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얼굴] 현대중공업 해고노동자들

전주희 노동자의 힘 선전부장

15년 동안 해고자의 이름으로

1987년 7월21일 현대중공업에서는 권오성 외 50여명이 모여 기습적으로 어용노조를 설립했다. 나흘 뒤 김필수, 이재식, 박우신, 이영수, 이채석, 조성훈, 정병모, 유성열, 장세근, 김형권, 김진국 등 11인이 '민주노조 개편대책위'를 구성하고 총파업을 시작했다. 이날의 총파업은 56일 동안 이뤄졌다. 이 투쟁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시작을 이룬다.

그 후로 15년이 지났다. 중공업 정문을 박차고 노동자의 군대를 이끌었던 29살의 젊은 청년은 이제 40대 중반의 해고자가 되어 정문 건너편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허탈하기가… 어떻게 노조를 만들었고, 어떻게 싸웠는데 결국 이렇게 정리될 수 있는지…."

88년 128일 파업, 90년 골리앗 파업, 94년 68일 파업, 95년 양봉수 열사 투쟁, 96년 임단투 투쟁까지 현대중공업 노조의 발자취는 투쟁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 역사의 굽이마다 설남종, 조돈희, 이갑용, 이영현, 정영빈, 김대환이라는 해고자가 있어왔다.

골리앗의 전사로, 투쟁의 선봉대로, 현장의 소위원으로 민주노조를 지켜내기 위해 투쟁했고 당당하게 해고됐다. 그러나 그들은 '놀고 먹는 해고자들'이라는 낙인과 함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에서, 그것도 조합원 59%의 찬성으로 추방되었다. 15년의 세월은 전사였던 그들에게 약이 되었을까, 독이 되었을까.



14대 집행부, "조합원의 실리를 챙길 수만 있다면 몸까지 팔아드리겠습니다."

지난 13대 집행부는 강호동 사무국장의 노조 창립기념품 비리사건으로 얼룩져 집행부 총사퇴로 마무리되었다. 현중의 민주세력들은 '민주연합'으로 보궐선거에 출마해 재기를 꿈꿨으나 현 집행부인 14대 최윤석 집행부에 패하고 말았다.

최윤석 집행부는 02년 임단협 중에 '해고자 청산안'을 합의했다. 해고자 13명 중 4명(오종쇄, 천석복, 진광욱, 원대용)만을 재입사 시키고, 천창수, 구장회, 김대환 등 3명은 1년치 생계비 지급, 김진국, 정영빈, 이갑용, 이영현, 조돈희, 설남종 등 6명은 3년치 생계비를 지급하고 '청산'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또 이에 불복하는 해고자는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추후 회사에 해고자에 대해 어떤 요구도 거론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포함돼 있다.

전무후무한 노조의 결정에 여기저기서 비판이 빗발쳤다. 14대 집행부는 '수많은 비난의 화살을 받으며 매듭을 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했었다'고 항변했다. 11월7일 새벽 3시30분경, 해고자 청산안과 함께 02년 임단협이 잠정 합의됐다. 7일 아침 조합원들은 노조소식지 <민주항해>를 통해 잠정합의안을 접했다. 하지만 해고자 청산 건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단 한줄의 설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는 다음날(8일)에 이뤄졌다. 임단협 안과 해고자 청산 안은 분리해서 표결에 붙여졌고 02년 임단협안은 67% 반대로 부결됐으며, 해고자 청산안은 59%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제 '현중 해고자 청산 사태'는 사측이 먼저 으름장을 놓았건, 집행부가 실력보다는 실리를 챙겼건, 아니면 둘 다건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실리를 위해서라면 몸까지 팔겠다던(민주항해 11.29.) 14대 집행부의 이런 '결단'은 어찌보면 예상했던 것이기도 했다. "사측은 현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끊임없이 해고자와 민주세력들을 고립시켜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조가 넘어가면 해고자 정리는 수순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렇게 기습적일 줄은, 아니 현실로 떨어질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천막농성에 돌입하기위해 휘발유를 끼얹고 경찰병력 철수를 요구하고 있는 현대 중공업 해고 노동자들

사측, 14대 집행부, 조합원들의 선택은 같은 것이었나?

"설마 했습니다. 조합원들이 설마 돈 몇 푼 주고 해고자들을 정리하겠느냐. 조합원들이 부결시킬 거란 기대도 있었습니다." 정말로 모두들 설마 했다. 현장투쟁을 벌일 시간도 없이 찬반투표로 바로 들어갔어도, 당일에 가서야 해고자 청산 건이 조합원들에게 알려졌어도 설마 조합원들이 찬성을 할 줄은 몰랐다.

14대 집행부는 "해고동지들의 아픔도 중요하지만 15년 동안 조합원의 몫을 희생해야 했던 것도 중요했다"고 했다. 정말 조합원들의 생각도 그랬을까.

현중 자본과 14대 집행부, 조합원들은 그 속뜻이야 어쨌든 해고자 청산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선택의 조건은 틀리다. 94년 68일 파업이후 현대중공업 노조는 '무쟁의 8년'을 기록하고 있다. 노동자의 자랑스런 역사는 자본가들의 교훈이 된지 오래다. 설남종 동지는 94년을 기점으로 자본의 신경영전략이 적극적으로 관철됐다고 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처음에는 몰랐어요.

우연히 대우조선 신경영전략을 공부하다가 그제서야 알게 된 거죠. 사측은 골리앗 파업 이후 계속 추진해왔던 거였습니다." '민주파'가 계속 노조 집행부에 당선됐지만 사측은 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를 야금야금 파먹고 있었다. 활동가들이 자본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노동조합의 투쟁성이나 원칙이 훼손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파업은커녕 파업을 위한 찬반투표조차 사측의 탄압으로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중 지난 13대 집행부의 비리 건은 민주세력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져왔다.

조돈희 동지는 "올해는 사측이 현장 장악력을 완성시킨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현대 중공업 현장은 이미 '마음대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활동가와 대화를 하는 것을 들키는 순간 직장, 반장, 과장, 부장, 심지어 이사에게까지 불려가기 일쑤다. 술자리에서 동료에게 불만을 토로했다가는 사측의 정보원으로 매수된 그 동료로 인해 다음날 바로 보고되는 것이 현중의 현실이다. 구력이 붙은 활동가들은 아예 혼자 현장을 돌아다니지도 못한다. 그 넓은 야드에 용역의 린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숨막히는 현장은 무쟁의 8년을 기록했고, 활동가들은 그 현장을 되찾지 못했다. 표정없는 조합원들은 출퇴근 신호에 맞춰 움직일 뿐이었다. 조합원들에게 내려진 해고자 청산은 이미 선택할 문제가 아니었다.

해고자가 흘린 눈물의 의미

"이번 청산안이 터지면서 '아... 우리가 조합원들과 많이 떨어져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는 주저앉을 수 없습니다. 조합원들을 져버릴 수가 없고, 민주노조를 등질 수가 없습니다. 1억받고 정리할려고 했다면 시작도 안했고, 수년 전에 몇 억씩 준다는 사측의 회유를 거절하지도 않았습니다. 현장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조합원들을 설득하고 다시 싸워야 합니다." 이렇게 11월21일 해고자들은 정문 건너편에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사측은 마지막 찌꺼기라도 청소하듯 용역과 전경을 동원했다.

조돈희 동지가 "가! 가란말이다. 이 새끼들아."고 절규했고, 설남종 동지가 석유를 온몸에 들이부었다. 격렬한 몸싸움 끝에 천막 끝 동여맬 팩을 박자 설동지가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아직도 온몸에는 석유의 독 때문에 피부껍질이 다 벗겨져 아물지 않고 있다. 지난 세월에 대한 뼈아프도록 되돌아오는 반성은 해고자들로 하여금 이번 투쟁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하게 했다. "복직 여부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번 싸움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는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자기 자신을 다시 세우는 투쟁, 현장을 다시 복원하는 투쟁, 조합원들과 다시 만나는 투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노조가 해고자 생계비를 보장한 것은 분명 투쟁의 성과이기도 하지만 해고자가 복직을 노조에 위임하는 형태가 되어버리면서 복직을 위한 투쟁에 절박하게 나서지 못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대중적 반성만이 현장을 복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조합원 총회에서 결정난 '적법한 결정'이라는 사실과 이 사태의 책임을 '부정을 저지른 강호동 전 사무국장과 어용인 14대 집행부'의 탓으로 돌리려는 내부와의 싸움이 아직 넘어야 할 산으로 남아 있다. "13대 집행부의 사건이 마치 강호동 혼자 잘못해서 이 지경이 된 것으로 판단하는 활동가들이 있다. 13대를 탄생시켰던 전노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태도 말이다."라고 한 활동가가 민주파 내의 혼란상을 말해준다.

한편 '어쨌든 조합원 총회에서 결정난 것 아닌가. 조합원들은 해고자들을 버렸다.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활동가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때문에 해고자
들의 반성과 투쟁은 조합원들을 향해, 그리고 민주세력들을 향해 있다. 이제 기존의 관성적인 투쟁의 모습으로는 조합원들이 쉽사리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지난 11월29일 02년 임단협 최종잠정합의안이 통과됐다. 이제 조합원들은 해고자들의 투쟁에 더더욱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있다. 떠들썩한 대선기간 동안 현중 정문앞 4거리는 각 후보들의 홍보차들이 가득메울 것이고 해고자들의 선전전은 더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 최윤석 위원장은 임단협이 통과된 후 천막 농성장에 찾아와 "농성을 철수해라. 그래야만 집행부와 대화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현장에서는 해고자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다.

대중적 반성은 말로 될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십수년을 현장에서 같이 일해온 노동자들이다. '아'하면 '어'하고 받는 조합원들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 있으랴.

87년, 88년, 90년, 94년의 추억을 공유하기에는 현장은 너무 고달프다. 무너진 8년을 복구하는데는 몇곱절의 시간이 더 걸릴지도 모른다. 해고자 청산은 민주세력 전체에 내려진 조합원들의 평가다. 이제는 활동가들이 답을 해야 할 차례이다. 무너진 현장에서 어떻게 일어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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