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영화, "기차는 너무 일찍 도착하였다?"

1895년 12월, 영화라는 이름의 기차가 도착하다

"어! 사진이 움직인다!" 아마도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영화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뤼미에르 형제의 새로운 미학이자 촬영장치이며 동시에 영화제목이었던 <씨네마토그라프>는 이미지의 이동, 즉 기차가 도착하는 움직임과 기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움직임을 보여줌으로써 최초의 영화 관객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가 도착한 후 100년도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영화는 언제나 과학기술, 자본, 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위치를 존속 혹은 발달시켜 왔다. 1839년 발명된 사진술에 뤼미에르 형제가 이미지의 움직임을 통해 영화라는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면, 1920년대 유럽의 예술가들은 아방가르드의 최첨단 미디어로 영화를 선택함으로써 다양한 영화언어와 영화미학의 실험을 통해 "제7의 예술"로 영화를 승화시켰다.

그리고 산업사회를 통한 자본과 기술의 발달은 음향 사운드, 컬러 이미지의 도입 등을 통해 영화산업의 시장을 창출하고 보존하였으며, 나아가 와이드 스크린, 비디오, 컴퓨터와 디지털 기술 등의 도입을 통해 영화를 최고의 문화산업이자 대중문화예술로 위치 지웠다.

따라서 영화는 TV, 비디오, 컴퓨터 등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언제나 "위기"와 "종말"을 선고받았지만, 언제나 과학기술, 자본, 미학의 절묘한 배치를 통해 그 위기를 새로운 영화 생산, 시장 창출, 관객 개발로 전환시키는 힘을 보여주었다. 발터 벤야민의 탁월한 예견처럼, 약 100년의 역사 동안 영화는 회화와 고급예술의 아우라를 넘어 복제와 과학기술을 무기로 대중예술과 문화산업의 확고한 지분을 획득한 셈이다.


2002년 11월, 모바일 영화가 도착하다

"어! 이제 핸드폰으로 영화도 볼 수 있네!" 2002년 11월, 제7회 부산영화제가 한참 진행 중인 PIFF 광장에서, "세계 최초"의 모바일 영화를 만난 사람들의 반응 대개 이러했다. 파리의 인디언 살롱이 아닌 부산의 거리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아닌 거대 통신회사의 마케팅 도우미에 의해서 모바일 영화는 그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결정적인 차이는 있었다. 1895년의 관객들이 뤼미에르 형제의 순진할 정도의 단순한 기차 이미지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순진할 정도로 당황스러워하며 비명을 지르고 의자 밑에 숨었다면, 2002년의 관객들은 그 놀랄 정도로 깜찍하고 컬러풀한 최첨단 모바일 영화 앞에서 매우 태연했다.(심지어 "핸드폰 요금만 또 오르겠구먼..."이라는 놀라울 정도의 노련함마저 보여주었다)
어찌 되었던 이렇게 "꿈은 이루어졌다." 관객과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겠다는 영화의 꿈이 핸드폰, 무선 인터넷 등의 과학기술, 거대한 이동통신 회사, 작은 액정화면에 맞추어진 새로운 영상미학을 통해 완성된 것이다. 다시 말해 디지털 기술의 극대화(IMT-2000, 무선 인터넷, 디지털 그래픽 등), 자본의 위기(단말기 포화 상태로 인한 휴대폰 및 이동통신 회사의 새로운 시장 창출 욕구), 미학적 실험(이동성, 쌍방향성, 맞춤형 등) 등의 정점에서 모바일 영화는 탄생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모바일 영화에 대한 논쟁도 시작되었다. 먼저 가장 솔직하면서도 기분 나쁜 논쟁은 바로 "모바일 영화가 성공할 것이냐?"라는 화두다. 물론 여기서 성공의 기준은 "돈이 되느냐?"에 국한된다. 그리고 여기에는 "갑갑할 정도로 작은 액정화면, 짧은 시간에 따른 내러티브의 부재 등으로 인해 실패할 것"이라는 반대파와, "작고 간편하며 이동 가능하다는 휴대성에 근거하여 매우 대중적인 공급력을 창출할 것"이라는 지지파가 존재한다.

한편 "이것을 영화라 부를 수 있느냐?", 즉 시장의 성공과 무관하게 모바일 영화의 미학적 가치에 대한 논쟁 역시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이는 "영화란 자고로 필름으로 찍어서, 극장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영화론자(또는 극장주의자)와 "영화란 영상콘텐츠의 하나이며, 디지털 기술의 발달을 통해 다양한 미디어로 매개되고 있기 때문에 그 정의나 접근방식 역시 바뀌어야 한다"는 정보론자(또는 멀티미디어주의자)간의 오래된 갈등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모바일 영화의 등장은 영화론자에게 있어서는 "영화에 대한 대단한 실례인 동시에 기술의 횡포"이며, 정보론자에게 있어서는 "매우 흥미 있는 실험 대상"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인터넷 영화의 선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마도 세간의 속삭임과는 무관하게 모바일 영화는 매우 빠른 속도로 추진될 것이다. 일례로 이미 KTF가 영상 공모전을 진행하였으며, SK텔레콤은 모바일 영상 창작제와 동시에 <건달과 달걀>, <마이 굿 파트너>, <프로젝트-X> 등 세 편의 모바일 전용 영화를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모바일 게임의 사장 규모가 1년 사이에 140% 증가한 것을 고려한다면, 모바일 영화 시장 역시 빠르게 과열될 것이 분명하다.


인터넷 영화의 실패에서 배워라

모바일 영화의 특성을 나열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모바일 영화는 컴퓨터, 인터넷, VOD 등의 새로운 미디어가 언제나 그러했듯이, 영상언어 및 미학, 제작방식, 상영공간, 관객의 이용방식 등에 있어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즉 모바일 영화는 강력한 시간과 공간의 이동성을 통해 탈장소적이고 탈맥락적인 관객성을 창출할 것이고, 극장 영화와는 달리 탈스트린 혹은 실시간 스크린의 관람성을 유도할 것이다. 그리고 화면 크기의 제약으로 인한 크로즈업의 빈번한 사용, 시간 제약으로 인한 내러티브의 축약(비서사적이며 이미지 중심의 내용 구성) 등을 강화할 것이다. 나아가 영화산업을 둘러 싼 제작, 유통, 향유 등의 모든 환경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단지 영화를 모바일로 볼 수 있는가?"가 아니라 "모바일 콘텐츠로서 영화가 가능한가?"이다. 다시 말해 "모바일 영화의 문화적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다소 어리석은 질문 말이다. 물론 이러한 논쟁과 숙제의 답은 모바일 영화가 지향하는 바와 같이 언제나 열려져 있다. "오픈 엔딩!"
그러나 적어도 인터넷 영화의 선례에서 알 수 있듯이, 모바일 영화가 단지 시장의 논리만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여기에는 너무나 많은 과제가 남겨져 있다. 더욱이 모바일 영화에 대한 "골드러쉬"에도 불구하고, 정작 모바일 영화의 관객 혹은 이용자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모바일 영화의 성공 여부, 좀더 노골적으로 말해서 모바일 콘텐츠의 대중화를 통한 모바일 산업의 새로운 시장 창출에 대한 기대만이 낙관과 비관 사이를 거칠게 줄타기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모바일 영화가 인터넷 영화의 몰락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윤 창출에 대한 집착 못지 않은, 미학적, 사회학적 접근의 두께를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 역시 영화산업의 범주와 밥그릇의 경계가 아닌 영화와 미디어, 그리고 이용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출발점으로 해야 한다. 어떠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에 대한 관계맺음이기 때문이다.

이원재 / 문화연대 정책실장 redgang@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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