에 진입해있는 구성원들의 이익이 어떤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우리끼리즘’이 발동하지 않고서는 도깨비 방망이 내리치듯 개인 비리다, 구조적 문제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할 것이다.
‘우리끼리즘’에 근거하면 방송계는 방송사의 총합이다. 방송사 바깥은 기생하는 존재들이 어울려 사는 곳으로 비칠 뿐이다. 그 바깥은 방송사 진입에 실패한 인자들이 저급한 정책에 기대어 저급한 수준으로 생계를 유지해가는 공간일 뿐이다. 이 같은 사고는 방송사가 방송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까지 이어진다. ‘우리끼리즘’에 근거하면 방송계엔 타인의 출입이 금지될 수밖에 없다. 실력을 쌓은 자라 하더라도 ‘우리’에 끼워줄 수 없다. 태생이 다르기 때문이다. 저 낡고 허름한 방송사에서, 화려한 네트웍으로 진입한 대 기자 댄 래더, 대 프로듀서 진 로드베리 등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우리끼리즘’에 근거하면 ‘우리’의 과거는 지금보다 나아 보인다. 그래서 스스로 성찰함이 소홀하게 된다. 자신 안에 얼마만큼의 다양성이 있었고, 그를 위한 가열 찬 노력들이 있었는지를 평가하지 않게 만든다. 이어 현재의 어려움을 외부로 돌려버리는데 익숙하게 만든다. ‘우리끼리즘’에 근거하면 누구든 ‘우리’보다 앞서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많이 컸을지라도 ‘우리’를 넘어서선 안 된다. ‘우리’를 넘어섰을 지라도 ‘우리끼리즘’의 원칙에 따라 인정할 수가 없다.
외주 개선 특위까지 만든 방송사 성원들은 억울한 표정을 지을지 모르겠지만 누구도 쉽게 방송사의 손을 들어 주지 못할 것이다. 비록 폭행이라는 비 신사적이고, 용서치 못할 사건이 있을 지라도 그렇다. 아직까지는 방송사 힘이 독립 프로덕션에 앞서고, ‘우리끼리즘’에 대한 자발적이고 진지한 고민이 없기 때문이다. 방송사 주위에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방송사 구성원들에게 정당성 확보를 훈수했다. 방송사 보다 더 큰 권력으로부터 방송사를 구하고, 응원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또한 발빠르게 약한 쪽을 돕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라도 정당성 확보는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사는 그 훈수를 흘려버린 듯 하다. 정당성을 살피기보다는 ‘우리끼리즘’에 기대어 약자를 두드리고 있다.
외주 제작이 방송에 끼치는 ‘폐해’를 백분 인정한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 정책 편에 설 수밖에 없다. 방송사들이 ‘우리끼리즘’에 빠져 세상사를 편한 대로 재단해대는 한 방송사의 손을 들어 줄 수는 없다. 고약한 손버릇을 가진 제작사 인사의 주먹은 인기 연예인을 끌기 위해 방송사가 저지른 편법에 힘입은 바가 더 크다. 아니면 그가 주먹을 밥먹듯이 날리는 불량배이든지. 몇 번을 곱씹어도 자폐적이기까지 한 ‘우리끼리즘’이 건재하는 한 방송사 한 켠으로 가 줄을 설 맘은 없다.
원용진 (서강대 신방과 교수) yongji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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